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명절에 꼭 있는 밉상의 유형

리분동지의 신혼(그림) 일기

by Jessie

2019년 2월에 결혼을 했으니 우리는 이제야 결혼 7개월 차의 따끈따끈한 신혼이었다. 신혼 7개월 차에게도 명절 스트레스(?)는 피해 갈 수 없는 무엇이었으니... 명절은 그립고 보고싶은 가족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말에 다치고 상처받는 이가 생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명절엔 꼭 가벼운 말들로 화를 돋우는 사람이 있다. 명절이 지나고 난 네이트 판에는 시댁 식구를 욕하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왔지만 의외로(?) 나에게는 복병이 우리 집에 숨어 있었다. (긁적..) 명절 제사를 끝내자마자 친정식구들이 기다린다며 일찍 집으로 보내주신 시어머니 덕분에 엄마와 빨리 조우했지만 나를 기다리는 건 맨발로 뛰어나오신 엄마와 할머니 뿐만 아니라 “애는 언제 낳냐”는 말이었다.








명절이면 가까운 카페를 찾는 건 미혼의 친구들만이 아니었다. 가족들을 만나 반가움을 나누고 나면 늦은 밤 기어코 카페에서 만난 우리가 토해낸 것은 어른들이 쉽게 내뱉은 이야기에 받은 상처였다. 도움이나 위로를 건내주기는 커녕 어른스럽지 못한 언행과 가벼운 비아냥거림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는 어른들이야 말로 명절에 마주하게 되는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어른들은 시대가 바뀌었지만 본인들이 자라온 시대의 잣대와 발상으로 취업이나 결혼, 출산을 기준지어 타인을 평가한다. 보통은 그들의 삶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제 3자에게 본인의 잣대를 들이대며 '그러면 안된다'라는 발언을 하지만 그 것은 정말 시대착오적인 발상임에 틀림없다. 그 시절에는 노력만 하면 어렵지 않게 직장을 구했고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선택받은 자의 특권이었지만 오늘의 세대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4년제 대학을 나와도 취업 문턱을 오르기가 힘들고 아무리 노력해도 개천에서 용은 커녕 미꾸라지도 나오기 힘든 상황이니까. 회사와 집, 인간관계, 알 수 없는 내일, 넉넉하지 않은 지갑 사정,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와 나만 빼고 행복해보이는 SNS 속 사람들.. 결국 그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는 우리에게 어른들은 가끔 가혹한 이야기를 한다. 어른들의 이야기들은 그 모든 문제가 환경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있다고 다그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일년에 두번, 모든 식구들이 모이는 자리인만큼 그리고 또 가까워서 상처받기 쉬운만큼, 어른들은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돌아서면 끝이라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는 이들은 등을 돌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도 분명히 존재한다. 어린 시절의 결핍이 채워지지 않은 채 어른이 된 사람들은 관심을 위해 쉽게 본인의 기분과 감정을 드러내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곤 한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입 속의 쓴 맛이 느껴지게 만드는 어른들. 할머니가 그리웠던 명절이지만 잠시 막혀있던 숨을 몰아 쉬기 위해 카페로 피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시도때도 없이 욕과 불평을 달고 사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른이 된 후 내가 가장 꺼리는 일 중 하나였다.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어울리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곁에 남는 건 만나고 난 뒤에도 여운이 남는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몇 해째 같은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지낸다는 건 되려 나의 긍정적인 에너지까지 내려놓게 되고 마는 일이니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굉장히 애석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그 것이 윗사람이라면 말이다. 명절이 되면 특히나 배우자에 대한 험담을 쏟아내는 윗사람이라면 명절이 꽤나 괴로워지고 만다. 전을 굽는 내내 삼촌에 대한 험담을 10년이 넘도록 듣고 있노라면 나는 가끔 그정도의 불만을 가지고서 함께 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고 싶어진다.








평소에는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으면서 정작 중요한 순간이 오면 번개보다 빠르게 일하는 척하는 동료(혹은 상사)를 보면 울화통이 치밀 때가 있다. 그것은 가족에게도 변함없이 적용되는 공식이다. 할머니가 들어오시는 타이밍이면 티브이 앞에 앉아 있다 과일을 깎는 모습으로 고쳐앉는 가족의 구성원을 볼 때면 나는 언제나 고개를 젓곤 한다. 그런 이들은 정작 역할 분담 끝에 일을 하게 되면 평소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본인의 존재감을 과시하는데 언제나처럼 묵묵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목소리 한 번 높이는 법이 없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옛 말은 어쩌면 이런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본인의 자아실현이나 자존감을 자식을 통해 이뤄내는 부모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식들의 성취 여하에 따라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꽃들도 저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듯 우리 각각에게도 저마다의 꽃 피는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른들도 오늘 당장의 모습만 놓고 가족간에 경쟁을 붙이는 일은 하지 않을텐데. 명절은 언제나 아쉬움과 서러움 그리고 마음의 상처가 남은 채로 끝이 난다.

몇 번이고 욱하는 감정들을 토닥이느라 꽤나 애먹은 연휴였다. 결혼 후 첫 명절이라 아무도 뭐라고 하시지도 않고 잘해주셨지만 분명 서글픈 구석(?)이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우리 집이 아닌 시댁에서 명절을 보내고 며느리로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이제 진짜 내가 유부녀가 되었음을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혼 전에 마음껏 놀아라고 말했던 결혼 선배들의 조언을 다시 한번 떠올리던 순간이었다)


시댁에서의 첫 명절을 보낸 뒤 반가운 마음을 안고 도착한 친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접을 받으며 나는 명절이 가족들을 만나는 그저 반가운 자리가 아니라 보기 싫지만 봐야만 하는 사람을 마주해야하는 시간으로 누군가에게는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쉽지 않은 명절을 보낸 모두에게 토닥토닥 안부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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