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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초인 May 09. 2020

집으로 회식하겠습니다

"밥"에 대하여 ㅡ재택근무 76일 차, 혼집남의 소소한 생각들 2탄

재택 11주 차,

일수로는 76일


코로나로 인해 찾아온 일상의 변화

10년 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집에서 두 달이 넘는 시간을 보내보기는 일생일대 처음

은퇴하거나 잠시 휴식기를 가지지 않는다면

다시 겪지 못할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되다


일하는 것,

먹는 것,

사람에 대한 것,

몸에 대한 것,

재미에 대한 것

다양한 변화와 생각들




#2 밥에 대하여


나는 혼밥러다

혼자 밥먹는 남자

점심에 일에 지친 채 머리 식히며 먹는 혼밥

퇴근 후 아늑하게 저녁 한끼

주말 낮에 여유롭게 먹는 혼밥 한끼는

비어 있는 공간처럼 아늑함을 만들어준다


혼자 밥먹는 남자라는 테마로

소소한 일상 만화를 그리고 있기도 하다


꼭 혼밥이 최우선은 아니지만 

다른 의미로 나 혼자만의 위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재택을 맞이하게 되고

집에서 머무는 것을 권장받고 

사회적으로도 서로 거리두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루 두끼 혹은 세끼 혼밥을 하게 되었다


본격, 진성 혼밥러의 진격이었다

처음에는 즐거웠다

온전히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를 수 있었고

꼭 점심시간에 맞춰 12시부터 1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먹을 수 있었고

간식 또한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어느새 오늘 뭐 먹지

내일 뭐 먹지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었고

격주 꼴로 장을 보던 것에서

주 2-3번씩 장을 보게 되었다


거창한 요리는 잘하지 않는 편이고

혼자 먹기에 양도 많이 필요하지 않아

간편식 위주로 섭렵을 하였다


덕분에 요즘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는 HMR의

주 신메뉴들을 두루두루 먹어보게 되었다


브랜드로 따지면 찌개부터, 볶음밥, 덮밥까지

두루두루 평타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비비고가 내 마음 속에 들어왔다

(성인남성에게 양은 좀 적지만)


하루하루 새로운 즐거움이 있었다

세상에 알고 있는 수많은 음식들이

간편식으로 나와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알까

꼬리곰탕부터 낚지덮밥, 순대국, 부대찌개, 각종 튀김까지

다양한 메뉴들로 순환하며 하루하루 매 끼니를 보냈다


또 한동안 호리호리한 체형을 위해 봉인해두었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말았다

바로 마성의 간식들,

오후 4시, 5시만 되면 자동으로 배가 고파지는 것은 일상다반사

마치 파블로프의 강아지처럼

아이스크림을, 과일을, 과자를 뜯는다

(특히나 봉지 과자를 아주 좋아했었다)


거실에 놓인 테이블 사무실과 냉장고의 거리는 불과 50센티미터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기에 매 순간이 달콤했다


