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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Sep 14. 2020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아니 안정감!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11 짓조 G1228 Mk2 삼각대

나의 물음에 대한 답변은 살 떨리게 시작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인류의 대참사 기간 동안 인간의 몸을 꿰뚫던 기관총의 거치대를 만들던 회사였다고 한다. 그 무시무시한 진동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오죽 튼튼하겠느냐는 말을 덧붙인다.


https://www.gitzo.com/fr-fr/lesprit-gitzo/


나는 대단한 박애주의자나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독실한 종교인도 아니다.

하지만 생명을 죽인다는 것에 극한 거부감을 가진 이런 나에게 처음 들은 짓조의 설명은 구매욕구를 바닥까지 몰고 갔다.


사실 나는 낚시를 좋아했던 것 같다. 엄밀하게 기다리는 동안 그 분위기를 좋아했었다.

그런데 생명을 낚아 올리는 그 순간이 나에겐 고역이었다. 다른 이들은 손맛을 기대하며 끌어올리는 그 순간을 즐겼다면 나는 혼자서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기다리는 시간을 즐겼던 것 같다.

정작 물고기를 낚게 되면 바늘에 입이 꿰인 채 나를 바라보는 물고기의 눈을 직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의 유희를 위해 물고기에게 극한의 공포를 안겨주는 듯해서 도무지 내키지 않았다. 생물학을 전공한 물고기에 박식한 내 친구가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고통이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지만, 머리가 이해하는 것을 가슴이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렇게 나는 낚시와 멀어졌다.


기관총의 삼각대를 만들던 짓조는 처음부터 사람의 생명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1917년에 세워진 프랑스 회사 짓조는 처음에는 여러 카메라에 맞도록 만든 카세트 필름 백을 제작하던 회사였다. 그렇다 태생은 카메라 기자재를 만들던 회사였던 것이다.

1920년대 중반부터는 카메라(GILAX)를 비롯해 셔터(GITZO), 플래시 어댑터, 릴리즈 케이블 등 정밀한 액세서리를 제작하는데 집중하였다.

1930년에 들어서면서 주력상품의 이름으로 회사명을 짓조(GITZO)로 변경하였고, 195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많은 액세서리 생산을 중단하고 삼각대와 헤드 제작을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1942년 ~ 1944년까지 군수업체로 전환되었고, 기존 삼각대를 만들던 업력에 따라 기관총의 삼각대를 제작하게 된 것이었다.


어쨌든 생명을 빼앗기 위한 군수업체로 시작하여 전후 경영이 어려워지자 삼각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카메라 기자재를 만들던 회사라는 것으로 반감이 누그러졌다.




형, 동생이라 부르며 함께 엉켜 지내면서 사진을 함께 찍던 무리들이 있었다.

사진이라는 교집합을 공유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교집합이 조금씩 나뉘기 시작했다.

반목이 아니라 서서히 머리가 굵어지면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아버지뻘의 '형님'들이 다수인 무리에 속해있었다.

고전적인 사진 철학 - 예컨대 일정 기간은 표준렌즈로만 사진을 배워야 하고, 현상이나 인화는 스스로 의도에 맞게 해야 하며, 자연광을 이용한 사진을 촬영해야 한다는 - 을 가진 분들과 함께 사진을 함께 즐겼다.


당시 나와 비슷한 나이의 무리들 대부분은 상업사진이 업이거나, 업으로 삼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그들은 상업사진에 필요한 각종 조명기기들과 스튜디오를 섭렵하고 다녔다. 그들에겐 조명이 좋은 사진을 담기 위한 킬러 아이템이었다면, 나를 비롯한 '형님'들의 무리에겐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삼각대가 킬러 아이템이었다.


당시 학생이던 나에게 지름신을 영접하셔서 더 멋진 삼각대를 구입하고 싶으셨던 형님 한 분이 나에게 맨프로토 삼각대를 선물해 주셨다. (물론 사모님께는 나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얻으시고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삼각대를 구입하셨으니 윈-윈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여담으로 맨프로토도 매우 훌륭한 삼각대 제조회사로 1992년 Vitec이 짓조를 합병하여 지금은 같은 그룹에 속해있다.


처음 가지게 된 제대로 된 삼각대는 새로운 세계를 가져다주었다.

