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no.3
소설의 한 토막
어느 겨울, 해 질 녘이었다. 형은 좁은 골목길에 서서 그림자를 기다렸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지만,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기에 무작정 기다렸다.
그러고 있으려니 몸이 바르르 떨렸다. 수전증 환자처럼 손에 쥔 종이컵의 커피가 물결치더니 자꾸 밖으로 흘러넘쳤다. 어디든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라도 길모퉁이를 돌아 그림자가 나타날 것 같아, 가만히 옷깃을 여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몸을 잔뜩 움츠리다 보니 자신도 몰래 뒷걸음쳤고, 어느새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낼 길모퉁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그 정도가 적당했다. 놀라게 할 마음은 없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밀려난 공간을 하얀 숨으로 채우는데, 모퉁이 너머로 익숙한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왔구나, 싶었다. 흐릿한 그림자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떨리던 몸이 그대로 경직되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러면서도 심장은 격렬한 소리로 둥둥대며 돌진을 명했다. 뭐해? 어서 가 봐! 하고.
비로소 그림자와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그림자를 원했지만, 자신 없이 망설이다가 선뜻 다가가지 못했고, 다시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 기다림은 너무 길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골목길,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자 얼굴 위로 미소와 눈물이 동시에 번졌다. 눈앞의 모든 장면이 느리게 흘러갔고, 뺨을 스치는 공기의 촉감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소중하고 결정적인 무언가가 영원히 뿌리내릴 듯했다. 그러므로 더 망설일 것은 없었다. 피하지 않고 그림자를 향해 다가가야 했다.
그림자는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멀리서 길게 다가와 가로등에 가까워질수록 뭉툭해지는 대신 더욱 진해졌다. 잠시 진정되었던 심장이 다시금 격앙된 발길질을 해댔다. 하지만 거듭 담금질한 그의 마음은 이미 확고했다. 뜨거운 피가 혈관을 따라 손으로 전해졌고, 들고 있던 종이컵을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게 신호였다. 그는 그림자를 향해 길모퉁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곧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길모퉁이에 먼저 다다른 것은 그였다. 어쩐 일인지 그림자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로등 발치, 길모퉁이 저편에 그대로 멈춰 서서 이쪽으로 넘어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었다. 그림자보다 먼저 모퉁이를 돌아야 했다. 그러기 전에 그는 잠시 멈춰서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그런 다음, 모퉁이를 돌았다.
“하지만 없었어. 거기엔 아무도 없더라.”
형의 이야기는 거기서 잠시 멈췄다.
소개
학창 시절, 꼭 한 번 만나자고 했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해외로 떠난 선배가 있었다. 그 형을 기억하며 쓴 글이다. 주인공 '나'는 숱한 이별을 경험한 이별 전문가로, 심지어 만나지 못한 상대와도 이별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