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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Sep 03. 2020

나는 가성비가 싫다.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01 - 프롤로그

나는 ‘가성비’라는 말을 싫어한다.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닌 가격이라는 속물적인 기준으로 가치를 재단하는 것이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가성비라는 단어의 뒷편에는 품질이 좀 부족하더라도, 감성을 온전히 채우지 못하더라도 가격이 저렴하니 참으라는 경고가 숨겨져있다. 당신이 가진 돈으로는 이 정도 물건이면 만족하며 써야 한다는 폭력적인 표현을 간접적으로 가성비라 부르는 느낌이다.


가격과 가치는 선형적으로 비례하지 않는다.

1%의 차이를 위해 200%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가 있다. 필요한 물건을 살 때는 아껴서는 안 된다.

지불한 것 이상의 효용과 만족을 얻으면 된다.

선택의 효율과 가용한 예산은 항상 비례한다.

자본주의에 찌들어 버린 지금 이 세상에는 '비싸고 나쁜 물건'은 있을지언정 '싸고 좋은 물건'은 없다.



©pixabay

또 다른 의미로 나는 ‘가성비’라는 말을 싫어한다.

가성비를 쫓는 순간부터 개성은 말살되기 시작한다. 개성은 경험에서 시작한다. 취향은 경험을 통해 드러난다. 처음 시도해 본 음식을 먹어보고,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에 처음 발을 들여보고, 누구도 해 보지 않은 일을 해보면서 취향이 만들어진다.


가성비는 새로운 경험을 거부한다.

지불하는 가격 대비 적정한 가치가 있다고 대중에게 확인된 것들만 선별하여 경험하게 된다. 모두 같은 것을 경험하고 같은 가치평가를 내리도록 강요받는다. 이러한 가성비에 옭아매인 삶 속에 가치평가에 대한 심미안은 점점 무뎌지고, 결국 가격이라는 가치만 남아버리게 된다.

결국 가격이 곧 가치 평가의 유일한 기준이 되고, 사람들은 가치를 구별하는 눈을 잃어버리게 된다. 가치를 평가하는 눈을 가진 집단이 높게 평가하여 가격이 높아져야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대중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가성비’는 물건의 실제 가치보다 가격을 우선한다. 그래서 가치는 늘 가격과 비교당하고, 가격으로 평가당한다. 가격은 누구나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가치를 구별하는 것은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다. 단순한 것일수록 고도의 감각과 숙련이 필요해진다. 자동차의 가치를 판별하기보다 가죽제품의 가치를 판별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미세한 차이, 절대적인 가치를 판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치를 가격이라는 속물스런 기준으로 치환하여 정량화하려고 한다. 취향을 저격한다는 가성비들이 진정으로 개인들의 취향을 저격하여 제거해 버린 것이다.



1.1 나는 가성비가 싫다.

1.2 허세가 왜 죄악이지?

1.3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1.4 돈을 주고 물건만 산다고?


2.1 다들 샤프는 30년 정도 쓰지 않나요?

2.2 부족한 3m는 내 명예로 채우겠소.

2.3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만년필이 될 거야

2.4 단돈 200원에 볼펜의 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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