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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Sep 10. 2020

버스비보다 싼 가스팍 수동의 위엄 (1편)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09 - 쉐보레 스파크 LPG 수동

어느 날부터인가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차들이 사라졌다.

너무나도 빠르게 어디선가 빨아들이는 것처럼 사라졌다.

불과 몇 년 만에 수동변속기는 소수의 마니아들에게서나 회상되는 추억의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경험자가 줄어들면 주변인이 끼어들 여지가 생긴다.

경험이 무뎌지면 상상 속의 이야기가 현실이 된다.

수동변속기 운전이 그렇다.

정체구간을 오래도록 운전하면 왼쪽 무릎이 불구가 될 수 있다는 중세시대나 나올 법 한 이야기부터, 수동변속기를 조작하는 것이 무엇인가 고도의 훈련을 거쳐야 가능한 듯한 기술로 둔갑하기도 한다. 남자라면 수동이라는 마초스러움이 넘치는 문구도 심심찮게 보인다.


누구나 수동변속기로 운전할 수 있다.



경차에 대한 이야기도 만만찮다.

바람에 날려갔다느니 (실제 얼마 전 태풍에 경차가 넘어지긴 했었다!), 사람들이 들어서 옮겨다느니 하는 갖가지 이야기들이 희화화되어 사람들의 입을 떠돌았다.


낮은 가격으로 경차가 출시되었을 때, 다들 경차에 편의장비가 부족해서 구매욕구가 없어진다고 질타했다. 절치부심한 제조사가 경차의 편의장비가 대형차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해지도록 만들었더니 높은 가격의 경차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다시 질타당했다. 모두를 만족시킬 생각으로 제조사가 각종 편의장비를 선택사항으로 빼고 나니 무슨 옵션질이냐며 역시 질타당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차의 크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차가 곧 나의 지위를 의미하는 척도가 되는 한국사회에서 경차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경차는 비싸고 화려해도 문제였고 싸고 실속적이어도 문제였다. 경차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나의 차의 선택 기준은 오로지 성능이었다.

제로백을 포함한 각종 수치들이 내가 차를 선택하는 기준이었다. 지금까지 거쳐온 모든 차들이 300마력 이상 후륜, 가솔린(휘발유) 차량이었다.


문짝 4개 달린 패밀리 세단은 고려사항이 아니었던 나에게 어느 날 문득 경차를 한 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았다.

때마침 타고 있던 차가 연달아 사고를 겪었다. 주차장에 멀쩡히 세워둔 차가 사고를 당했다.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과감히 차를 팔고 그 날부터 경차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타는 경차라면 경제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여보고 싶었다. 

평범한 경차는 타고 싶지 않았던 자동차 애호가의 욕심도 있었다. 

무엇을 타던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차가 필요했다.


경차에 오토미션(자동변속기)은 맞지 않았다. 가뜩이나 낮은 출력에 자동변속기의 손실까지 떠 앉고 싶지 않았다. 출력이 낮을수록 운전자의 변속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변속 타이밍에 민감하다. 서킷과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필요할 때 엔진의 힘을 제때, 제대로 전달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경제성을 고려했으니 더 이상 가솔린 차량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차는 ‘대배기량 가솔린’이라던 나의 지론은 경제성 앞에 무릎을 꿇고 LPG라는 새로운 연료를 영접했다.


차량의 운동성능도 중요한 요소였다.

출력이 낮다고 부족한 운동성능이 용납될 수는 없었다. 

출력을 끝까지 뽑아쓸 수 있는 충분한 운동성능이 보장된 차를 원했다.


그렇게 선택된 차가 쉐보레 스파크 LPG 수동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스팍’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차이다. 

가스팍도 그냥 가스팍이 아닌 가스팍 수동. 

경제성의 상징이자 대중교통을 뛰어넘는 경제성을 가진 차였다.


그렇게 10월 어느 날 가스팍 수동은 나에게 안겨왔다.




1.1 나는 가성비가 싫다.

1.2 허세가 왜 죄악이지?

1.3 이 정도는 되어야 명품이지!

1.4 돈을 주고 물건만 산다고?


2.1 다들 샤프는 30년 정도 쓰지 않나요?

2.2 부족한 3m는 내 명예로 채우겠소.

2.3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만년필이 될 거야

2.4 단돈 200원에 볼펜의 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3.1 버스비보다 싼 가스팍 수동의 위엄 (1편)

3.2 버스비보다 싼 가스팍 수동의 위엄 (2편)

3.3 버스비보다 싼 가스팍 수동의 위엄 (3편)


4.1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아니 안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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