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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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나 사랑을 논하고 사랑에 관심이 많다. 학창 시절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나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연인에 관한 이야기까지 사랑은 주제를 만들고 집중을 시킨다. 마찬가지로 음악 또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가사가 너무나 많이 들리고 있다. 작사를 공부하면서 여러 작사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랑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된다. 음악을 풀어나가는데 탁월하고 대중들에게 쉽게 공감할 수 있기에 사랑 이야기는 말할 필요도 없는 좋은 소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주제는 어떠할까, 인간은 맛있는 걸 먹는 “나”와 좋은 차를 타는 “나” 또는 좋은 곳을 다니는 “나”를 사랑하기에 타인과 사랑을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여자친구에게 비싼 선물을 해주는 남자는 “나 여자친구한테 비싼 선물도 해줄 수 있는 남자야”라는 생각을 하고 자기 모습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즉,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사랑을 잘한다는 말이 된다.
너무 본인만 생각하는 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각을 한 페이지만 넘겨보면 본인을 생각하고 사랑해야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본인“만”이라는 표현보다 본인“을”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 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요즘 유행에 민감한 세대일수록 본인을 사랑한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빠른 발전으로 우리는 “알고리즘”이란 그물에 걸려 빠져나오기 어려워졌다.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보여주기에 그 자체가 “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의 틀에 국한되어 버려 진정한 “나”를 찾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다. 요즘 MZ세대라는 신세대가 등장하여 본인의 가치가 더 중요한 세대라고 하지만 사실상 하나의 알고리즘에 갇혀 타인들과 비슷한 성향에 맞춰진 “나”가 되어버렸다. 마치 거대한 그물에 갇힌 같은 종의 물고기처럼 말이다.
가치판단이 흐릿해져 가는 시기에 본인을 더 사랑하고 나의 가치판단을 알고리즘이 아닌 오직 내 생각으로 가져갔으면 한다. SNS 속 타인들의 '좋아요' 수와 나의 '좋아요' 수를 비교하지 않고 내가 입고 있는 옷과 남들이 입고 있는 비싼 옷에 중점을 두지 않고 “나”라는 본연의 사랑을 인정하고 비교 대상을 지우다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조금이나마 행복의 씨앗을 열매로 틔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보다 보면 두 친구는 손이라는 장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이다. 그리고 가장 대조적인 사이이다. 두꺼운 검지와 얇은 새끼손가락을 비교하며 싸움을 붙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검지는 검지대로 새끼는 새끼대로 각자의 상황과 역할에 맞게 살아갈 뿐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주제를 두고 누군가가 나에게 이상형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듯 나의 연인도 그대를 사랑한다면 우리의 사랑은 곱절이 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판단을 유지하며 그럭저럭 본인을 사랑하는 것, 또한 “탓” 하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