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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Jul 30. 2019

구두

그 친구

구두를 좋아했었지.


빨간색이든

분홍색이든


예쁘지 않은 

발이지만


또각

또각


정확하게 걸으려는

모습이

내 마음에 들었지.


하지만

그 친구에겐

절대 구두를 선물할 수 없었지.


구두를 선물하면

헤어진다고 두려워했었거든.


소박하게

낡은 구두를 신고서도


지하철에서 산

만 원짜리 샌들을 신고서도

너는 


주머니를 다 털어 사고 싶은

그런 웃음을 내게 보여주었지.


분홍 구두는 굽이 닳아

약간 비뚤어졌지만


너의 걸음걸이는 똑바르게

나를 향해 왔지.


똑 똑

똑 똑


땅에 닿는

너의 발이 


비가 내려도

젖지 않을 만큼


설레임으로

바람 부는 오월에

내 시야에 들어왔지.


그 친구 

구두를 잘 신었었지.


구두가 잘 어울리는 친구였지.


잘 웃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동그란 구두에 비친 

마음은 이미 운명을 향해

웃고 있었지.


늘 여리고


구두에 그려진

주름 같은 그늘도

하나 없던

니가


두려워만 하던

헤어짐을 


그 정확했던 걸음으로


스스로 걸어가게 

될 줄이야.


지금 나는


밝은 쇼윈도의

예쁘게 손짓하는

구두들 앞에서


상념에 잡혀


잠시나마 

사고 싶었던

구두와 

이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러진 구두굽처럼

나의 마음도

나의 추억도


쓸모없게 되었지만


구두를 좋아했던 친구

그 단촐한 걸음걸이처럼


깨끗하게 사라져 가는 것들을 보면


니가 생각난다.


바로 

오늘 같은 날.

이전 10화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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