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략컨설팅[H] 한봉규입니다.
지난 시간 그러니까 앞글은 '협력의 비밀' 두 가지를 알아낸 사건을 로버트 엑셀로드 교수의 '협력의 진화'를 통해 소개했습니다. 비밀 중 하나는 '호혜주의' 였습니다.
좋게 보면 '품앗이', 달리 보면 '짬자미' 같은 미 상원 의원 간 협력 형태를 '호혜주의'로 본 시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팃포탯'이 협력을 끌어내는 중요한 전략임을 엑세로드 교수가 실험 연구를 통해 밝혔다는 내용까지 소개했습니다.
다들 기억이 나실 겁니다. 떠 오른 기억 중에 'T > R > P > S 순서가 중요하다'라는 말도 있을 겁니다.
이 얘기는 반복적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포함한 모든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의 순서를 말한 것이고, 이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로버트 엑셀로드 교수의 실험 연구 시사점입니다.
참고로 T: 배반의 유혹 > R: 상호 협력에 대한 보상 > P: 배반에 대한 처벌 > S: 머저리의 손 입니다. 이때 각 보상은 꼭 정해진 것이 아니고 임의로 보상을 상징하는 숫자를 입력해야 하지만 R이 T 보다 보상의 숫자가 높지 않다는 규칙만 지키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를 매트릭스로 표현한 것이 앞글에 소개한 '죄수의 딜레마 매트릭스' 입니다.
Berthe Morisot(1841-1895. 프랑스). Eugene Manet (1833-92) with his daughter at Bougival, c.1881
죄수의 딜레마의 내시균형은 [배반 - 배반, 둘 다 모두 5년 형(여기서 5년 형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임의로 정한 보상의 숫자)]입니다. 더 나은 대안인 [협력 - 협력, 둘 다 모두 1년 형]이 있음에도 어찌 된 일인지 이 대안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시사점이었고, 이 내시 균형을 어떻게 깰 것인가라는 화두를 남겼다는 얘기를 여러차례 한 바 있습니다.
한데 이와 반대되는 상황이 있다면 이를테면 '공존 공영 시스템'이라는 담론을 남긴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에서 등장한 영국과 독인 군 간의 '크리스마스 휴전' 같은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상황을 영국군 한 참모 장교의 기록을 빌면 이렇습니다.
나는 독일 병사들이 그들 방어선 안의 아군 소총 사정거리 내에서 태연하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군 병사들도 그것을 보고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나중에 우리가 이 지구를 맡게 되면 이런 것부터 뜯어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건 있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병사들은 현재 전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양측 모두 '공존 공영' 정책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게 분명했다.
- 로버트 엑셀로드. 협력의 진화. 99p -
이를 참호 전투 딜레마 표를 만들면 상호 협력이 내시 균형입니다. 한데 이는 전쟁 지휘부에서는 바라는 바가 아니죠. 실제로 지휘 본부는 소모전을 통해 승리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른바 제로섬 게임을 만들려고 했지만 전선에서는 상호 보복보다는 상호 협력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한곳에서 일어난 특이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독일군과 대치하고 있는 전선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 양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협력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요?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병력 이동이 잦았고, 사상자도 속출했습니다. 어느 순간 일진일퇴 양상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비공격성이 자연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유력합니다.
심지어 누가 먼저 '그만' 또는 '휴전'을 외친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와 관련해서 유력한 설은 '식사 때문일 것이다'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양측은 완충지대에서 병사들에게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한 비위탁 장교의 기록을 보면,
매일 저녁 어둠이 깔린 뒤 ( 중략 ) 보급 장교가 전투 식량을 가지고 왔다. 완충지대에 그것들이 뿌려지면 병사들이 전선 밖으로 나가서 가져오곤 했ㄷ. 아마 적들도 그렇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며칠 밤 동안 그 시각이면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그러다 보니 전투 식량을 나르는 병사들은 두려움이 없어졌고 나중에는 웃고 떠들면서 참호로 돌아왔다.
- 로버트 엑셀로드. 협력의 진화. 103p -
식사 시간에서 비롯한 상호 협력은 전쟁사에 기리 남을 '크리스마스 휴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후로도 양측은 소리를 치거나 신호를 통해 종종 휴전을 감행했고, 심지어는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한 시간 동안은 '개인 시간'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어떤 지역은 깃발로 표시한 지역은 저격수로부터 안전했다네요.
지휘부는 이런 병사들의 태도에 대해 명령과 훈령으로 강경하게 대응했고, 군사 재판에도 회부시켰습니다. 대대 전체가 처벌을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양측 병사들은 구두로 맺은 협정은 상부 명령에 따라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빈도수는 잦아들었지만, 상호 협력 상태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 방법은 이러이러했습니다.
양측 병사들은 이제 말보다는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꾼 것이죠. 이를테면 기본 욕구가 서로 비슷하다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이 믿음은 다른 행동으로 옮겨갔는 데, 예를 들어 사격 자제 시간이 점차 길어졌고, 식량과 물을 실은 차량은 정조준하지 않은 것은 물론 아예 포격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서로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이런 방식으로 강화하면서 모종의 신뢰가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뢰는 단순히 스스로의 믿음으로만 단단해진 것은 아닙니다. 상호 협력하는 동안에도 필요하면 즉각적인 보복을 감행했습니다. 독일군 폭격으로 영국군 5명이 죽으면, 영국군 역시 집중 사격으로 독일군 5명을 사살하는 방식이습니다.
이런 보복 능력을 서로 과시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배반은 파멸이라는 정서를 각인한 것이 신뢰의 바탕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참호전을 치르기 위해서는 1개 대대가 8일에 한 번씩 교대를 하는 데, 이때 새로 온 부대원들에게 상호 협력 체제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그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공동 근무를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건드리지 않으면 저들도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다'라는 것이 교대 부대 간 금언일 정도였다네요.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적과 대치하고 있는 보병은 후방 포병 관측 장교가 파견 오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바랍니다'라는 부탁을 했고, 장교는 '자네들이 원치 않으면 그렇게 하지'라며 응답했다고 합니다.
식사 시간이 만든 상호 협력이 전쟁을 곧 끝낼 것 같은 분위기까지 고조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지휘부 생각은 양측 병사들의 바람과는 달랐습니다. 달라도 너무 달랐죠. 지휘부는 전선의 이 묵시적 협력을 깨야만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의 내시 균형을 깰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지휘부가 찾은 대안은 '기습작전'입니다.
통상 10명이었던 기습 부대 규모를 200명으로 늘린 것입니다. 정교하고 세밀하게 작전 계획을 수립했고, 정확하게 타격했습니다. 결과는 지휘부의 승리! 묵시적 상호 협력 즉, '공존 공영 시스템'이 붕괴한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이 '공존 공영 시스템'이 왜 단번에 부서진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기습'이라는 특성에 기인합니다. 요컨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기습 부대 규모가 타격한 상대의 손해는 막심했습니다.
한 마디로 멘붕인 셈이었죠. 또한 '기습'이라는 점에서 상대는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보복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도 두려움을 가중 시켰습니다. 결국 기습을 당한 부대는 상대를 배반하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 결과 총 공세를 펼친 연합군이 승리를 거머쥔 것이 제1차 세계 대전 얘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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