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나이
한국에서 아이엘츠 상담직에 종사하며 약 300명의 유학 준비생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점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20대 중•후반, 또는 그보다 더 높은 연령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해외 유학을 꿈꾸고 있다는 것.
안타까운 건, 그중 편안한 얼굴로 상담실에 들어오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는 된다. 20대 중반만 되어도 그간 국내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들이 있을 것인데,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한국도 아닌 외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 걱정이 먼저 드는 게 당연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정작 나는 캐나다에서 유학을 하며 ‘나이 먹고 오길 잘했다’ 라는 생각을 꽤 자주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10화는 ‘유학을 가기에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와 같이,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나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을 위한 글이다.
스물여덟 유학길,
오히려 좋은 이유
1) 스무 살의 나는 평범한 대학생중 한 명이었다. 학교도 잘 다니고 친구들이랑 놀러도 잘 다니는 인싸 중의 인싸.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지만, 실상 내면은 그렇지 못했다. 삶의 목표도, 졸업 후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유의 팔레트 가사처럼 “애도 어른도 아닌”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스물여덟. 8년간 쌓인 경험치가 슬슬 빛을 내기 시작했다. 20대에 겪은 모든 기쁨과 슬픔 그리고 크고 작은 성취들이 쌓이면서, 스무 살 때보다 단단한 내면과 건강한 멘탈을 갖게 되었다. 덕분에 유학생활 중에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불안이나 막막함, 외로움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갈 것을 스물여덟의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2) 열아홉, 대학 전공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마음에 나 홀로 전공도출과정을 진행했던 것을 기억하는 독자분들이 있을까?
*참고- 스물여덟 유학생의 1학년 회고 (희망 편)
8년 뒤,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행을 이 세상 무엇보다 좋아하게 된 나, 전공은 Tourism Management 로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이번만큼은 그 어떤 도출과정도 필요치 않았다.
스물여덟의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한국의 영문학과 교수님들은 늘 정장 차림으로 강의실의 화이트보드 앞에 서 계셨던 모습이다. 그렇다면 캐나다는 어땠을까?
관광경영학이라는 프로그램 이름에 걸맞게 야외 수업이 있는 날이면, 교수인지 투어가이드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사람이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건 보드마카가 아닌 초대형 관광지 맵.
밴쿠버의 눈이 부신 햇빛을 막아줄 선글라스와 버킷햇을 이중으로 착용한 투어가이ㄷ.. 아니 교수님은 챙겨 온 대형 맵을 펼치며 여행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해 준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대학 수업이 있구나.
이와 같은 신선함을 한 번씩 경험할 때마다 나는 재미를 느꼈다. 하고 싶은 것을 고른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뿌듯함도 함께 들었다. 그렇게 매 순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3) 2학년이 되자마자 취업 과목을 수강하게 됐다. 그 해 일정 시간의 실습을 완료해야 졸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습 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력서, 자기소개서, 모의면접 같은 취업 준비 과정이 필수로 요구되는 상황.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덕분일까, 경험부자인 스물여덟의 나에게는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내 이야기로 채워나가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특히나 그 시기에는 ‘나이 먹고 유학 오길 잘했다’ 는 생각이 계속 들 정도로, 경험의 힘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혼돈 그 자체였던 스무 살의 내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이렇게 쉽게 채울 수 있었을까?
이를 통해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유학을 가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것,
오히려 좋은 나이만 있다는 것을.
에필로그
20대의 한 시점에,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내 안에 '반골 기질'이 존재한다는 것.
반골이란 명령이나 권위, 사회적 통념에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기질을 의미한다.
출처:나무위키
'명령이나 권위에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기질' 에 대해서만 따로 에피소드를 쓸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한 K-직장생활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이번 10화에서는 ‘사회적 통념에 따르지 않는’ 내 안의 반골 기질에 초점을 맞춰보았다.
15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좋아요를 눌러주신 에피소드 1화 -[프롤로그] 반항의 시작- 에서 언급했듯, 나는 20대 초반까지는 한국 사회에서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에 순응하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부터는 보고 읽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들을 통해 삶에 대한 나만의 관점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에서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삶'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을지는 몰라도, 딱 그 만큼 '내가 원하는 삶'과는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때에는, 그저 다수가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마음 편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쪽으로 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야, 실패의 가능성이 저 쪽보다는 낮은 안전한 길일 거야, 설령 실패한다 해도 이 중에서 나 혼자만 실패하는 건 아닐 거야.
그러나, 20대를 지나오며 여러 가지 직/간접 경험이 쌓일수록, 삶을 대하는 생각이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사회에서 정해주는 대로, 타인의 욕망을 나의 것으로 착각하며, 앞사람을 따라가기만 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첫 에세이 <스물여덟, 유학 가기 좋은 나이>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내 삶의 주체가 되어, 세상 어디에서나 내가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길 꿈꾸는 사람들. 나는 앞으로도 그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
To. <스물여덟, 유학 가기 좋은 나이> 독자분들께
10주간 쉼 없이 달려온 첫 브런치북 연재가 끝이 났네요.
한 화를 올릴 때마다 받는 좋아요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늘어가는 구독자 수가 신입 햇병아리 브런치 작가에게는 정말 큰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시 한번 보내주신 관심과 응원에 감사합니다!
유학을 꿈꾸는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저 멀리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는 온갖 불확실성에 대해 이런저런 걱정이 되겠지만, 그 모든 과정을 퀘스트 깨듯 즐기며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부한 말로 들릴지는 몰라도, 유학을 시작하며 경험 한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저를 성장시켜 주더라고요. 성취 대신 성장을 유학의 목표로 잡으면, 그 여정을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Try Everything의 정신으로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꿈의 독자 여러분들을, 저 버블리가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멀지 않은 시일 내에 좋은 연재 기획해서 돌아올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