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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25. 2020

14.도축 일주일 전, 고사에는 머리를

돼지를 부탁해


6월, 농사의 반이라 불리는 모내기가 끝났다. (요즘은 기계가 벼를 심는 덕에 모내기 자체가 농사의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는다. 대부분의 모종이 심겨지는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모내기는 여전히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거사를 끝내고 사람들은 한숨을 돌렸다.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즈음 마을 입구에 정자가 지어졌다. 훤칠한 팔각 지붕의, 바람이 솔솔 부는 쉼터였다. 


새 정자는 곧 오래된 정자를 밀어내며, 마을의 중요 사랑방이 되었다. 할머니들에게 마을 회관을 빼앗긴 할아버지들의 피난처였다. 마루가 높아 마을 논들이 훤히 보였다. 오고가는 사람, 장에서 오는 버스가 머물다 갔다. 주거니 받거니 낮술이 오가고 화투패를 섞던 중이다. 새 건물이 생겼으니 고사를 지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많아진 농촌은 노인회 힘이 막강했다. 이장은 심부름꾼에 가까웠다. 이장L은 젊을 때 도시로 나갔다가 결혼하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을의 대소사와 함께 해온 농부였다. 


이장L은 동네에 무슨 일이 있다 싶으면 군의원은 물론 도의원에게도 거침없이 전화를 걸었다. 마을회관 창호 교체와 태양광 발전 시설 설치도, 방범용 CCTV설치도 전화로 진행되었다. 이장L의 힘은 전화기에서 나왔다. 이미 있던 정자 옆에 정자가 새로 지어진 것도 그 힘이었다. 빠른 일처리는 이장L의 시그니처. 공교롭게도 차량 번호도 8181(른 처리). 그의 차는 언제나 면사무소 아니면 농협에 서있다. 하지만 이 거침없는 행정가도 말을 할 때는 하필 목이 메이고 혈압이 오르는 것이었다. 얼굴이 빨개지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헛기침을 했다. “그러니까, 험험”. 헛기침은 가슴 속 말을 꺼내는 펌프질 같은 것이었다. 이장을 수행하는 반장으로서 의중을 감히 살펴보자면 그렇다. 회의 내내 입술을 달싹거리지만, 그의 말은 목구멍 고개를 넘지 못한다.  


그해 겨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라는 돼지 전염병이 돌았다. 치사율 100퍼센트에 가까운 병이다. 동네에는 돼지를 키우는 이웃이 있다. 혹시나 우리 돼지들이 전염병을 옮기는 지점이 될 수 있었다. ‘진짜' 돼지를 키우고 있는 이웃으로부터 빨리 없애라는 압박도 받았다. “(병에) 걸리면 동네에서 쫓겨나." 내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해 할 수 있었다. 생계는 진지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돼지 15만 마리가 살처분 되었다. 전파 매개로 지목된 멧돼지 2만 1,000마리도 죽었다. 방역 상황이 어찌나 엄혹히 돌아가는지, 산골에 숨어든 간첩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이장L을 찾아갔다. 제발 저린 나는 마을에 폐를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돼지를 빨리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이장L의 답은 싱거웠다. “(험험)괜찮아. 더 키워~” 그저 한마디 말이었지만, 이장L의 말은 큰 용기가 되었다. 


고사를 어떻게 지낼 것인가, 회의가 끝나고 이장L을 쫓아간다.

“돼지머리, 제가 내겠습니다.”  


고사상에는 돼지머리가 올라간다. 마침 돼지 한 마리를 잡기로 했던 터이다. 돼지들이 온 지 한달 남짓 된 때다. 돼지머리를 마을 고사상에 올리고 싶었다. 동네에서 자란 돼지로 제사 지내면 신령님도 좋아하지 않을까요?


“그려? (험험) 예쁘게 삶을 수 있겠어?” 이장L은 얼굴이 벌개지며 웃었다. ‘예쁘게’는 웃는 얼굴을 말한다. 돼지머리 손질이 어려운 일일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삶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예쁘게’라고 하니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 같다. 부녀회장님이라면 알겠지. 갸웃거리며 그러마고 말했다. 


“부녀회장님이랑 얘기해볼게요.”

