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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Sep 12. 2020

평균 근속연수를 알아서 뭐하게?

다른 취업 # 번외 편

"그 회사 평균 근속연수가..."

후배의 물음 속에서 예상치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평균 근속연수?

오죽 불안하면 취업도 하기 전 근속연수부터 따지는 것인지 안타까웠다.


일단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얼마나 오래 다니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내 물음에 후배는 정년까지 다니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정년까지 다니더라도 아이들 대학을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후배가 아이가 대학을 다닐 20여 년 후를 걱정하고 있었다.


©pixabay


잠시 말을 돌렸다.

얼마 전 면접을 보고 온 다른 회사에서 지금 연봉의 1.5배를 제안했다고 어떡할지 물어보았다.

순식간에 상담자와 내담자가 바뀌었다.

후배의 눈이 반짝이며, 그 회사가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내 대답을 들은 그는 더 크고 이름 있는 회사에 더 많은 연봉을 주는데 무엇을 고민하는지 되물었다.

확고한 표정으로 나는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상담 결과를 받는 데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는 부럽다는 인사로 나의 상담을 마무리지어 주었다.


"왜 평균 근속연수가 필요 없는지 알겠지?"

뜬금없이 꺼낸 나의 말에 잠시 침묵이 돌았다.

자신과 나는 다르다고 한다.

여전히 근속연수는 중요하고 정년을 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였다.




밀레니엄이라는 2000년이 다가올 때쯤 IMF 구제금융의 폭풍에 휩쓸려 버린 한국 상황과 맞물려 온갖 미래예측이 횡행했었다. 모두 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와 더 이상의 정년은 없을 것이라는 고용의 불안을 외쳤다.

변화에 대한 방향 예측은 달랐으나 해답은 정년 없는 1인 기업, 지식근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저명한 그들의 예측에도 2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정년을 원하는 수많은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창업정신을 키우고 리스크를 감수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청년들의 기개와 창업정신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분들 중 자신이나 자신의 자식을 그렇게 키우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 그게 옳은 길이라고 말을 하지 못하겠다.

좋은 것은 남에게 가르쳐주지 않고 자신이 한다는 생활의 진리를 나는 믿기 때문이다.




취업이 어렵기 때문에 고용의 불안을 더욱 크게 느낀다.

내가 몸담았던 한 회사도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었다.

회사가 서서히 침몰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가슴 아픈 생존의 현장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와 같다.


©pixabay


회사가 기울어지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젊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회사를 떠난다.

그들은 영리하고 기민하다.

자신 넘치고 자존감이 높다.

이런 무너지는 회사에 소속되었다는 것이 그들에겐 부끄러운 일이다.

회사와는 계약관계로 맺어졌기 때문에 회사가 어려우면 나를 버릴 수 있듯, 

나도 회사가 어려우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뛰어난 능력으로 쉽게, 좋은 대우를 받으며 회사를 떠난다.


그다음으로 회사에 미련이 있지만 이대로 가면 생계가 위태로운 사람들이 회사를 떠난다.

이들은 회사에 애착이 있다.

하지만 연일 들려오는 뉴스, 연봉 삭감, 무급휴직, 정리해고 등의 소식에 압박감을 느낀다.

쌓여있는 아파트 대출, 아이들 교육비, 늘어나는 마이너스 통장에 결국 원치 않게 회사를 떠나게 된다.

이들 역시 능력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회사가 자신의 생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어쩔 수 없이 이직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두 부류가 떠나면 이제 회사에는 세 부류가 남는다.

다른 회사로 이직할 능력이 없는 자들과 이미 이 회사에서 인정받아 그것을 포기하기 싫은 자들.

마지막으로 아무런 생각 없이 현재 상황까지 몰려버린 눈치 없는 자들


떠난 이들이 좋은 대우를 받고 승승장구한다는 소식이 사내에 퍼지고, 상황이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기울어졌다는 것이 느껴지면 눈치 없는 자들이 그제야 이직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쏟아져 나오는 매물에 가치는 하염없이 떨어지고, 경쟁은 치솟는다.

같은 면접장에서 누구를 봤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면 이제 막바지에 치달았다는 신호이다.


엑소더스가 절정에 치달아갈 무렵이면 아무리 눈치 없는 자라도 여기에 있으면 능력 없는 자들과 이미 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 사이에 끼여 독박을 써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더욱 거센 엑소더스가 일어난다.

이 폭풍이 잠잠해지면 남은 것은 이직할 능력이 없는 자들과 권력을 선점한 자들, 그리고 눈치도 실력도 없다고 증명된 사람들이다.


(아... 가끔씩 능력도 있고 회사에 애착도 없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남은 사람이 있긴 하다.

이들은 언제라도 옮길 자리가 있거나 생계에 대한 걱정이 없어 그냥 있는 것이었다.)




지금 선택하는 회사가 영원하다고 그 누구도 말해줄 수 없다.

회사라는 조직은 치열한 경쟁 속에 노출되어 있다.

회사는 망할지 몰라도 그 세계에서 인정받은 조직원은 회사라는 껍데기만 바뀔 뿐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는 시작점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어느 대학교에 입학하는지가 중요하고, 자격증은 합격하면 그만이다.

과정에 대한 평가가 없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취업 후에 급격하게 경쟁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평균 근속연수를 알고 싶고, 정년을 고려하겠다는 것은 능력이 부족해도 회사가 나를 지켜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길 능력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불안감이 경쟁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취업의 문턱을 넘었다면, 그만한 능력을 지녔다면 동등한 사람들과 같은 출발선에 선 것이다.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지금까지 잘 해온 것이고, 앞으로도 잘해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후배에게 말했다.

근속연수를 채우기 위해 이직하지 말아야 하냐고.

아니라고 한다.

여기까지 왔으면 앞으로도 계속 달릴 수 있다고 해주었다.

그 말 외에는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근속연수나 정년에 연연하지 말라는 충고는 그가 스스로 판단할 몫이다.

다만 내가 지나온 삶 속에서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업에서 키워온 나의 실력이었다.


그의 건승을 기원한다.



1. 취업의 현실 그리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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