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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Sep 05. 2020

돈을 주고 물건만 산다고?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04-소비론

소비는 철저하게 이념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이즘을 나타내는 방법 중 가장 강력한 것이다. 소비는 이즘을 지배하는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이즘의 정치적 실현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의 기능을 가진다. 동물복지, 친환경, 공정무역, 유기농, 폐플라스틱 활용, 제로 웨이스트 등등 소비에는 수많은 이즘이 그 이면에 숨어있다.


그래서 소비는 더욱 정교해야 한다.

소비에는 결이 있어야 한다. 소유한 물건의 결과 삶의 결이 맞아야 한다.

무엇인가 많은 것을 소유했으나 천박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딱히 비싼 물건을 소유하고 있지 않음에도 세련되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 결의 차이가 삶과 물건의 결의 일치이다.


소비는 단순히 돈과 물건을 바꾸는 행위가 아니다.

소비는 이념을 보여주고 삶의 세련됨을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다.


가난한 자의 라이카라 불리는 야시카 일렉트로 35 | https://www.kenrockwell.com/yashica/electro-35.htm


그는 '야시카 일렉트로 35'라는 카메라를 들고 나의 맞은편에 앉았다.
모임에는 처음이라는 그는 쑥스러워하던 첫 모임에서의 모습과 달리 출사(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촬영을 목적으로 나가는 것)를 다녀온 자리에서 무엇인가 약간 상기된 모습이었다.

봇물 터져 나오듯이 나오는 그의 사진철학, 촬영기법, 포트폴리오, 자신이 소유한 '야시카'라는 이름만 들었을 뿐 실물로는 처음 본 그 카메라에 대한 역사와 장단점 이야기에 나는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카메라와 그의 작품, 그의 정신이 같은 결을 가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서둘러 '가난한 자의 라이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의 카메라를 진짜 라이카가 있음에도 구했다. 하지만 나의 정신과 작품은 카메라와 같은 결을 달리지 못했다. 단지 그의 욕망을 욕망했을 뿐, 소유가 의식의 전환을 일으키기에 나의 소유욕은 천박했을 뿐이었다.


차를 볼 때 타이어를 가장 먼저 본다.
성능 좋은 스포츠 타이어, 고급 컴포트 타이어 혹은 노면 온도를 고려한 윈터 타이어를 장착한 사람이라면 100이면 100,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타이어는 가장 드러나지 않지만 성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품이다.

차를 좋아한다면서 타이어 관리가 엉망이거나 차의 성능에 걸맞지 않은 저가 타이어를 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차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차를 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 둘은 결이 다르다.

저가 타이어를 쓰는 사람이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이다.


결을 맞추기 위한 소비의 끝에는 항상 명품이 존재한다.


결을 맞추기 위한 소비의 끝에는 항상 명품이 존재한다.

결을 맞추기 위해 날카로운 자신의 가치 평가 잣대를 지닌 이들이 하나씩 경험하며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가며 마지막으로 도달한 그곳에 명품이라 불리는 물건이 존재한다.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명품이 될 수 없다. 물건의 소유로 동기가 부여되고 의식이 환기되는 경험을 안겨줘야 한다. 날이 서 있는 그들의 선별안을 거치는 과정에서 가격이라는 속물적인 기준은 무가치하다. 가격이 낮다고 지나치지도 않고, 가격이 높다고 무조건적으로 추종하지 않는다.


삶은 결을 맞추고 결과 결 사이를 자신의 취향으로 채워 넣음으로써 세련되어진다.

소비는 돈을 주고 물건만 교환하는 것이 아닌, 물건과 삶의 빈틈을 채워줄 세련됨을 함께 사는 것이다.



1.1 나는 가성비가 싫다.

1.2 허세가 왜 죄악이지?

1.3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1.4 돈을 주고 물건만 산다고?


2.1 다들 샤프는 30년 정도 쓰지 않나요?

2.2 부족한 3m는 내 명예로 채우겠소.

2.3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만년필이 될 거야

2.4 단돈 200원에 볼펜의 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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