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그에게 바라는 몇 가지

리분동지의 신혼(그림) 일기

by Jessie


가끔 제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가 술에 취해 들어와 미안하다고 말을 하거나 혹은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면 그런 마음은 더욱 짙어집니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점이 문제야?"



그는 투정을 부리는 나에게 이따금 묻곤 한다.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술 마시면서 야근한다고 말하고, 체력 관리도 안 하고..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근본적이 이야기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주변에서 흔히 말하는 것처럼 명품 가방이나 액세서리 하나 가진 적 없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바라는 것은 아주 일상적이고 소소한, 호주에서 우리가 보내던 하루 같은 것이었다.






계절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는 어떤지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며 산책을 하는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인데 이상하게 그 일상적인 일이 우리에게는 유독 어려운 것이 되었고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회를 가자는 제안도 주 6일을 (혹은 주 7일을) 출근하는 그의 깊은 다크서클을 보면 지구의 내핵 언저리까지 숨어버리고 만다.






이따금은 반복되는 일상 말고 이벤트 같은 하루하루도 필요한 것일 텐데 매주 놀러 나간다는 부부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겐 소설 속의 스토리가 되어 있었다.







취업만 하면, 이사만 하면, 결혼만 하면 더 나아진다는 그의 이야기는 자꾸만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에 우리가 지금 원룸을 벗어나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애써 위로하며 산다.


딩크족을 꿈꾸던 그가 조카가 생긴 후 딸을 가지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쳤지만 순순히 그러겠노라 할 수 없는 건 독박 육아를 하며 우울증에 빠지거나 힘들어하는 주변 친구들을 본 이후였다. 사실 체력이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기에 언제나 그에게 미리 체력을 키워두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그는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 핸드폰을 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낙이라고 말했다. (결국, 체력 없음 -> 잔소리 -> 2세 계획 -> 체력 없음 -> 잔소리...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사실 그에게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은 "노력도 하지 않는 자에게 2세는 없다"라는 이야기.







그의 회사는 여전히 그에게 '쉬세요'라는 말을 하지만 끊임없이 울리는 핸드폰은 언제나 쉴 수 없게 만든다.

그의 안쓰러운 얼굴을 볼 때면 그의 회사에 방귀탄 10개쯤을 쏟아 두고 오고 싶은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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