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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Sep 03. 2020

허세가 왜 죄악이지?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02 - 허세론

위스키를 한 잔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노곤함을 감싸안은 채 체온으로 데운 후 약간의 물로 향을 퍼뜨린 위스키의 맛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뿌듯한 느낌이 푹신한 거위털 이불처럼 나를 감싼다.

이 느낌은 비싼 것을 마셔서가 아니라 위스키를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별 속에 맛을 음미하고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감각이 있어야 비로소 위스키의 가치가 발현된다.

허세가 아닌 가치로 올라선다.


가치에는 돈으로 표현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단지 비싼 술을 마셨다는 것은 속물적인 유치한 뽐내기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제 때, 제대로 느끼면서 마시는 것이다.


©pixabay


모든 것이 그렇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평가가 없더라도 이것이 왜 좋은지 명쾌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그것이 기능적인 가치인지, 감성적인 가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가치 평가가 내려지고 그 가치에 걸맞은지 판단할 수 있느냐이다.


경험론에서 상대주의가 태동했듯이 경험주의자들은 상대방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한다.

이들은 경험 속에서 필요와 불필요를 구별하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그들은 불필요함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많은 것을 경험한 경험주의자들에겐 타인의 욕망을 쫓는 일은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무엇이 나의 욕망인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그들에겐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물건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1% 높이기 위해서라면 몇 배의 가격도 선뜻 지불한다. 가치의 향상이 가격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물건들에 어마어마한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이유는 이러한 물건을 찾는 이와 이러한 물건을 만드는 이들 모두 고도로 민감한 감각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각을 지닌 이들은 0.1%라도 높은 가치를 위해 기꺼이 많은 대가를 지불한 용의가 있다. 자신의 취향을 위해 대가를 내어 놓을 수 있는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움과 동시에 선별안을 가지지 못한 대중의 욕망이 되어간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타인의 욕망을 쫓게 되면 자신의 경험은 타인의 경험 속에 매몰되어 버린다.

타인의 경험 속에 매몰된 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타인의 욕망으로 치환한다. 자신의 욕망인지 타인의 욕망인지 구별이 모호해지는 지점이다. 자신이 커피를 좋아하고, 멋진 카페를 좋아하는 것인지, 타인이 ‘좋아요’를 누른 카페를 좋아하는 것인지 불분명해지기 시작한다. 정보를 얻었을 뿐이라고 애써 위안을 가져보아도 타인이 소화시킨 욕망의 찌꺼기를 다시 소화시키는 불쾌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소유는 변화를 만드는 힘을 가져야 한다. <몽블랑 146 만년필>


단순하게 소유했다는 흥분만으로는 부족하다.

소유가 변화를 만들어내고 변화가 동기가 되어야 진정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다.

소유가 목적인 물건은 결국 쓰레기로 전락한다. 그 쓰레기로 둘러싸인 삶을 허세라 부른다.

삶 속에서 상황에 맞는 물건으로 자신의 격을 갖추는 것을 우리는 예의 혹은 매너라 부르는 이유이다.

동시에 허세를 경멸하는 이유이다.


허세와 가치에의 집착은 한 끗차이이다.

가치를 모르면서 힘들게 소유했다고 자랑하는 것은 천박함이다. 무작정 기능의 편리함을 쫓는 것도 천박함이다. 허세와 가치에의 집착은 스스로 가치를 입증해 보여야 한다. 그러한 가치에의 집착이 삶의 구석구석을 세련되게 만들어준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펜, 입고 있는 티셔츠, 신고 있는 신발, 먹고 있는 음식, 그 무엇이든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가? 내가 선택한 가치가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인 압력이 아닌 나의 취향에 근거함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설명이 새겨진 자리가 삶의 세련됨이 시작되는 자리이다.



1.1 나는 가성비가 싫다.

1.2 허세가 왜 죄악이지?

1.3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1.4 돈을 주고 물건만 산다고?


2.1 다들 샤프는 30년 정도 쓰지 않나요?

2.2 부족한 3m는 내 명예로 채우겠소.

2.3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만년필이 될 거야

2.4 단돈 200원에 볼펜의 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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