그것뿐이랴

혼밥러에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혼술이다

'지노바'라는 집 공간의 이름에 맞게

집에는 다양한 술들이 언제나 구비되어 있고

술에 맞게 잔별로도 마실 수 있다


마찬가지로 건강 관리를 위해 봉해두었던

또 다른 판도라의 상자 개방


저녁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게

음식에 걸맞은 술을 따라 반주를 한다

한 여름도 아닌데, 맥주가 참 맛있고

지친 재택의 하루를 달래고 싶을 때는 싱글몰트,

가볍게 한잔을 하고 싶을 때는 진토닉이나 하이볼을 마신다


재택으로 인해 당연히 회식도 없고,

지인들과의 만남도 저 멀리 미루어지며

매일 나 홀로의 시간을 마주한다


그렇게 매 끼니의 혼밥,

매 오후의 간식,

매일 저녁의 반주를 벗 삼아

재택 이상에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흐른다


그렇게 확'찐'자가 되어간다



그런데 그렇게 1주, 3주, 5주가 흐르고 나니

점점 변화가 찾아온다

점점 간편식 메뉴들이 물려온다

점점 간식을 안 먹게 된다

점점 술을 안 먹게 된다


한 번씩 다 돌고 나니,

메뉴를 고르는 것도 귀찮아지고 가장 기본 원픽

새우볶음밥을 골라서 주식처럼 채운다

입맛이 없음에 점점 배달음식을 섭렵하게 된다

식은 음식은 맛이 없다며,

배달 음식은 정취가 없다며 꺼려왔던 나인데

피자부터 치킨, 햄버거, 분식, 타코야끼까지 확장해 나간다


온갖 종류의 다양한 간편식보다 더 놀란 것이 

세상에 배달로 안 되는 음식이 없더라


간식도 일원화된다

바로 아이스크림

동네 대형마트에서 대량으로 사두고

매일 그때 땡기는 녀석을 초이스하는 즐거움


술도 멀어진다

그냥 맥주가 가장 맛나다

독주는 점점 무겁고

처음과 같은 운치가 나지 않는다

맥주도 다양하게 먹던 것에서

이젠  IPA 빅웨이브 한 녀석으로 달린다


그렇게 세 가지로 좁혀간다

볶음밥 혹은 배달음식

아이스크림

IPA 캔맥주


그렇게 새로운 변화와 함께

또 다시 6주, 7주, 8주를 보낸다


아직까지 사람들이 많이 만나지 않는 분위기에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고 있어

바깥음식, 바깥술을 접할 일이 없다


난 식욕이 줄어드는 걸까

집밥에 물려가는 걸까


그렇게 점점 확'찐'자에서 멀어진다



9주 차,

모처럼 팀 미팅에 팀원의 생일까지 겹쳐 출근하는 날

팀이 경사가 있을 때마다 점심에 찾는 고기집

그곳의 두툼한 삼겹살에 푸짐한 반찬들, 

그리고 마무리로 볶아주는 크림버섯 볶음밥은 참 별미다

오랜만에 먹는 바깥 음식

오랜만에 먹는 지글지글 고기, 특히 점심에


..?

이 맛이 이 맛이었나?

여기가 이렇게 맛집이었나?

한입 한입 입에서 춤을 추고

크림 볶음밥은 입에서 녹아 손이 자동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나만 그러한 줄 알았는데, 다른 팀원들도 모두 그러하다

먹는 순간 모두가 말이 없다


여기가 이렇게 맛집이었나?

전보다 훨씬 맛있어진 것 같은데?


그렇다

다들 집밥을 먹다가

반복되는 식사를 하다가

모처럼 나와서 바깥음식을

일상의 집단속에 먹으니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식탐이 두 팔을 치켜든 것


혼자서는 수줍고, 모였을 때 피어나는

녀석의 또다른 이름

바로 식탐


그렇게 사람 수만큼의 고기와

사람 수만큼의 볶음밥을 해치우며

치열한 점심을 보낸다


이어서 게릴라로 먹게 된 팀과의 저녁자리

이탈리안집의 다양한 메뉴들

역시나, 집에서 잘 먹을 수 없는 메뉴들이기에

점심을 그렇게 치열하게 달렸는데도 불구하고

우린 모두 라굴뤼를 한다


*라굴뤼 (La Goulue): 게걸스럽게 먹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물랑루즈의 유명했던 여자댄서 이름이기도 하다


라 굴뤼!

그러하다


식탐은 죽지 않는다

단지 숨어 있을 뿐이다

이녀석의 사회적 자아의 또다른 분신이기도 하다


그렇게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나고

10주, 11주차를 맞이한다


나는 안다

나는 혼밥러다

혼밥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도 안다


혼자 먹고 싶지만, 잠시 같이 먹고 싶어








그리고 이후에 담아볼 이야기,

#3 사람에 대하여

#4 몸에 대하여

#5 재미에 대하여



아래는 보너스,

나의 혼밥 이야기



   



BAR에 사는 남자

https://brunch.co.kr/@jinonet/33 


집으로 출근하겠습니다

https://brunch.co.kr/@jinonet/26


집으로 모이겠습니다

https://brunch.co.kr/@jinonet/31 


집으로 여행하겠습니다

https://brunch.co.kr/@jinonet/35 


집으로 몸 만들겠습니다

https://brunch.co.kr/@jinonet/36


집으로 퇴근하겠습니다

 https://brunch.co.kr/@jinone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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