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똑 닮은 책을 출간하기까지(8)

첫 책 출간 과정의 기록

by Helen

글을 쓸 때 참고하는 나만의 글쓰기 체크리스트가 있다. 예전 논문 지도교수님께 배운 내용을 나에게 맞게 정리해 둔 것이다. 처음 책을 쓸 때에도, 그리고 이번 교정 작업도 이 체크리스트를 바탕으로 진행했다.


1. 일단은 생각나는 대로 쓴다.
2. 1차적으로 문장의 순서를 정리하며 흐름을 점검한다.
3. 문장을 짧게 다듬는다.
4. 문단은 3~4 문장 정도로 구성한다.
5. "나", "나의" 등 1인칭 표현을 최소화한다.
6. 불필요한 형용사와 부사는 줄인다.
7. 접속사를 최소한으로 쓴다.
8. 문장의 어미가 반복되지 않도록 표현을 다양화한다.
9. 같은 단어가 반복될 경우 다른 말로 바꿔본다.
10. 쉼표, 따옴표, 말줄임표 등의 사용을 점검한다


이렇게 나름대로 신경 써서 썼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교정을 시작하니 불필요한 수식어와 접속사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내가 자주 쓰는 표현들도 눈에 들어왔다. ‘예를 들어’, ‘참고로’ 같은 표현을 그렇게 많이 쓰는 줄 미처 몰랐다. 한 페이지 안에 돼지꼬리(삭제 표시)가 수두룩하다.


지우고 나서도 문장은 멀쩡히 잘 읽힌다. 아니, 오히려 더 명확해진다. 방심하는 순간 다시 도배되는 이 수식어들. 도대체 내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길래 이토록 불필요한 치장으로 글을 꾸미는지 스스로도 궁금하다.


교정 중 가장 애먹은 건 따로 있었다. 초고 작성 당시 ChatGPT에 의존했던 부분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콘텐츠가 충분해서 직접 내가 쓴 부분은 문제가 없었지만,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해서 자신이 없는 부분은 챗GPT에게 초안을 부탁하고 간단히 검토한 후 원고에 포함시켰다. 결국 그 문장들이 교정 과정에서 발목을 잡았다.


챗GPT가 써준 문장들은 얼핏 보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손에 안 잡히고 실체가 없는 내용 투성이다. 문득 직장 다닐 때 봤던 보고서들이 떠올랐다. 멋진 말이 나열되어 있지만 그 일을 아는 사람이 보면 실행이 안될 것이 뻔히 보이는 보고서가 있는 반면 투박하게 쓰여있어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히 보이는 보고서도 있었다. 챗GPT가 쓴 글은 전자에 해당된다.


내 책은 업무 매뉴얼을 지향한다. 겉만 번지르르한 문장은 독자에게 혼란만 줄 뿐이다. 결국 챗GPT로 초안을 썼던 문장을 전부 내 언어로 다시 썼다. 초반에 손을 덜려다 후반에 고생을 사서 한 셈. 역시 처음부터 제대로 써야 후반부에 덜 후달린다. 어쩌면 인생도 이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책의 가장 앞에 나오는 저자의 글. 교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문득 욕심이 생겨 통째로 갈아엎었다. 고치고 나니 비로소 영혼이 깃든 글이 된 것 같다. 편집자와 디자이너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


어제 세 번째 교정지를 편집자에게 넘겼는데, 오늘 아침 결국 편집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표님~ 제가 8월에는 좀 바빠서요...

그리고 교정이란 게 봐도 봐도 또 고칠 게 나오는 거라...

책이 다 나가서 개정판을 내게 되면, 그때 수정하셔도 되고요..."

"죄송해요. 이번이 내용 수정은 마지막이에요."

그렇게 말하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개.. 개정판이요???
그럴 리가요^^;;


(to be continued)



매거진의 이전글나와 똑 닮은 책을 출간하기까지(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