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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Jun 25. 2019

사랑의 관성

달렸다.


우린 달렸다.


마지막에 기다리는 

서로를 확인하고 싶어 내달렸다.


눈물도 있었고

값싸지만 

소중했던

웃음도 있었다.


그렇게

달리는 게 

재미있었다.


끝이 어디인지 모르게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맛볼 것처럼 


다가오는 행복을

믿었다.


봄 햇살처럼

따뜻하기만 한 웃음은 

내 것인 줄 알았다.


힘들었던 여정의 

고통을 알아주는 위로도 

내 것인 줄 알았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이

어깨 위를 가볍게 해주는

기대가

나만의 것인 줄 알았다.


어느 날

쏟아지는 소나기가

마을 어귀에 닿았을 때


거기서

너의 손을 

놓쳤다.


뒤돌아보니

온 데 간 데 없는

인기척의 여운만이

뒤돌아선 발자국으로

남아있었다.


모든 걸 알아버린

그때에도


또다시 

나는 달릴 수밖에 없었다.


소나기는 아직도 

눈꺼풀을 때리듯이

시야를 어지럽히며

시끄럽게 세상 위로 떨어지지만


모든 것을 감내하며

달릴 수밖에 없었다.


달리던 대로 

가던 대로

흔들리는 대로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젖어버린 옷이

몸을 무겁게 하고


보이는 것도 없이

메케한 냄새만

헐떡이는 내 앞에 

떨어지는데


멈출 수 없는 이대로의

질주는 


마치

아직도 함께인 듯

처절하고 애절하며

그토록 정겨웁다.


넘어지고 

부서져 

무릎이 깨어져도


가던 길을 

멈추기 힘들다.


혼자서는 절대로

갈 수 없는 길임을

알면서도 

지금은 멈출 수 없다.


사랑이란 달리기


그 뜀박질 속에서


떨어져 나간 

자존심의 절반을

안은 채로


관성을 이길 수는 없다.


그것으로 부딪히고

부서질수록

방황도 짧아질 것이다.


끝을 확인해도 멈출 수 없는

지금의 내 모습이

사라진 너와 달라진다 한들


사랑이란 관성

그 안에서 우리는 

깨어져도 멈추지 못한 채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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