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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가드너 Feb 10. 2024

작은 상처가 가져다준 선물


'아! 아!.... 아파' 


몹시 추웠던 지난 1월, 늦은 점심을 먹고 정원으로 나가는 곳에 있는 작업실에서 글루건으로 소품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실수로 순식간에 뜨거운 액체(글루)가 왼쪽 검지손가락 손톱과 둘째 마디사이로 흘러내렸다. 글루에 손이 붙어 버린 거 같이 따갑고 아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그러나 아픈 것은 잠시! 나이 들어가며 다양한 잔소리가 늘어가는 남편이 또 뭐라 할 거 같아 하던 일을 급하게 마무리했다. 


이튿날이 되니 데인 곳에 물집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누가 봐도 손가락에 길고 커다란 혹하나를 붙이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없이 남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의외로 "날씨가 추워서 마음이 급해져서 그랬나 보다."라고 잔소리 대신 위로를 해줬다. 물 닿으면 안 된다고 설거지도 해 주고, 집안에서 작업을 하라고 간이책상까지 만들어 주니,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나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요사이 정신줄을 놓고 사는 게 분명해!'  
'글루건을 이렇게 강력한 전문가용으로 사는 게 아니었어!'  
'근데 난 도대체? 왜? 끝없이 만들고 있는 거야?'  

스스로 자책하며 여러 물음을 해보니, 마지막 질문에 답이 바로 나오질 않고 머뭇거려졌다.


'소품이 뭐길래' 이렇게 손을 데어 가면서까지 만들고 있는 걸까? 

한참을 생각해 보니, 두 해 전, '한국과 뉴욕의 솔방울 이야기'가 시작이었다. 그해 가을 한국 방문했을 때, 40년 절친의 여행선물로 속초 바닷가를 갔었다. 인근에 있던 소나무 숲에서 솔방울을 가져왔는데, 함께 나눈 시간을 소품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더랬다. 


작가가 글로 표현하고, 화가가 그림으로 표현하듯이, 창작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나 보다. 여러 가지로 해보다, 두개의 솔방울을 조명줄로 이어서, 떨어져 있는 친구와 그리고 한국과 연결해 본 적이 있었다.  




그 후, 200개가 넘는 다양한 소품 중 많은 부분이 과거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완성했다. 

핑크빛 안개꽃과 함께 만든 소품은, 자전거를 자주 탔던 기억을 떠올렸다. 40년 전에는 여의도광장에 운동하는 사람이 가득하고, 주말이면 여러 운동 클래스도 열렸었다. 운동신경이 둔한 나를 보고 자전거를 배워서 탄다고 친구들이 깔깔댔는데, 그때의 용기조차도 귀엽고 즐거운 추억이다.     



긴 겨울 지나 초봄에 프리지어를 보면, 피아노가 생각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하게 된 첫 자선 연주회에서 Chopin의 곡들을 연주하고, 받은 몇 개의 꽃다발 중 작은 프리지어 꽃다발이 있었다. 누구에게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꽃 향기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첫 연주의 설레고 떨렸던 기억이라, 프리지어만 보면, 그 시간이 떠오른다.   

    


요즈음, 꾸준히 하던 소품 작업이 조금 따분해지고, 그게 그거인 거 같아 싫증이 나려던 찰나였다. 먹고사는 일도 아닌데 뭘 이렇게 열심히 하나? 싶어 여러 차례 갈등도 했더랬다. 흔히 겪는 '취미 권태기'라고나 할까? 콘텐츠를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자부심은 여전히 있었다. 그럼에도 꽃이라는 소재로, 새로운 것을 계속 창조해야 하는 압박감과 따분함에 나도 모르게 예민해졌다.   


글을 쓰며 되돌아보니, 그동안 꿋꿋이 다양한 소품을 만들며, 내 방식대로 위로받고 힐링하고 있었다. 작업할 때마다, 함께 했던 따뜻했던 인연들,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행복하고 즐거웠다. 잠시 지겨워, 쉽게 포기한다면 소중한 시간까지 놓치고 후회할 거 같다. 지루함을 이기고 얻어낸 결과물을 뿌듯하게 바라볼 수 있음도 삶의 가치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다. 손가락에 생긴 상처가 준 선물이다.  



PS:

작은 상처를 통해, 아프지만, 다시 다짐하고, 새 힘을 얻었습니다. 

몸과 마음의 여러 상처를 극복하고 계신 독자분께 드립니다. '서툰 인생,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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