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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Sep 07. 2020

부족한 3m는 내 명예로 채우겠소.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06 몽블랑 만년필 Le Grand 146

대중들에게 잘 알려질수록 도리어 명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명품 = 타인이 가지기 힘든 사치품’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누구나 알아보고 누구나 가질 수 있다면 더 이상 명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기 힘들다. 그렇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명품은 소유하면서 느낄 수 있는 우월감을 느낄 수 없으니 적당히 알려져 있으나 (혹은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반인들은 가지기 힘든 물건들이 명품으로서 제격일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 작곡가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모차르트나 베토벤을 이야기하면 초보처럼 보이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더라도 말러나 프로코피예프를 좋아한다고 말해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문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누구나 알아보는, 특히나 '만년필을 잘 알지 못하나 비싼 펜이 가지고 싶어 혹은 보이고 싶어 백화점에 가서 샀다’는 느낌이 나는 몽블랑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특히나 빈티지가 아닌 최근 생산된 것이라면 그들의 관심을 끌기는 어렵다. 만년필 애호가들은 그라폰 파버 카스텔이나 오로나와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나 알 수 있는 고가의 유럽제 만년필이나, 명작이라 알려졌으나 상태가 좋은 것을 구하기 어려운 파커 51과 같은 만년필에 더 호의적인 평가를 주는 경우가 많다.


몽블랑의 상징 몽블랑 스타

하지만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역사에 남을 작곡가들이고, 그들 또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을 비켜갈 수 없다.

몽블랑 만년필도 만년필 애호가들이 드러내어 좋다고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한 자루는 가지고 싶은 그런 만년필이다.


고급 만년필의 대명사 ‘몽블랑’은 의외로 독일회사이다.

몽블랑 산은 분명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접경지역에 있고, 몽블랑은 프랑스어지만 독일회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위스 ‘리치몬트 그룹’에 속해있는 독일의 몽블랑이라는 회사이다.


1909년부터 써 온 몽블랑 스타 (몽블랑 산에서 본뜬 육각별 모양의 로고)는 만년필을 모르는 사람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유명하다.  내가 가진 만년필의 명칭은 몽블랑 마이스터스튁(Meisterstuck) Le Grand 146이다. 그야말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고급 만년필의 Reference와 같은 존재이다.


146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1은 마이스터스튁 라인임을 뜻하고 4는 만년필을 6은 촉의 사이즈를 의미한다. 즉 146은 촉 사이즈가 6인 마이스터스튁 만년필을 의미한다. 촉의 사이즈에 따라 145, 146, 149로 분류되는데 보통 처음 만년필을 입문하는 사람들은 배럴이 상대적으로 가는 145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고, 만년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146을 많이 선택한다. 149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처음 만년필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뚱뚱한 외모(?) 덕분에 실사용이 불가하다고 느껴서인지 거의 선택되지 않는다.


몽블랑 146

촉의 사이즈에 따라 재질이 14k 혹은 18k 금이 사용되는데 146의 경우는 14k 금촉이 사용된다. 몽블랑은 다른 만년필에 비해 굵게 나오는 편이라 다른 만년필 (특히 일제 만년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당황하기 쉽다. 끊어 쓰는 획이 많고 필압을 주어 쓰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면 몽블랑 펜으로 한글을 써 내려가는 것은 고역일 수 있다.

만년필을 사용하는 제대로 된 맛을 느끼려면
풍부하고 끊김 없는 잉크의 흐름을 느껴봐야 한다.


하지만 만년필을 사용하는 맛을 느끼려면 풍부하고 끊김 없는 잉크의 흐름을 경험해 봐야 하기 때문에 M 촉 이상(최소 F 촉)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는 획으로 끊어 쓰는데 익숙해져 EF촉을 구입 후 0.38mm 유성펜(중성펜)의 느낌을 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만년필 대신 유성펜(중성펜)을 구입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잉크가 하얀 종이에 빨려 들어가며 발색을 뿜어내는 그 순간순간을 느끼는 것이 만년필을 쓰는 묘미이다. 잉크의 제대로 된 발색을 느끼기 위해서는 굵기가 넉넉한 촉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촉에는 4810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몽블랑 산의 높이 4810m를 의미한다고 한다. 실제 몽블랑 산의 높이는 4807m이지만 촉에 4810이라는 숫자를 새겨 넣기 시작한 1929년의 지도에는 4810m로 표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산의 높이가 4807m로 정정된 직후에도 이를 수정하는 대신 부족한 3m는 자신(몽블랑사)들의 명예로 채워 넣겠다는 뜻으로 4810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이 얼마나 문학적인 변명인가!



1.1 나는 가성비가 싫다.

1.2 허세가 왜 죄악이지?

1.3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1.4 돈을 주고 물건만 산다고?


2.1 다들 샤프는 30년 정도 쓰지 않나요?

2.2 부족한 3m는 내 명예로 채우겠소.

2.3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만년필이 될 거야

2.4 단돈 200원에 볼펜의 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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