 

돼지를 잡고 알게 된 사실은, 돼지는 튀어나온 주둥이 만큼 입이 길다. 입꼬리가 귀를 향해 살짝 올라가 있다. 먹고 죽은 귀신 때깔이 좋기 때문일까. 먹는 걸 좋아했던 돼지의 입은 귀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웃는 상이었는데, 이땐 그걸 잘 몰랐다. 


“돼지머리(삶기)는 대가 끊겨서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부녀회 총무님이 말했다.  


동지, 대보름, 명절, 복날 등등에 온갖 경조사에서 부녀회의 활약을 보며, 부녀회를 신봉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대가 끊겼다’라니… 그냥 삶으면 될 것 같았는데, ‘대가 끊겼다’는 말까지 들으니, 더 어려운 기술 같이 느껴진다. 무형문화재 기술 같은 걸까 싶기도 하고, 그제서야 제사에 쓸 머리를 아무렇게나 삶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노여움을 사서 저주라도 내리면...험험. 


황망히 돼지밥을 챙겨주던 때다. 멀리서 흙먼지가 일었다. 이 외진 곳에 누가 오는 걸까. 전동 횔체어 한 대가 흙길을 뚫고 오고 있었다. “위이이이잉-”(전동차는 꽤 느리다) ‘마을잔치-무형문화재’ 뒷집 할머니다. 동네의 온갖 잔치를 치뤄내신, 장인 중의 장인이다. ‘마무문’은 예전에 내가 땅을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나를 불렀다. 혼자만 알고 있는 좋은 터를 소개해주셨다. 작고 조용한 곳이었다. 아니, 제게 왜 이런 고급 정보를 주시는 건가요. 이런 친절은 보이스피싱 이후 처음이에요. “나도 땅 없이 살아봐서 그려. 자네가 우리 동네 살면 좋잖여" 비록 거래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마무문은 그런 분이었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난 마무문께서 외진 곳까진 어쩐 일로 오셨을까. “위이이이잉-”(전동차는 아직 오는 중이다)

 

“저기, 그 돼지머리 말이여. 내가 삶아줄게” 


어떤 물결이 마음에 일었다. 마무문은 내가 돼지머리 문제로 난처해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오신 것이다. 머리를 낸다는데 삶는 건 다른 사람이 해야지 않겠냐고 하신다. 아니요, 방법만 알려주시면 제가 할게요. 아녀, 머리가 통째로 들어갈 솥도 있어야 되잖여. 손질만 해서 가져와. 돼지를 언제 잡을 건지 물으셨다. 머리를 어떻게 가져오면 되는지 알려주셨다. 마무문은 전동차에서 내렸다. 꼬부라진 허리를 펴며 돼지우리로 왔다. 벽 너머의 돼지를 보았다.


 “와따메, 꽤 크네.”


머리가 꽤 큰편이다


가축을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큰 동물 작업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마을 어른들도 돼지 잡기는 여럿이 모여서 한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큰 일을 앞두고 잡는다. 오랜 시간을 잡아온 덕인지 알아서 각자 역할을 맡는다. 뼈 담당은 알맞은 크기로 뼈를 자른다. 고기 담당은 사료포대를 크게 펴놓고 그 위에 큰 덩어리로 턱턱 잘라낸다. 내장 담당은 내장을 꼼꼼히 씻는다. 부녀회는 요리를 담당한다. 국밥을 끓이고 수육을 삶는다. 돼지의 생명을 거둘 땐 모두가 숙연하다. 멱따는 소리가 울릴 때는 누구도 농담을 하지 않는다. 불을 피우고 술 한잔 마시면서 긴장은 풀어진다. 고기를 구워 먹으며 사람들은 윷을 던졌다. 이가 약한 어르신들은 수육을 먹었다.   


잔치의 흥분 속에 돼지 한 마리가 어느새 뚝딱 사라진다. 마을에서의 돼지 잡기는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칼에는 일말의 고민이 없었고 작업 지시도 없다. 모두 제 역할을 안다. 칼솜씨 감탄에 나이 칠십 어른은 그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다. 당일에는 조금 먹고, 대부분은 냉동을 시킨다. 뼈를 삶아 먹고, 국물을 내며 노인회의 긴긴 식량이 된다. 불앞에 모이고 음식을 나눈다. 인류가 늘 그래왔듯, 둘러앉은 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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