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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선언을 함과 동시에 귀신같이 따라오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백수 플래너'다. 백수가 원하지도 않는데 백수의 일정을 계획해주는 부류인데 백수 선언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고 본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백수들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가는 악의 무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백수는 그저 시간이 많은 존재이다. 백수의 시간은 어차피 남아돌기 때문에 함부로 해도 되는 것으로 여기면서 "ㅎㅎ 백수 돼서 좋겠다."라는 건조한 리액션과 함께 "이제 시간 많아서 좋겠네?"라는 말로 목적 달성을 위한 밑밥을 깐다. 조금만 기다리면 하찮은 그들이 고귀한 백수에게 왜 전화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정말이지 생각 없이 위와 같은 말을 백수에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 같아선 볼기를 타작해주고 싶다. 문장을 하나하나 떼어놓고 봐도 전부가 다 거슬리는 말들 분이다.
이 말이 얼마나 웃긴말이냐면 내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내 삶 이외의 것들에게 시간을 뺏기지 않으려고 백수 선언을 한 것인데 그 시간을 인터셉트해서 본인에게 쓰라는 신박한 폭력인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이 되어 생각하고 살아본 것이 아닌 이상 완벽한 역지사지란 불가능하겠지만 일상에서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상태만으로 예단해서 실수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키우던 반려견을 떠나보낸 직후의 사람에게 "정말 슬프겠구나... 밍크(반려견 이름) 떠난 김에 강아지 새로 하나 들여"라고 말하거나 아직 실연의 아픔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헤어진 김에 새로운 사림이나 만나~"라고 말하는 등 반려견과 헤어진 사람이 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전후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뱉은 위로는 오히려 말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이다.
'백수가 얼마나 바쁜지에 대한 설명'이 '정신승리'하기 위해 시작되었을 지라도 시간이 많은 우리는 결국 승리하게 된다. 우리는 상대도 알고 있듯 시간 부자기 때문에 간단한 안부를 물어보는 척하면서 호구조사를 시작하고, 간단히 끝낼 지인의 근황을 지인의 육촌의 사돈까지 물어볼 수 있다. 장광설 끝에 꼬리를 내리는 사람은 당연히 우리보다 시간이 없는 '백수 플래너'이다. (케헤헤 이것이 바로 백수다!!)
당해봐야 아는 경우가 있다. 역지사지를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면 백수가 강제로 알려주자. (우리는 시간이 많은 너그러운 이니까...) 눈눈이이뻔뻔(눈에는 눈 이에는 이 뻔뻔함엔 뻔뻔함) "아 그렇다면 너도 이 일 좀 해줄 수 있어?"라고 물으며 은근히 상대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는 척하면서 우리는 두 개를 요구하는 식이다. 먹히면 개이득이고, 안 먹히고 상대가 나에게 화를 내면 '당신이 나에게 한 부탁이 그런 느낌이다.'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으니 이것도 이득이다.
'정신승리'는 정신승리일 뿐이다. 길고 긴 설명이 끝나고 나면 오히려 이런 일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는 사실이 정신건강을 해친다. 오히려 단호하게 "그 일을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눈치가 좀 있는 '백수 플래너'라면 이쯤에서 그만두는데 가끔씩 눈치 없는 이들이 "왜 어려운데?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온다면 참지 말고 "그런 일을 하려고 백수한 게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당신이 백수의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직시해 주자.
백수의 시간이 헐값이라 생각지 말아야 한다. 백수들의 시간은 일반인들의 곱절 이상 소중하며, 시간은 두배 이상 빠르게 가는 것 같다. 노는 주제에 영양을 생각한 식단을 생각하고, 쉬는 주제에 바이오리듬을 신경 쓰는 존재가 바로 백수이다. 세상에 함부로 대해도 좋은 존재는 없다. 백수도 마찬가지다.
백수를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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