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달이 뜬 새벽이다. 주변 사물이 온통 검은 파란색이다. 연수가 신음 소리를 따라 별채로 걸어간다. 별채는 잠겨 있지 않다. 신음이 울음으로 바뀐다. 이를 악물어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다. 걸음을 빨리 해보지만 물속처럼 느릿느릿 다리가 무겁다. 어느새 수아 앞에 서 있다. 수아가 목과 배에서 피를 철철 흘린다. 교복이 피에 흠뻑 젖는다. 연수는 손에 칼을 들고 있다. 지문이 묻지 않도록 옷소매를 길게 빼서 칼자루를 감싸 쥐고 있다. 칼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수아가 연수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말한다. "연수... 너... 너는... 살..."
톡톡 바닥에 피가 떨어진다. 연수가 칼을 들고 별채에서 나와 마당을 걷는다. 집으로 들어가 현관에 가만히 선다. 눈가와 입가가 시커멓게 붓고 멍든 해자가 살금살금 거실에 나와 유리잔에 소주를 따라 마신다. 한 잔 더 따르다가 연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잔을 떨어뜨린다. 해자는 겁에 질린 얼굴로 안방에서 자고 있는 남편의 눈치를 살핀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확인한 해자가 천천히 다가와 칼을 뺏으려 손을 내민다. “연수야... 왜 그래. 연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