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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Sep 11. 2020

버스비보다 싼 가스팍 수동의 위엄 (2편)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10 쉐보레 스파크 LPG 수동

사람은 간사하다.

좋아지는 것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나빠진 것은 쉽게, 크게 느낀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며칠, 몇 달만 지나면 원래 이러했던 것처럼 그 속에서 살아간다.


성능에 목숨 걸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경차를 구입해서 나타났다. 

그것도 가스(LPG) 차라니 다들 경악한다. 

언덕이 있다고 느끼지도 못했던 출퇴근길이 모두 콜로라도의 파이크스 피크(콜로라도 스프링스 근처에 있는 해발 4302m의 산으로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길 중 하나로 자동차 경기가 열리기도 한다.)가 된 느낌이었다. 출발과 정지를 제외하면 항상 풀 액셀 상태였다.


4000 rpm이하에서 급격하게 0으로 수렴하는 토크로 인해 터보차의 부스터를 떨어뜨리지 않게 하듯 항상 높은 엔진 회전수를 유지해야 했다. 최소한의 토크를 유지하기 위한 번잡스러운 변속은 나를 서서히 짜증 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뒤에서 쫓아오는 차에게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연신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힐끗거리며 달려야 했다. 와인딩 코스나 서킷에서 함께 달리는 차에게 뒤 따라 잡힐 것 같은 그 느낌이 일상을 지배했다.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다.


괜한 짓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엄습해왔다.

선선한 가을 날씨를 감안한다면 한여름의 혹서가 닥치면 에어컨과 덥고 습한 외기로 출력은 더욱 내려갈 것이었다. 그래도 일단 내년 봄까지만 더 타자는 생각을 했다. 겨울의 초입이라 전륜 자동차가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고, 이대로 나가떨어질 수 없다는 쓸데없는 오기도 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따뜻한 봄기운이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어느 날, 달리고 있는 길이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게도 겨우내 몸이 적응했던 것이다. 매일 똑같은 길을 다니면서 의식하지 않고도 몸이 변속을 하고 있었다. 이 코스에서는 몇 단을 넣어야지?라는 생각 없이 저절로 다운 쉬프트와 업 쉬프트를 반복하며 달리고 있었다.


차를 바꾸지 않고 좀 더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스팍의 최대 장점은 경제성이다.

경제성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도대체 이렇게 차를 운영하다가 다른 차로 바꿀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극한의 경제성을 추구한다.


이전 차는 고급유로 매주 약 70리터를 넣었다. 가끔 와인딩을 다녀오거나 서킷이라도 한 번 다녀오는 날에는 유류비로만 20~30만 원 쓰는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이탈리아제 브레이크 패드부터 서킷을 한 번 다녀오면 지우개 똥처럼 돌돌 말려있는 스포츠 타이어, 노면 온도가 떨어지면 윈터 타이어로의 교체, 합성유라 불리는 엔진오일까지... 그야말로 끝없이 유지비가 들어갔다.


가스팍에 LPG를 가득 채우면 대략 30리터가 들어가지 않는다. 가득 채워도 2만 원 수준이다!

(오늘 충전한 충전소는 리터당 633원이었으니 가득 넣으면 18,990원이다.)

만약 고속도로로 정속 주행만 한다면 거의 600km를 달릴 수 있다. 한동안 일 때문에 고속도로 주행만 한 적이 있었다. 이전 차로 동일한 코스를 왕복할 때 3번의 주유가 필요했었는데 단 한 번의 주유로 왕복이 가능했다. 심지어 남았다. 여름철 에어컨을 켜고 마음껏 다녀도 400km의 주행거리가 보장된다. 항상 풀 액셀로 다니는 운전습관을 고려한다면 민폐를 끼칠 각오로 다닌다면 500km도 가능해 보인다. 

연료비로만 경제성을 따지자면 대중교통보다 싸다는 결론이다.


경차를 타면서 가장 와 닿는 장점은 작은 크기이다.

미어터질듯하게 복잡한 주차장도 문제없이 드나들 수 있다.

어디에서도 유턴을 하여 반대방향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어디를 가든 주차공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후륜 스포츠카에게 골뱅이 경사로라 불리는 뱅글뱅글 돌아서 진입하는 주차장은 공포의 대상이다.

LSD( 'Limited Slip Differential'의 약자로 차동제한장치라고도 하며, 한쪽 바퀴가 미끄러지거나 헛돌고 있을 때 해당 바퀴에만 구동력이 쏠리지 않도록 막아주고, 좌우 바퀴에 같은 동력을 보내주는 장치)가 달려 있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처음 가는 오래된 빌딩의 지하 주차장은 용을 물리치기 위해 던전으로 들어가는 영화 속 주인공만큼이나 긴장되게 만든다.

경차를 타면서 이런 고민은 없어졌다. 어느 주차장이든 일단 들어간다. 자리가 없으면 차를 돌려 나온다. 

주차장 초입부터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차를 돌리는 일도 없어졌고, 낮은 지상고로 차체가 닿을까 봐 걱정하는 일도 없어졌다.


고속도로 톨비 50% 감면, 공영주차장 2시간 무료 등 여러 가지 혜택이 있지만 차를 쓰고 싶을 때 언제라도 부담 없이 쓸 수 있다는 것이 경차를 운용하는 매력이다. 작은 크기와 저렴한 연료비가 결합하여 이동 수단이라는 실용적인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한다.




1.1 나는 가성비가 싫다.

1.2 허세가 왜 죄악이지?

1.3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1.4 돈을 주고 물건만 산다고?


2.1 다들 샤프는 30년 정도 쓰지 않나요?

2.2 부족한 3m는 내 명예로 채우겠소.

2.3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만년필이 될 거야

2.4 단돈 200원에 볼펜의 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3.1 버스비보다 싼 가스팍 수동의 위엄 (1편)

3.2 버스비보다 싼 가스팍 수동의 위엄 (2편)

3.3 버스비보다 싼 가스팍 수동의 위엄 (3편)


4.1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아니 안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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