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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설 Oct 01. 2020

V. 사람 사이에서

연애도 인간관계다

뜻하지 않게 요즘에는 중매까지 서고 있다. 법조계, 재계, 정계 등 사회 곳곳에 관계 맺고 아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결혼할 사람 소개해 달라는 요청도 늘고 있다.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는 일을 내가 마다할 이유도 없어서 흔쾌히 수락한다.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이고 못하면 뺨이 세 대’라는 속담이 있듯이 그만큼 중매는 어렵고 신중하게 해야 추진해야 하는 일이다. 제자나 후배들이 중매를 요청하면 그 친구에게 맞는 상대를 찾아서 이어 주는데 만나기도 전에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되어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결혼 문제는 이삼십 대 제자들과 후배들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다. 그들은 돈 앞에서, 집 앞에서 사랑이 흔들리고, 결혼을 포기하는 일이 많다. 

“돈이 없어서 결혼은 꿈도 못 꿔요.”

“결혼 이야기를 하면 집이 있냐고 물어봐요.”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 이는 제법 오래된 결혼 공식인데 문제는 집값이 지나치게 많이 올라서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2019년 1월 기준, 수도권 평균 집값은 4억 2862만원으로 4억 원을 훌쩍 넘는다. 서울 아파트값은 평균 8억 원을 넘은지 오래이고 현재는 10억을 넘고 말았다. 어지간하게 잘나가지 않으면 내 집을 소유하기가 매우 어렵다. 집안의 도움이 없으면 집을 담보로 몇 억 원씩 대출을 받아야 한다. 원금과 이자를 갚다 보면 어느새 쉰을 넘기 일쑤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부부가 같이 살아야 하는데 같이 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요원하니 말 그대로 결혼을 꿈도 꾸지 못하는 실정이 되었다. 

남자에게 전세금만 4억이 넘는 집을 마련하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형벌이다. 그 나이에 무슨 수로 그 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잔인한 현실에 이삼십 대 남자들은 불만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결혼을 포기하게 되고, 결혼을 포기하게 되니, 연애를 꺼리고 만남 자체를 피하게 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청춘들은 연애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실제는 서로 조건이 맞지 않아서 결혼을 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박사까지 하고 외무고시를 합격한 제자가 있다. 제자 영식이가 중매를 부탁해서 나는 영식이와 어우릴 만한 상대를 물색했다. 심사숙고해서 세 사람을 골라 영식이에게 프로필 사진을 보여 주며 간단하게 약력을 소개해 주었다. 

“이 친구는 한양대 로스쿨을 나와서 현재는 ○○로펌에 있는데 아버지가 부장판사이시고. 이 친구는…….”

영식이는 내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사진을 한 번 쓰윽 보더니 내 말을 자르고 바로 한마디를 한다. 

“선생님, 저 이 사람은 안 만날래요.”

사진 속 인물에 대해서 좀 더 궁금해할 법도 한데 제법 단호하게 거절해 내가 다 머쓱해졌다. 

“왜, 영식아?”

“얼굴이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래? 그럼 이 친구는 어떨까. 뉴욕주립대를 나와서 현재는 외국계 기업에 일하고…….”

사진을 유심히 보던 영식이가 말허리를 자르고 훅 들어온다. 

“이 사람 만나 볼게요.”

나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영식이의 성격과 앞날을 생각해서 내심 부장판사 딸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식이의 선택 기준은 명확했다. ‘예쁜지 안 예쁜지’였다. 만나도 보지 않고 사진 속 얼굴만으로 사람을 그것도 결혼 상대를 판단하는 게 내게는 적잖이 큰 충격이었다. 내가 이십 대 때도 내 또래 남자들이 예쁜 사람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예쁜 사람을 찾지는 않았다. 문득 내가 21세기 감각적인 이미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각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영식이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게 중매를 부탁하거나 이성 친구를 소개해 달라는 남자 친구들은 대부분 그랬다. 집안 형편에 상관없이 외모는 1순위였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맞벌이를 해야 하는 경우는 2순위가 안정적 일자리 즉 정규직 여성을 원했다. 그렇다면 여자 친구들은 어떨까. 여성들은 남성의 능력과 집안을 먼저 본다. 자가 소유의 집이 있는지를 물어보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결혼 적령기에 자가 소유의 집이 있다는 것은 집안이 부유하게 잘 산다는 의미다. 

어쩌다 우리 청춘은 실제 만나지도 않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일까. 고리타분하게 들리겠지만 1980, 90년대에는 일단 만나는 봤다. 한 번 만나서 느낌이 좋으면 한 번 더 만나고. 그런 식으로 만남의 횟수를 늘리며 만나거나 헤어지거나 그에 대한 판단 근거(기준)를 만들었다. 제자들과 후배들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만나도 보지 않고 판단하니? 그게 가능하니?” 

“사는 게 바빠요. 하루하루가 허겁지겁 가는 것 같아요. 만날 시간이 없어요 정말. 사진만 봐도 느낌이 와요. 느낌이 안 오는데 굳이 없는 시간 내서 만나고 싶지 않아요.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요.” 

이와는 정반대로 일이 없거나 일을 찾는 친구들은 만남의 기회가 생겨도 자신의 처지 때문에 선뜻 만나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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