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다시 피어나는 삶의 기록1
"5자식 중에서 너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거 알지?"
아빠는 식탁 앞에 앉아 언제나 드시는 막걸리 한잔을 따라 놓고 나에게 말을 했다.
나는 아빠가 5형제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이다.
11년만에 원하고 원했던 딸이 태어났기에 세상 누구보다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나이 차이가 나는 오빠 둘, 그리고 밑으로 3살과 6살 터울의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다.
아빠를 닮아 유일하게 멀미를 하지 않았던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 아빠 품에 안겨 버스를 타고 시골집에 가서 많은 친척들을 만났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빠는 나를 자신의 '어린 비서'라고 소개했다.
나는 아빠의 유능한 비서이자 자랑이고 싶었다. 누구보다 이 비서 역할을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많이 이쁨받고 싶었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들고 나는 5형제 중에서 가장 아빠를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아빠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고, 나역시 아빠에 대한 사랑이 변함이 없었다.
독신으로 살겠다던 나는 결혼을 했고, 아빠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아빠를 보러 갔다. 하루 2번 출근하고 퇴근할때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는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에 대한 집착이 있었기에 나는 약속한 시간에 꼭 전화를 했다.
집착이 나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괜찮았다.
한편으론 아빠를 힘들게 했던 시간들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 무렵, 아빠는 반주로 드시는 술의 양이 늘어나 술기운으로 하루를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와 자주 술때문에 싸웠다.
몸은 점점 쇠약해져갔고, 무기력해진 몸은 술을 더 찾았다.
몸을 가눌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지면서 술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아빠가 점점 힘을 잃어가는 사이 나에게는 아이가 생겼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하루 2번 전화와 토요일마다 찾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 되었다.
아빠도 아이가 생긴 나를 분명 이해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보지 못하는 딸의 목소리라도 더 듣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빠의 사랑하는 딸의 역할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역할이 더 시급했다. 엄마가 처음인 나는 모든 것이 서툴고 힘들었다.
점점 약속한 시간에 전화하는 것이 힘들었고, 전화를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아빠의 집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고, 엄마로써의 삶을 이해해주지 않는 아빠가 미워서 전화를 피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 날은 전화를 받을때까지 20통이고 30통이고 전화벨이 울렸다. 내가 받지 않으면 남편에게 전화를 해 나의 안부를 물었고, 엄마와 동생에게까지 안부를 확인했다.
이기적인 아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냥 받으면 될것을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나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아 울고 불고 싸우고, 애원하고, 소리치고, 화해하고, 또 싸우고를 반복했다.
아빠와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내면서 또 그만큼 깊이 사랑했다.
여전히 나는 엄마보다 아빠를 더 많이 이해했고, 아빠 역시 여전히 나를 누구보다 사랑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싸우고 웃고 울고하는 동안 아빠는 점점 야위어갔고 아이들은 커갔다. 아빠는 거동이 불편해졌고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다.
아빠곁에는 엄마가 있었고, 나는 아이들 곁에 있었다.
아빠가 가장 많이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나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자주 아빠를 보러 가지 못했다.
아빠가 호흡곤란으로 119에 실려간 날 이후로 아빠는 병원에 계셔야만 했다.
폐의 기능이 90%이상 손상된 상태였다.
엄마는 아빠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겨지고 나서도 엄마는 간이침대에서 주무시며 아빠를 보살폈다.
엄마는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다.'며 나를 병원으로 불렀다. 나는 하던 모든 것을 멈추고 병원으로 달려갔고 아빠의 머리맡에서 아빠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그럼 아빠는 다시 기운을 냈다.
몇번이고 나는 엄마의 마지막이라는 전화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상하게도 내가 병원에 가면 그날은 아빠가 또 괜찮아졌다. 그런 날에는 아빠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슬픔보다는 웃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아빠 얼굴이 더 젊어 보이네.'
'검은 머리카락이 이렇게 많은데 여기 누워있는 건 안 어울린다.'
'아빠 손가락은 고생 한번 안해본 사람처럼 곱네.'
'오늘 아빠 웃고 있네.'
'누워있는데도 잘 생겼네.'
'내 목소리 다 듣고 있으면서 일부러 말안하는 거지? 하고싶은 말이 많을텐데......'
엄마랑 아빠를 사이에 두고 이런 대화를 나누며 아빠를 한참 동안 어루만지다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그렇게 빨리 내 곁을 떠날 사람이 아니다.
아빠를 병원에 모시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엄마는 우리 형제들을 설득하여 아빠를 집으로 모시기로 했다.
날씨가 엄청 추웠던 12월 26일.
그날 나는 아빠를 보러 가지 못했다. 남편과 오빠들이 함께했기에 나는 상황을 보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아빠를 무사히 집으로 모시고 돌아온 남편은 내게,
"아버님 오늘 기분이 아주 좋아보이셨어. 컨디션도 괜찮으시고. 집에 오시니 좋으신가봐.
오늘은 안가도 될 것 같아. 내일 가서 아버님 만나봐.
정말 많이 좋아지셨어. 혈색도 좋으시고, 얼굴에 생기가 도시더라"
나는 남편의 말에 안도했다.
아빠도 집에 오고싶었던 것이겠지. 낯선 병원이 아닌 엄마와 함께 살던 집으로.
다음날 나는 아빠에게 갈 준비를 하기도 전에,
아빠가 엄마의 품에서 숨을 거두셨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빠의 마지막 얼굴도 못봤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