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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진주 Oct 06. 2023

분노는 나의 힘 (2)

  이아정이 처음으로 시를 읽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우연히 들어간 블로그 때문이었다. 블로그의 운영자는 각 포스트의 말미에 짤막한 시구를 적어 두고 있었다. 본문의 내용과는 그리 상관없는, 운영자 마음대로 골라 적은 문장들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무심코 넘겼을 텐데, 그날따라 이아정은 그중 한 구절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워낙 유명한 시구이니 이전에도 본 적이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날의 이아정은 비로소 그것과 제대로 마주한 기분이었다. 글자들이 제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다 끝내 조금 울고 말았다. 읊조리고 또 읊조리다가 자신이 그와 같은 것을 간절히 필요로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보호해 줄 문장들, 지친 마음을 다독여 줄 문장들을.

  그런 문장들을 찾아 모으다 보니 시 수업까지 등록하게 되었다. 수업을 맡은 강사는 이아정보다 두 살 어린 시인으로, 아직 삼십 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등단한 지 10년이 넘었고 세 권의 시집을 냈다고 했다. 수업 내용 이외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으나 수강생들의 말에 성심성의껏 답하려 애쓰는 것으로 보아 다정한 사람인 듯했다. 이아정은 일주일에 하루 있는 그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세상에는 이아정이 읽지 못한 시가 너무 많았다. 앞으로도 모든 시를 읽을 수는 없으리라 생각하면 초조해졌다. 예고 없이 맞닥뜨린 사랑에 어쩔 줄 모르던 어린 날처럼 자신을 뒤흔드는 문장의 파도에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자신이 그토록 뜨거운 열정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러나 이아정은 더 이상 시 수업을 나가지 않기로 했다. 시인은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물어 왔다. 지난 8개월 동안 누구보다 열의를 보였던 수강생이 연락도 없이 수업을 빠지고는 더는 강의를 듣지 못할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내오니 당황스러웠을 터였다. 이아정이 처음부터 무단결석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수업을 듣기 위해 집을 나섰으나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져 도중에 발길을 돌렸을 뿐이었다. 그 후 시인에게 결석 사유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결국 말하지 못했다. 

  그래도 질문을 받은 이상 답을 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이아정은 시인에게 메일을 쓰기로 했다. 이아정이 시로부터 멀어지기로 한 이유는 시를 필요로 하게 된 이유와 맞닿아 있었다. 그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는 서보라에 대해, 그리고 유령의 그림자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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