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맛 나는 한약을 어떤 아이가 좋아할까. 나 또한 안 먹겠다고 버티기 일 수였는데 그런 나를 보시곤 엄마는 꾀를 내셨다. 늘 내가 만져보고 싶어 하던 장식장안의 얇은 금테두리로 감싸진 찻잔을 꺼내와 한약을 담아주신 것이다. 우아한 곡선의 앙증맞은 손잡이를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잡고 왼손으로 살포시 찻잔을 받쳐 들고는 어른놀이에 빠져 홀짝홀짝 한약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여섯 살 때인가? 병약한 내가 한동안 악몽을 많이 꾸고 매일 밤마다 울어대는 통에 지친 엄마는 누군가의 민간요법이라는 말을 듣고 내 손에 소금과 식초를 발라 비벼보기도 하셨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 밤 12시 정각 종소리가 그치고 더 깊은 어둠이 내려앉을 때였다. 몸속을 휘감는 고통에 눈이 떠졌을 때, 현기증이 나면서 나를 둘러싼 어둠이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배를 움켜쥐었고, 아니 어쩌면 고열도 났었는지, 악몽을 꾼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희미한 야광등 빛 속에 나를 쳐다보던 가족들의 모습은 뇌리에 박혀 있다. 세상 어린 꼬마 하나가 아픈 일인데 부모님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 일어나 나를 돌보던 모습 말이다.
어릴 적 악몽을 꾸었을 때나 질병이 나를 덮칠 때면 나는 세상이 너무 크고 내가 너무 작게 느껴져 이걸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몰라 괴로워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그것은 우주 속 돌고 있는 한 행성을 절대 떨어지지 않게 내 작은 손으로 떠받쳐 들어야 되는 일 같은 것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끝이 없이 계속되는 형벌과 같이 내게 작용했기에 끙끙대고 알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던 것 같다.
몸이 아픈 아이는 심약하기도 하기에 그런 나의 모습에 놀라신 조부모님은 새벽의 짙은 어둠을 밝히고 자세를 고쳐 앉으셨다. 자신의 아들과 아픈 아이를 끌어안은 며느리까지 같이 둥글게 원을 모아 앉으라고 일러두고는 손녀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하늘로 올리셨다. 할아버지의 손녀를 위한 그 기도문이 노랫소리처럼 계속해서 들려올 때 나를 옥죄던 무언가가 스르르 풀렸고 내 몸을 들쑤시던 아픔도 잦아들었다.
나는 그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내가 울 때면 내 곁을 지켜주던 어른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이 멈춘 듯한 정적 속 나를 파묻히게 하는 어둠을 끌어내고는 곱고 가는 빛으로 나를 소중히 보듬어주었다. 그 품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세상을 살다 울컥하는 날이면, 혹여 내가 잘못될까 염려하며 나를 내려다보던 그 눈빛들을 꺼내 보곤 했다. 덕분에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병약하다는 소리도 듣지 않으며 무엇보다 나의 안정지대는 단단하고 강인해졌다.4년 전의 위기에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아마도 가족 어른들을 통해 받은 안정감이 만들어 준 나의 튼튼한 자존감과 회복력 때문일 것이다.
닭 손질하는 동안 육수를 냈다
집이 온통 한약재냄새로 훈훈하다. 남편이 토종닭으로 삼계탕을 한다며 황기, 당귀, 엄나무, 능이, 대추등을 넣어 먼저 육수를 한창 우려내고 있는 중이다. 한약재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릴 적 한약을 열심히 먹은 탓인지 나는 그 향만 맡아도 왠지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프다며 며칠 누룽지만 끓여 먹은 내가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다니 토종삼계탕으로 남편이 메뉴를 정했다. 골골한 부인이 신경이 쓰인 건가? 그렇다면 말이라도 이쁘게 해 주면 될 텐데 남편은 말은 못 하고 저렇게 몸으로 표현을 한다.
결혼을 하고 신혼생활이 시작됐을 때 놀랍게도 나는 남편이 기본적인 인사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걸 눈치챘다. 예를 들어 나에게 잘못을 한 후에 "미안해"라는 말을 못 한다는 것이다. 너무 놀랍지 않은가!!
