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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Aug 04. 2019

몰랐습니다.

나는 

사랑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

그렇게 기분 좋고

또 아픈 느낌이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알 수 없는 순간에

왔다가

또 곁에서 떠나갈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차가운 손을

호호 불며


장미꽃을 들고 

기다리던 모습은

내가 아니었습니다.


어렵게 쓴 편지를 

악 다문 한숨과 함께

쓰레기통에 놓았던 모습도 

내가 아니었습니다.


전혀 나인 줄 모르게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찬바람이 세차던 날 

내 얼어버린 두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쥘 때는

세상 처음으로

온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갖고 싶은

그 온기는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빨리


그 온기가

내게서 식어갈 지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새빨간 눈으로

이제 우리는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했을 때

나는 

어쩔 줄 몰랐습니다.


당신의 것인지

나의 것인지

눈물이 흐를 때도


어떻게

아프지 않게

닦아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세련된 

이별이 어떤 것인지

상상만은 해왔지만

그렇게 다가온

현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그때는 몰랐습니다.


모든 것이

부정되는

참담함 앞에


열기 힘든 마음을

다 펼쳤던 때가

후회되기도 하고


앞으로 다가올 

내 키보다 큰 

고통의 파고도

두려웠습니다.


몰랐습니다


다 겪을 때까지.


모두 다 

가슴에 담았다가 

꺼낼 때까지


몰랐습니다.


하나 하나

사랑하는 것들은

고통이라는 것을.


점점 더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이해하게 되더라도


사랑을 안다고 말하기엔

두렵다는 것을.


아프지 않다고 말하기엔

아직 어리석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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