삼각대를 받고 칠포 앞바다에서 일출을 기다리면서 삼각대와 그 위에 올려진 카메라를 보던 그 첫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청송 주산지의 물안개를 바라보았던 시선, 합천 오도산 정상에서 새하얗게 서리 앉은 채 밤하늘을 담던 시선, 얼어붙은 새벽의 온타리오 호수를 담았던 시선, 그 모든 시선은 삼각대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된 삼각대를 쓰면서 정말 제대로 된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삼각대를 가지고 싶었다.

평생을 가져갈 거라면 더 이상 미련도 방황도 하지 않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삼각대를 가지고 싶었다.

그리하여 선택한 것이 짓조였다.


그 날이후 짓조를 손에 넣겠다는 신념으로 생계형 사진 생활을 시작했다.

아기 돌사진, 행사 사진 (심지어 장례식 사진도 의뢰받아 촬영했었는데... 딱 한 번만 하고 다시는 할 생각을 않았다.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찍는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이 비록 타인이더라도), 스냅사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였다.


사진을 돈벌이로 하여 사진을 더 잘 찍기 위한 도구를 구입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개월 만에 짓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어렵게 모은 돈을 들고 정당하게 구입을 하는데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상을 받는듯한 기분으로 삼각대 박스를 받았다. 감회가 남다르다는 표현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디테일에서의 차이가 세련된 삶을 만들어준다.




종종 비싼 삼각대가 무슨 소용이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사실 저가형 삼각대를 써 본 일이 거의 없다.

몇 시간 혹은 며칠을 걸려 찾아간 곳에서 지금 이 순간 아니면 다시 만나지 못할 찰나를 흔들림 없이 단번에 담아야 하는 상황에서 신뢰할 수 없는 도구를 사용할 수 없는 까닭이다.


오래전 야외 돌사진 의뢰를 받았을 때였다.

당시 막 출시되어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던 캐논 300D라는 디지털카메라를 한 번 써보라는 지인의 추천에 남들보다 앞서 사용해 볼 기회를 얻었다.

익숙지 않아 많이 찍지는 못했지만 필름값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에 크게 와 닿았다.

그리고 인화를 하기 위하여 자주 가던 공방의 모니터 앞에 앉아 사진을 열어보는 순간,

모든 사진에 초점이 맞지 않았다.

클라이언트의 요청으로 얕은 심도로 찍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진을 포기해야만 했다.

앞이 캄캄했다. 부랴부랴 현상을 맡긴 필름을 찾으러 갔다.

다행이었다. 칼같이 핀이 맞았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등을 훑고 내려갔다.

그 날 이후 신뢰할 수 없는 도구를 쓴다는 것에 극도로 민감해졌고, 우습게도 캐논에 대한 악감정은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까지 이 삼각대는 단 한 번도 실망을 안겨주지 않았다.

나의 시선과 기술에 문제가 있었을지언정, 삼각대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십수 년을 쌓아온 신뢰를 가격이라는 기준 하나 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었다.

이집트 사막에서도, 얼어붙은 토론토 호수에서도, 쿠바의 낡은 카페에서도...

짓조는 나를 단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지금도 수많은 사진가들은 짓조를 선택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내가 거쳐온 수많은 장소와 환경에서도 삼각대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것이고,

수많은 사진가들이 지금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짓조 삼각대에 대한 경험치를 쌓아가고 있다.


경험은 필요를 빠르고 확실하게 인식하게 해 준다.

그리고 더 빠르게 불필요함을 거둬들인다.

그렇게 필요는 점점 더 확고해지고 굳어진 필요는 신뢰라는 이름을 얻는다.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일수록 디테일에서의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기능을 할 수 있는 것과 기능을 완전하게 해 내는 것에는 넘어설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기능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결을 느껴야 한다.

그것을 느끼는 것이 선별안이고, 그 선별안을 가진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이 명품이 된다.

명품이 된 후 대중들은 높은 가격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거나, 가성비를 들먹이며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모든 것은 가치가 말해줄 뿐, 가격은 무의미하다.




1.1 나는 가성비가 싫다.

1.2 허세가 왜 죄악이지?

1.3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1.4 돈을 주고 물건만 산다고?


2.1 다들 샤프는 30년 정도 쓰지 않나요?

2.2 부족한 3m는 내 명예로 채우겠소.

2.3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만년필이 될 거야

2.4 단돈 200원에 볼펜의 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3.1 버스비보다 싼 가스팍 수동의 위엄 (1편)

3.2 버스비보다 싼 가스팍 수동의 위엄 (2편)

3.3 버스비보다 싼 가스팍 수동의 위엄 (3편)


4.1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아니 안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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