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이직-공부-사랑-달리기-출장-글쓰기
여기는 캄보디아 프놈펜. 2022년이 시작되는 0시. 2022 새해를 알리는 불꽃놀이 소리가 펑펑 울린다. 하늘이 찢어지며 2022년의 새 하늘이 열리는 소리. 바깥은 한창 축제의 현장. 나는 거실 식탁에 홀로 앉아 음악도 없이 앉아 있다.
아파트 탑층, 수영장에 올라가면 폭죽놀이가 보인다 했다. 엘리베이터 버튼 한 번이면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데 나는 그걸 왜 거부하고 있을까. 올해의 마무리는 기분이 좀 이상하다. 항상 별다른 생각 없이 흘려보냈는데, 올해는 어쩐지 잘못 보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2021년 어떤 한 해를 보냈을까. 다사다난 하기는 했던 것 같다. 나는 퇴사를 했고, 이직을 했으며, 잠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었으며, 여러 자격시험들을 준비했고, 연말에는 캄보디아 출장을 오게 되어 여기에서 벌써 1개월이란 시간을 보냈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딱히 내가 크게 변화하지는 못한 기분. 어쩐지 허하다.
1월 - 퇴사 ➡관련 이야기_팀장 하기 싫어서 퇴사하고 읽은 책
2월 - 휴식, DAP 강의 수강(계속)
3월 - 이직, DAP 강의 수강, DAP 시험(1차 시도, 불합격)
4월 - 셀프 인터뷰집 만들기(30일/60일), 사회조사 분석사 준비
5월 - 셀프 인터뷰집 만들기(60일/60일), 사회조사 분석사 시험(필기 합격)
6월 - 첫 국내 출장(부산), DAP 시험(2차 시도, 불합격), 약간 사랑에 빠짐
7월 - 바로 실연
8월 - 달리기 시작
9월 - DAP 시험(3차 시도, 불합격) ➡관련 이야기_실패를 다루는 마음에 대해서
10월 - SQLD 준비
11월 - SQLD 시험(합격) ➡관련 이야기_비개발자 직장인 SQLD 3주 합격, 캄보디아 출장(10일/69일)
12월 - 캄보디아 출장(41일/69일) , 독서 결산 ➡관련 이야기_올해 독서 74권_직장과 독서생활 병행하기
주요한 사건들로 기억되는 것들을 쭉 나열해보니 아무런 이벤트 없이 지낸 날은 없었던 것 같아 뿌듯하다. 그럼에도 잘한 선택, 좋은 결과를 낸 일들이 있었고, 결과가 좋지 못했던 일들도 있었다.
첫 번째로 잘한 일은 단연코 퇴사다. 시기적절한 때 손 흔들어주는 팀을 만나 더 쉽게 퇴사라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너무나 많은 걸 보고 배울 수 있었던 첫 회사였지만 우리는 떠나야 할 때임을 알게 되었을 때에 주저 말고 떠날 수 있어야 한다. 퇴사의 과정 속에서 나는 진실되지 못하였던 점은 후회가 된다. 그렇지만 다시 그날들의 상황 속으로 되돌아 간대도 어찌할 바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내 진실이 모욕일 수 있음을 이해한다. 그리고 결국 내 욕과 루머로 돌아오게 될 퇴사 선물과 편지들도 그대로 고이 드리고 나올 것이다.
퇴사 후에 나는 휴식과 치유의 시간을 가지며 지난 2년 간 급격하게 나빠졌었던 손목과 아킬레스건이 단지 무리한 활동 때문이 아니라 내과적 질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적절한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정형외과나 재활의학과가 아니라 내과를 다녀야 함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이제 점심시간 물리치료와 침 치료실을 전전하는 일은 없다. 아직 손목은 운동은 무리이지만 다시 달리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휴식은 확실히 다음 도약을 위해 필요하다. 1, 2월 약 2개월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앞날의 나를 위한 재정비의 시간이 되었다.
