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좋아하는 도시여자가 시골에 적응해가며 끄적이는 농부되기 프로젝트
꽁꽁 언 땅은 자연스레 봄이 되면 녹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농부라면 땅을 뒤집는 건 아주 기본 중의 기본이어야 한다.
특히 벼농사를 할 땅은 세 번 뒤집어야 한다. (우리 집 기준)
제초를 할 때만 하더라도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었으니 들판과 논이 잘 구분되지 않았지만
아빠의 트랙터가 논을 하루 갈아내고 나면 논과 논두렁에 경계가 생긴다.
이틀 갈아내고 나면 논에 있던 잡초들이 진흙더미로 변하고,
3일 차에 다시 논을 돌고 나면 제법 평평한 논의 모습을 갖춘다.
세 번째까지 논을 갈아엎고 나면 물을 댄다.
자박자박하게 채워진 물이 바람에 이리저리 잔물결을 치면서 땅은 점점 고르게 내려앉는다.
그 일주일 동안 땅의 변화를 지켜보며
문득 속 뒤집어졌던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굳이 왜 그런 일을 해서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걸까.
왜 나는 그것을 참지 못할까. 이해하지 못할까.
그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아직도 마음이 요동치고 있는 내 자신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던 때에
땅이 대신 세 번이나 뒤집어주니,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인생의 고비가 통틀어 세 번이면 좋겠지만
사실 해마다 제 나름의 고비들이 세 번 정도는 찾아오는 것 같다.(이 역시 내 인생이 기준)
가족에서든, 친구에서든, 회사에서든.
고비를 겪으며 내 마음이 수없이 뒤집어지고 갈아엎어지는데…
지나고 보면 진짜 좋은 사람과 영 나랑 안 맞는 사람이 구분되고,
지나고 보면 영 별로였던 사람이 사실은 너무 좋은 사람이 되고,
지나고 보면 좋은 사람도 영 아닌 사람도 내겐 아무 상관이 없게 되기도 한다.
아, 그렇다.
우리들 속이 종종 뒤집히는 건
겨우내 언 땅이 녹아가며 뒤집히는 것만큼이나
건강해지려는 자연의 섭리였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생의 고난과 고비를 웃으며 관망할 만큼
성숙한 인생을 사는 건 아니지만…
이젠 속 뒤집히는 일들이 닥쳐올 때마다 그저 뒤집어지게 내버려 두는 건 어떨까.
애써 참지 않고, 애써 덮어두지 않고, 굳이 더 뒤집어버리는 것이다.
한 번 뒤집어서 괜히 사람을 잃었다면
두 번 더 뒤집으면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나를 이해하는 진짜 내 사람이 돌아오기도 하지 않을까.
괜히 한 번 뒤집었다가 후회하면서
이불 뒤집어쓰고 속상해하고 미안해하고 그러지 말아 보자.
오히려 과감하게 한 번 더, 뒤집어 보자.
아직 녹지 않은 땅 속의 땅이,
아직 닿지 않은 마음 속의 마음이
햇볕을 쬘 수 있도록.
세 번 로터리 친 땅은 아주 평평하다.
내 마음도 언젠가 저 땅처럼 평평해지길 바란다.
뒤집힘 끝에야 비로소 자리를 잡듯, 내 마음도 이제 조금 자리를 찾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는 모가 뿌리내릴 차례다.
다음 이야기는, 드디어 모내기다.
세 번 로터리 친 땅이 아주 평평하다.
내 마음도 아, 좀 평평해졌으면.
(다음엔 드디어 모내기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