평소 엄마와 나는 집 근처 반경 2km 안에서 거의 모든걸 해결하는 편이다. 마트, 도서관, 공원, 집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한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휴직으로 시간이 확보되어 있는데다가 가을의 쾌적한 날씨이니 돌아다니기 좋은 절호의 기회 아닌가.
나는 비장하게 말했다.
"엄마, 나가자!"
수도권에서 대전은 기차 타고 40분이면 간다.
그래도 몇 년 만에 기차 타고 다른 지역에 간다며 엄마는 소녀처럼 좋아했다. 가방에는 음료부터 귤이며 과자를 잔뜩 챙겨서, 학생 때 소풍 가는 기분으로 기차에 올랐다.
기차 안은 조용하고 쾌적했다. 나야 시댁에 가느라 명절 때마다 이용하는 기차였지만, 무궁화호처럼 비교적 오래된 기차만 타봤던 엄마는 승차감이 좋다고 연신 감탄했다.
"이번 정류장은 대전, 대전입니다."
오잉? 금방 도착할 줄은 알았지만 창 밖의 풍경을 보다 보니 정말 금방 도착했다. 심지어 나는 곧 도착할지 모르고 열차에서 두 칸이나 떨어져 있는 화장실에 갔다가 빠른 걸음으로 다시 자리를 찾아 오느라고 애를 먹었다.
대전역에 내린 무렵이 점심 때였으므로, 걸어서 소제동 카페거리로 이동해 밥을 먹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리뷰가 좋은 두어군데를 봐 두었는데, 태국음식을 파는 분위기 좋은 식당에 가서 뿌팟뽕커리와 땡모반을 먹었다. 인테리어는 이국적이고 독특했는데, 맛은 그냥 그랬다. 두 번은 안 갈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게 입구의 대나무 정원에서 사진이라도 왕창 찍었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어 우산을 쓰고 다녀야 했는데, 소화시킬 겸 천을 따라 카페 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눈에 띄었던건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와, 많은 감나무만큼이나 많이 보이는 빈집이었다. 빈집은 몇 십년은 된 옛날 구옥이었는데, 아무도 살지 않은지 오래돼 보였다. 나는 겁도 없이 폐가를 보면 호기심이 많아져, 지나칠 때마다 그 안에 뭐가 있나 유심히 보곤 했다. 물론 들여다 봐야 별거 없는데, 그곳에서도 한 때 누군가가 생활했던 낡은 흔적을 보면 빛바랜 사진을 보듯이 아련해지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는 한참 후였기에, 지하철을 타고 유성온천공원으로 이동했다. 지하철만 30분을 타고 가야한다는건 기차 타고 대전으로 올 때의 시간과 맞먹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걸-이를테면 족욕온천이 있는 공원-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성온천은 20~3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다소 저물어 가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공원 내에 몇 개나 있는 족욕온천의 뜨신 물에 발을 담그고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과 외국인들이 보였다. 때마침 유성온천축제 행사 기간이어서 부스에서 십자말 풀이며 종이학 접기 등 간단한 미션을 수행하고 스템프를 모아 선물도 받았다. 선물은 뽑기로 나오는 거였는데, 나는 꽝이고 엄마는 키링을 받았다.
대전에 왔다면 성심당에 들르는 것은 필수 코스인 셈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찾은 성심당 본점. 워낙 명성이 자자해 입장하기까지 기다릴 마음의 준비를 해둔 터였는데,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다만 매장 내에 사람이 매우 많아 빵을 고를 때 빠른 선택과 결단이 필요했을 뿐이다. 맛있다고 소문난 빵을 종류별로 집어서 계산을 마치고 나오니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성심당 문화원에 가서 구매한 빵을 일부 먹고, 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대전역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대전역에 도착하니 '여기가 대전역이구나' 알아볼 수 있으리만큼 모든 사람들이 성심당 빵을 들고 있었다. 엄마랑 나는 기차를 기다리며 성심당 빵을 들고 우리를 지나쳐 가는 사람들을 헤아려 보면서 남모르게 킥킥 웃었다. '나도 샀는데, 너도?' 하는 내적 친밀감이랄까.
빵을 품에 안고 집으로 복귀하자, 저녁도 거른 아빠가 빵 봉투에서 그의 최애빵인 찹쌀도넛을 찾아낸다. 지체없이 한입 가득 베어 문다.
그래, 대전은 뭐니뭐니해도 빵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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