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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Sep 04. 2020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03 - 명품론

명품은 말 그대로 이름난 물건이다.

이름난 물건이 이름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 했었다거나, 전설적인 탄생비화가 있다거나, 시대의 조류를 바꾸거나, 완벽의 만듦새를 가졌거나 아무튼 무엇인가 이유가 있다. 


장비 선정의 고민 과정은 노동을 취미로 전환하는 탁월한 방법이다.


도발적인 이 이야기의 단초는 볼펜 한 자루에서 시작했다.

한동안 미련하게 글자를 썼다. 창조의 속성을 가진 글이 아닌 노동으로써의 글이었다.

필기구 애호가는 노동에서도 효율과 품위를 추구한다. 필기구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진 나는 어떻게 하면 더 편하고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까에 고민을 거듭했다. 장비 선정의 고민 과정은 노동을 취미로 전환하는 탁월한 방법이다.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 낚아 올린 고시생들이 많이 사용한다던 일제 유성(중성) 펜을 사서 사용했었다. 

결론적으로 나쁘지는 않았다. 이름값을 충분히 해 내는 성능을 보였다.


하지만 많이 쓰는 날엔 하루에 한 자루를 소비하는터라 버려지는 껍데기들이 꼭 난사하는 기관총의 탄피와 같이 느껴졌다. 리필심을 사서 사용해봤지만 뭔가 찜찜함이 남았다. 리필심도 탄피처럼 쌓여갔다.

무엇인가 만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비록 노동의 과정이었지만 필기구 애호가가 글자를 적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은 슬픈 것이었다.


때맞춰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시작되었고, 일본 브랜드의 필기구를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다시 대체품을 찾아 나섰다.

대체품을 찾아 헤매는 그때 문득 오래전 동아 스피디볼 1.0mm (속기용) 펜의 느낌이 떠올랐다. 평범하다 못해 저렴해 보이는 외관에 색깔마저 늙은 호박색이라 볼폼없었지만 그 성능에 경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고민은 효율을 떨어뜨릴 뿐, 당장 20자루를 구입했다. 일제 유성(중성) 펜의 1/10 가격이었다. 

첫 글자를 쓰는 순간 예전의 그 느낌이 가슴을 관통했다. 짜릿했다.


어설픈 패키징이 아쉬울 뿐...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가슴이 울렸다. 가성비라는 단어 따위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나의 선택이 맞았다는 쾌감이었다. 압도적인 감정의 파고가 밀려왔다. 숨겨져 온 이 볼펜을 이대로 묻어두는 것은 필기구 애호가로서의 도리가 아니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항해자처럼 나의 발견을 알리고 싶었다. 


명품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명품은 남들이 명품이라 한다고 명품이 될 수 없다. 소유한 주체가 명품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명품인지 명쾌하게 설명이 되어야 한다. 가치에 민감한 이들이 암묵적으로 가치를 인정하면서 명품이 되어간다. 가치를 구별하지 못하는 자들은 세속적인 가격, 타인의 소비와 욕망에 휩쓸려 왜 명품인지 모르지만 민감한 식별 안을 가진 것처럼 보이고 싶어 때로는 공감받고 싶어 명품이라 불리는 자신도 이유를 말할 수 없는 물건을 소비한다.


가격이나 타인들의 평판에 내보이기 전 스스로 감탄하고 감동을 받아야 한다. 브랜드가 떼어지고 타인들의 평판이 사라졌을 때 그 가치도 함께 사라진다면 내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 소비했던 것에 불과하다. 나의 욕망을 소비하는 것도 벅찬 세상에 타인의 욕망을 쫓고 따라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타인의 욕망으로 나의 욕망을 덧입히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나의 욕망은 나만이 인정하는 가치를 가진 물건의 소유만이 만족시킬 수 있다. 


소유의 쾌감을 넘어선 가치를 확인했음에 대한 만족감으로 명품은 비로소 만들어진다.



1.1 나는 가성비가 싫다.

1.2 허세가 왜 죄악이지?

1.3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1.4 돈을 주고 물건만 산다고?


2.1 다들 샤프는 30년 정도 쓰지 않나요?

2.2 부족한 3m는 내 명예로 채우겠소.

2.3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만년필이 될 거야

2.4 단돈 200원에 볼펜의 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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