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구나무 Jul 06. 2022

선유도 오룡묘

선유도 망주봉 중턱에는 ‘오룡묘(五龍廟)’라는 당집이 있다. 먼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오룡묘는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 규모로 기와지붕을 얹고 기둥은 모두 12개다.  망주봉 바위를 등진 당집 주변으로 오래된 참나무 십여 그루가 마치 호위무사처럼 둘러서서 지키고 있다.

다섯 마리 용이 모여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토지신, 망주 대감, 오 씨 할머니, 용왕님을 모셨었다. 제사는 선유도의 유일한 당골 무당이면서 별신제를 주관하기도 했던 최 씨 성을 가진 ‘당오매’가 맡아했으나 30여 년 전 돌아가셨다. 선유도 당오매는 가업을 통해서 대물린 무당, 이른바 세습무였는데 ‘최 씨’가 마지막 당오매였다.               


당제는 정해진 날짜가 따로 없고 주로 동짓달이나 섣달 또는 정월 중에서 좋은 날을 받아서 지냈다고 한다. 당오매를 포함한 제관 다섯 명을 정해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음식을 마련하는데 입맛이 까다로운 임 씨 할머니 사당에는 돼지고기는 올리지 않고 싱싱한 조기, 명태 같은 생선과 채소만을 올렸다. 반면 오룡묘 제상은 기름지고 푸짐하게 장만했고, 당제가 마무리되면 선유 2구와 3구 마을 주민 모두가 모여 음식을 나눠 먹었다.      


선유도에서는 약 10년에 한 번꼴로 ‘별신제’도 지냈다. 선유도 별신제는 본래 수군진을 지키던 수군절제사가 주관했다가 진(鎭)이 없어지면서 마을에서 주관하게 됐다. 선주들이 별도 경비를 마련해서 소를 제물로 바치고 육지에서 별도 무당과 남사당패를 초청했다. 풍어를 기원하는 굿판이 선착장마다 벌어졌다. 고깃배의 무사고와 선원들의 안전을 염원하는 화려한 뱃기가 장관을 이뤘다. 제법 굿판이 크고 볼거리가 있어 주변은 물론이고 멀리 육지에서도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해 조기 어장이 쇠락하면서 예산 마련이 어려워지자 결국 단절되고 말았다. 마지막 별신제나 당제가 열린 때가 한국전쟁 무렵이었다고 하니 벌써 70년도 더 된 까마득한 옛날 일이다.       


당(堂)이라 하지 않고 묘(廟)라 한 것은 이 섬에 고려 시대부터 수군 진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오구유왕, 명두 아가씨, 최 씨 부인, 수문장, 성주 등 다섯 매의 무속화가 걸려 있었으나 90년대 어느 무렵 도난당했으며 지금은 산신이 호랑이와 용을 옆에 두고 있는 초라한 그림 두 점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오룡묘 뒤쪽 또 한 채의 당집이 있는데 ‘임 씨 할머니당’이다. 전하는 말로는 나주 임 씨들이 많이 사는 새터 마을에 여자아이가 하나 태어났는데, 한쪽 손을 펴지 못했다. 나이가 차서 정혼까지 했는데 혼인식도 치르지 못한 채 급사하고 말았다. 죽은 뒤에서야 손이 펴졌는데 놀랍게도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일을 수군절제사에게 알리자 수군절제사가 “원래 왕비 될 운명인데, 평민과 혼인시키려니 돌아가신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한을 품고 돌아가셨으니 잘 모셔야 한다 싶어 마을 주민들이 오룡묘 뒤쪽에 따로 사당을 짓고 화본도 그려놓은 것이 당집의 유래다. 주민들은 윗당, 아랫당이라고 구분해서 부른다. 산신, 북두칠성, 임 씨 할머니 화상이 있었으나 이것도 모두 도난당했다. 무녀가 죽은 뒤로는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다가 오룡묘와 함께 최근에 복원됐다.      


선유도 말고도 야미도, 신시도, 방축도, 관리도, 말도 등 섬마다 어렴풋이 당집의 흔적은 남아 있으나 당제(堂祭)는 지내지 않고 있다. 남겨진 당집들은 대부분 훼손이 심했다. 지붕과 기둥이 무너져 내려앉아 흉물스럽고 흐트러진 제기와 빈 술병들이 어질러진 내부도 을씨년스러웠다. 대장도 산 중턱에 있는 ‘어화대(魚火垈)’도 얼마 전 태풍을 맞고 쓰러졌다. 말도의 영신당처럼 다른 종교를 가진 이에 의해 인위적으로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기독교의 전파와 미신 타파, 그리고 관광지 개발에 밀려 신들의 이름이 잊혀가고 있다. 또한 신들을 핑계 삼아 떠들썩하게 벌이던 마을 축제 또한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      



아직까지 풍어제를 이어오는 섬도 있다. 고군산에서 뱃길로 불과 한 시간 남짓 떨어진 부안 앞바다 위도다. 위도 대리마을에서는 지금도 매년 정월 초사흣날이 되면 ‘원당제’를 지낸다. 제당의 이름이 원당이어서 원당제라고 부르지만, 널리 알려진 ‘위도 띠뱃놀이’라는 명칭처럼 잔치에 가깝다. 1985년 중요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됐다. 마을 사람들은 산 정상에 있는 원당에 올라 당굿으로 제사를 시작한다. 이때 배를 가진 선주들은 한 해 동안 자기 배에 모실 서낭 내림을 받는다. 무녀가 서낭의 이름을 대고 생쌀을 집어 그 수가 짝수이면 서낭이 내린다. 서낭이 내리면 그 이름을 한지에 적어주는데 ‘깃손받기’라고 한다. 어선 하나하나 뱃기마다 깃손을 내려주며 축원과 풍어를 기원한다. 당굿을 마치면 농악대를 앞세우고 뱃기를 든 선주들의 행렬이 마을 한 바퀴 도는 ‘주산(主山) 돌기’를 한다. 용왕 바위에서 용왕밥을 바다에 던지고 마을 우물 같은 곳에 들러 제삿밥을 묻거나 간단한 음식을 차린다. 주민들은 술도 한 잔씩 나누면서 묵은 감정을 털기도 하고 덕담을 주고받는다.          

축제의 마지막은 띠배를 먼바다로 띄워 보내는 일이다. 띠풀과 지푸라기, 싸리나무로 엮은 모형배에 떡이며 밥, 고기, 나물, 과일을 싣고 허수아비도 만들어 세운다. 띠배는 모선에 실려 마을에서 멀리까지 실려 나간다. 모선에서는 농악 장단과 주민들의 노랫소리가 이어지고 오색 뱃기를 휘날리는 호위선 몇 척이 뒤를 따른다. 연결했던 줄을 끊으면 마을의 모든 액운을 함께 실은 띠배가 물살을 타고 천천히 사라져 간다. 이쯤이면 바다도 어둠에 잠기고 띠뱃놀이도 끝난다.


이전 25화 유령처럼 떠도는 보물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