처음에는 이 사람이 자존심 때문에 미안하다고 말을 안 하는 건 줄 알고 재차 물었다.
"왜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을 안 해?"
"꼭 그 말을 해야만 알아? 다 느껴지지."
그는 몸으로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대답은 어물쩍 현실을 비껴나가며 그 단어 내뱉기를 필사적으로 피했다. 고마운 일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나마 미안해보다는 고맙다는 말이 그에게 수월한 듯 보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장이 탈이 나는 일이거의 없으며, 아파도 하루 만에 완치되는 그는 일 년에 꼭 한 번씩 아프고 회복도 느린 나에게괜찮냐라는 질문을 이렇게 던진다.
"으구, 아직도 못 먹어서 어쩌노? 나 혼자 다 먹어야지."
사투리로 투박하게 던지는 그의 말을 해석해 내는 생성형 AI가 지금은 내게 장착이 되어있어 천만다행이다. 같이 사는 동안 계속 작동이 잘 되길 바란다.
끓는 물에 닭을 데친다
남편은 닭 내장을 깨끗이 씻어내며 솔질까지 하고는 꼭 끓는 물에 통후추를 넣어 한번 데쳐낸다. 더러운 거품이 순식간에 올라오니 손이 가더라도 잡내 없는 삼계탕을 위한 필수단계다.
삼계탕의 킥은 주재료에 있다. 무조건 토종닭이어야 한다. 하림 삼계탕용 같은 작은 닭은 가슴살만 한가득 있고 먹을 게 없다. 한 번은 지인이 맛집 토종삼계탕을 사 와 대접해 준 일이 있었는데 귀한 닭다리를 뜯다가 이가 나갈 뻔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토종삼계탕은 질겨서 싫다며 작은 영계닭을 선호하는데, 토종닭은 무조건 2시간을 삶아야 부드럽다. 정말이지 제대로 삶은 토종삼계탕은 다릿살이 녹는다.
부위별로 미리 닭을 손질한 모습
보자기에 양파,파,마늘 넣고 육수부어 2시간 끓이면 완성
이번에는 먹기 전에 남편이 각 부위를 잘라서 삶았는데 오히려 더 먹기 편하고 좋았다. 무엇보다 자메이카 통다리가 그득하게 접시 위에 올라오니 1인 1 다리씩 먹으며 만족감이 최고다. 살을 충분히 발라 먹었다면 삼계탕은 뭐니 뭐니 해도 찹쌀죽이다. 나는 가족들이 먹고 있는 동안 가슴살을 쫙쫙 찢어서 찹쌀죽을 끓여낸다. 요리한 남편을 위해 죽은 내가 끓인다.
아프고 나면 몸보신해야 된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마음보신하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허나 마음보신도 꼭 같이해야 한다. 아플 때 심약해진 마음을 다시 꽉 채워 넣어야 탈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무너질 때 몸도 어딘가 고장 나는 걸 보면 몸과 마음은 하나다.
그러나 중요한 마음보신이 누군가를 통해 자동으로 입력되지 않을 때는 일부러 출력이라도 해야 된다.
"남편이 끓여주는 삼계탕 먹으니 다 나은 거 같아! 여보, 고마워~"
먼저 말로 표현 못 하는 남편을 위해 내가 출력값을 넣어본다.
"맛있나?"
남편은 고맙다는 말에 있는 그대로 반응하기가 부끄러운지 자신의 요리를 확인받는다.
"응. 국물도 진하고 살도 너무 부드러워. 얘들아 너희는 어때?"
"정말 맛있어. 엄마 죽 한 그릇 더 플리즈~"
"흐흐, 잘 먹으니 다행이네. 죽을 또 먹나? 다 나았나 보네."
죽을 한 그릇 더 떠오는 날 보며 남편이 하는 말이 그의 마음이지 뭐겠나. 자동 입력은 아닐지라도 사랑이라고 쓰고 내 마음에 입력해 넣었다. 몸도 마음도 온기로 따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