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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달그락 그 정겨운 소리

그 다정한 소리

by 샨띠정

깊은 단잠을 자고 꿈결을 지나는 이른 아침. 나는 언제나 엄마의 부엌에서 들리는 달그락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그릇이 서로 닿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 같은 그 그윽한 소음이 잠들어 있는 내 세포들을 깨웠다. 이불속에서 더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신호이자 알람 소리와도 같았다.

어린 시절 방학 때면 줄곧 머물며 시간을 보내던 외갓집 부엌에서 들리던 달그락 소리와

엄마의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달그락은 닮아 있었다. 포근하고 맛있으며 평온했다.


해가 뜨는 시간에 삐그덕 문 열리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그 뒤를 따라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달그락 소리가 고요한 아침을 채웠다. 아무리 작아도 크게만 들리는 마법의 소리처럼.


달그락 소리는 부지런함의 상징이며, 풍요와 배부름의 향기였다. 밥 짓는 내음이 온 집안을 감싸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있었다.


"일어날 시간이다. 일어나."


남동생은 한 번도 꾸물거리나 다시 이불을 뒤집어쓴 적이 없었다. 항상 벌떡 일어나 씻고 학교 갈 채비를 하곤 했다. 나는 더 자고 싶은 마음이 몸을 어찌나 강하게 끌어당기는지 힘겨운 기상을 해야만 했다. 한번 더 들리는 엄마의 짧은 외침을 듣고서야 이불을 박차고 밖으로 나오곤 했으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침은 거의 거르지 않고 꼭 챙겨 먹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정갈하게 차려진 따뜻한 밥상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공복을 채워주던 따끈하고 보슬보슬한 밥 한 공기와 그 곁에 변치 않고 자리를 지키던 맑고 구수한 국 한 그릇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가방 속에 계란프라이 하나 정도는 밥에 올려진 도시락을 넣어 서둘러 집을 나서던 그 시절, 그 아침을 사랑한다.

달그락 소리가 빨라지고 엄마의 손이 바삐 움직이던 그 이른 아침에 들리던 달그락 소리는 우리의 점심까지 책임지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 내가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었다. 내 손 끝에서 들려오는 달그락 소리는 여전히 서툴고 엇박자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왜일까? 나의 달그락 소리를 딸아이도 그리워하게 될까? 기억은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달그락 소리도 누군가에게 그리움과 다정함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살다 보니 내겐 식탐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밥상에 앉아 서둘러 숟가락을 들지 않고 천천히 식사를 한다는 것도. 먹고 싶은 것이 많기도 하고, 대체로 잘 먹는 편이긴 하지만 먹는 일에 그리 욕심은 없다.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야 그 해답을 얻었다.


친정에 잠시 들렀다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문득 그 이유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과 나의 성장기 시절 우리 집에는 먹거리가 늘 풍성했었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우리 집 광이나 벽장에는 우리가 먹을 만한 간식거리가 가득했다. 무엇보다 엄마는 풍성한 밥상을 때마다 완성하셨고, 바쁜 와중에도 우리들과 할머니를 위해 간식을 만들어 대시지 않았던가? 먹다가 부족한 적이 없을 정도로. 엄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늘 맛있는 음식으로 우리를 풍성하게 먹여주셔서 고마워요. 배고프지 않게 밥상을 가득 채워주셔서 너무너무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엄마는 지금도 종종 전화를 걸어오신다.

"호박죽 끓였다. 와서 먹고 가."

"반찬 좀 만들었다. 시간 있으면 와서 가져 가."

"김치 담갔다. 가져 가."


내가 반찬 가져가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투덜거리며 귀찮아하는 나. 하지만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나는 안다.

엄마의 달그락 소리를 다시 들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나는 철없는 큰딸이다. 팔순이 훌쩍 넘어버린 친정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에 둘러앉아 수저를 드는 그 순간을 지금도 사랑한다.


역할이 바뀔 때가 지났는데도 말이다. 이제 나의 달그락 소리에 엄마를 깨워드려야 효녀라는 말을 들어볼 수 있을 텐데. 난 언제쯤 그리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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