두 번째로 잘한 일은, 여러 자격시험에 도전했던 것이다. 대학생 때도 처절하게 느꼈던 사실이지만, 어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때는 철저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0의 상태를 1로, 또 10으로, 100으로 만드는 건 오로지 시간이다. 시간만 할애하면 얼마든지 우리는 무언가를 배울 수가 있다. 그리고 시간을 할애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정한 시간대를 확보'하는 일이다. 그것을 실현해내기 위한 기법들은 새벽 기상이나 철저한 시간관리 등 서점가에 가면 널려 있는 자기개발서들에서 습득할 수 있다. 쉽다. 내가 느끼기에 우리를 정말 고군분투하게 하고 좌절시키는 것은, 자괴감과의 싸움이다. 내 기대보다 성과가 낮을 때, 남들보다 느릴 때, 우리는 곧 잘 실망한다. 그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참 중요한데, 올 한 해 동안 부단히 잘 해왔다. 때로 아주 슬프고 마음이 낮아졌지만 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로 잘한 일은,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사실 글쓰기를 완전히 그만둔 적은 없다. 글쓰기라기에 조금 쑥스러운 혼자만의 일기나, 인스타그램의 일상생활(주로 책)과 관련된 토막글들이지만 말이다. 일기를 좀 더 진지하게 작성해볼 수는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컨셉진에서 진행하는 30일간의 자문자답 인터뷰 프로젝트를 참여하게 되었다. 30일 간 아침마다 하나의 질문에 답을 하면, 그 답변을 모아서 작은 책자로 만들어 주는 프로젝트였다. 하는 내내 나에 대해서 새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서 60일 프로젝트로 연장해서 나에 대한 60문 60답이 담긴 책자를 만들었다. 2021년의 나를 활자 세계에 박제하고 새로운 내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서 하던 책스타그램에서 확장해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새로운 플랫폼에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인스타그램에서 글자 수가 초과될 정도로 수다쟁이가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가끔씩, 글을 더 쓸 수 없을 정도의 분량의 말이 쏟아질 때면 인스타그램은 확실히 사진 중심의 플랫폼이구나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글이 중심이 되는 플랫폼인 브런치에 기웃거리다 작가 신청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퇴사에, 이직에 때마침 해외 출장까지 오면서 만감이 교차하고 이런저런 고민과 생각들을 많이 하다 보니 가끔은 글감에 쫓기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쌓여 가는 글들을 보면 확실히 뿌듯하고 쓰는 과정도 참 재미있다.
첫 번째, 나는 내 말만 늘어놓는 부류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본래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에는 큰 관심이 없다. 다들 본인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싶어 한다. 때문에 대화 속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상대방의 말을 끊고 내 할 말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식으로 상대방의 말속으로 뛰어들면, 상대방은 내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중단된 말을 다시 이어 붙일 고민만을 하게 된다고 한다. 나는 여전히 상대방의 말을 참고 듣는 것을 잘 못한다. 가끔 나를 지겹게 하는 말, 합당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말, 비 일관적인 말, 잘못된 정보들도 끝가지 들어주는 인내와 다른 사람의 감정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씨를 내년에는 기를 수 있기를.
두 번째, 나는 여전히 좋지 못한 식습관을 이어나가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식습관이란 넘치지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이다. 과소비뿐만이 아니라 필요 없는 육식, 생활에 필요한 영양에 넘치거나 욕심을 꺾지 못해 결과적으로 기분을 해치게 하는 과식 등. 내 식습관은 여전히 좋지 못하고, 내 생명 하나를 감당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동식물과 환경을 해치고 있다. 나를 이렇게 비대하게 유지할 필요가 없다. 간소화해내고 싶다. 캄보디아 출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요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관련 글_요리 없이 살아보려고 하는데요, 요리 없이 살아본 3주_좋기만 합니다) 지난 출장 때 한국 철수 과정 중에 내가 만들어낸 쓰레기의 양을 확인하고는 가히 충격을 받아 올해 출장 생활은 좀 더 간소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원칙은 나름대로 잘 지켜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내 식습관은 충분히 좋지 못하다. 때로 육식도 하고, 과식도 하고, 질 좋지 않은 음식에 돈을 쓰기도 한다. 내년은 좀 더 나에게 충만하고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 번째, 나는 사랑에 빠지기에 실패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은 어쩌면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인간의 열망인데, 나는 매해 실패만을 겪고 있다. 올해에는 정말 다른 모든 걸 떠나서 사랑을 주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었고, 적당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우리의 니즈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지만, 슬퍼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 뒤로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남은 한 해를 보냈던 것 같다. 꼭 그러지 않았어도 됐는데 말이다. 내년은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랑에 몰두할 수 있는 한 해 보내기를.
어쩐지 새해를 위한 결심은 미리미리 세워두고, 1월 1일부터 요이-땅!하고 실천해야 할 것 같지만 나는 아직 새해 다짐을 모두 세우지 못했다. 하루만 더 주시겠어요? 내일(1월 2일)까지는 어떻게든 생각 정리를 마치고 새로 시작되는 월요일부터 힘차게 새로 살아보려니까요.
내일은 해외생활 최초로, 현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라보려고 한다. (사실 일본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이라 엄격하게 현지 미용실이라기도 그렇다.) 꼭 새해맞이로 만든 계획은 아니었으나 새 머리, 새 마음으로 새해 맞으면 좋잖아. 좋은 곳에서 식사도 하고, 카페에 눌러앉아 2022년 만다라트도 그려보고 하련다.
오늘 이야기 끝.
⬇ 내가 퇴사하기까지
⬇ DAP 시험 세 번이나 떨어지며 한 생각
⬇ SQLD 시험 준비하고 합격한 이야기
⬇ 책 읽는 직장인
⬇ 요리를 그만뒀습니다 (1)
⬇ 요리를 그만뒀습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