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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라떼샷추가 Sep 08. 2024

동료들은 나의 육아휴직을 어떻게 생각할까?

긴장된 마음으로 동료들에게 휴직 사실 전하기

육아휴직을 하기로 결단을 내렸으니

동료들에게도 이를 알려야 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조심스럽더라.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임신한 여직원을 향해 동료 직원들이

"진짜 이기적이야"라며 험담을 하던 그 장면.

당시 이 장면은 많은 여성들에게 공분을 샀다.

내게 그다지 인상적인 장면은 아니었으나,

막상 내가 육아휴직을 하는 입장이 되고 나니

그 장면에 분노했던 사람들에 공감하게 되었다.

"이러니 아이 키우기 힘들다고 하지"


"진짜 이기적이야" (출처: 드라마 미생)



지금까지 봐 왔던 회사 동료들은

미생에 나온 이들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내 선택을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응원해 주고 지지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렇지만 당장의 빈자리를 누군가는 채워야 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남은 동료들 몫이 될 터였다.

회사 동료들이 내 기대와는 다르게

내게도 냉소적인 눈빛을 보내진 않을까.

마음 한편에서 걱정이 점차 커져갔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에 대한 최종 승인이 나고,

동료들에게 한 명씩 면담을 요청했다.

전략기획본부장 역할을 맡고 있었다 보니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나름 영향력이 있었다.

따라서 단순히 육아휴직 사실을 알리기보다는

왜 육아휴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를

좀 더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 선택을 비난할 동료들도 있겠지만

굳이 그런 비난에 위축될 필요는 없었다.

동료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내 선택에 책임을 질 사람은 결국 나였다.


다행히 면담은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다.

내 선택을 아쉬워하는 동료들은 있었지만

나를 이기적이라며 비난하는 동료는 없었다.


오히려 재미있었던 건 동료들의 다양한 반응.

빈도가 많았던 순서대로 유형을 분류해 봤다.

정리해 보니 7개 유형이나 된다.


첫 번째는 가장 많았던 '무한 응원'

"너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이들은 감사하게도 내 상황을 깊이 공감해 줬다.

응원의 편지와 함께 인생 책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처음에 내 선택을 비난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동료들에게 부담을 지운다는 미안함이

이들의 응원 덕분에 조금씩 풀어져 갔다.

가족과 친구들이 아닌 회사 동료들로부터

응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두 번째는 의외로 많았던 '비밀 공유'

"저 사실..."

내가 곧 휴직한다는 걸 알게 된 동료 중 일부는

여러 비밀 얘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평소 나를 어떤 동료로 생각했는지부터

이직 고민, 연애 상담, 창업 계획, 건강 문제까지

'이런 걸 나한테?' 싶을 내용도 많았지만

본부장일 때에는 쉽게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더 늦기 전에 나와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먼저 육아휴직 사유를 설명하면서

아내의 유산과 가족에 대한 가치관 같은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은 영향인 것 같기도 하다.

서로의 사생활을 드러내 놓고 나니

이들과는 부쩍 친밀감이 높아진 기분이었다.


세 번째는 누가 봐도 T인 '대책 마련'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지?"

평소에도 그렇지만 한결같이 딱딱한 사람들이다.

아마도 MBTI 유형 중 T 일 것이다.

이들은 회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며

일 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하루 종일 일을 한다.

이들과의 면담에서는 육아휴직 배경 설명보다는

앞으로 남은 업무 처리, 인수인계, 후임자 선임 등

후속 조치 논의에 대부분 시간을 쓰게 되었다.

사실 나도 'T'라 이들과의 대화가 오히려 반가웠다.


네 번째는 아쉬움이 묻어났던 '바짓가랑이'형

"한 달 미뤄주면 안 될까? 파트타임은 안 될까?"

몇몇 동료들은 내가 마지막 휴직하는 순간까지도

나를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이들도 내가 휴직을 철회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몇 번씩 애원했다.

경영진과 리더들 보다는 의외로 후배들이 많았다.

후배 한 명은 너무나 당당하고 솔직하게 내게

"6개월만 더 있어 주면 좋겠어요!"라며 얘기했다.

내게 많은 걸 배우며 성장하고 있었던 지라

내가 없는 1년이 너무 아쉬울 것 같다는 의미였다.

이런 후배들은 기특하면서도 가장 무서운 존재다.

아마 휴직을 마치고 내가 1년 뒤에 돌아오면

오히려 내가 이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다.


다섯 번째는 휴직 경험자의 '활동 추천'

"돈 생각 말고 마음껏 가족들과 시간 보내"

이미 휴직을 경험했던 동료들도 꽤 있었다.

특히 남자 동료 중 육아휴직 경험자들과

긴 시간 휴직 경험이 있던 분들은 저마다

의미 있는 휴직 기간 보내기 방법을 풀어놨다.

'공부는 하지 말고 운동에 집중하라'거나,

'아이 등하원을 꼭 해주라'거나,

'해외여행을 마음껏 다녀보라'거나 등등

모두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조언들이었다.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니까.

휴직 경험자들은 하나 같이 휴직 기간이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던 시간으로 말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게 되길...


여섯 번째는 고뇌에 빠진 '나도 한번?'

"나도 육아 휴직을 써볼까...?"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과 워킹대디.

뭐 이 사람들의 상황이 크게 다르겠는가

다들 눈치 보며 혹은 희생하며 견디는 거지.

나의 육아휴직 소식을 들은 몇몇 동료들은

'우리 아내도 애 키우느라 힘들어하는데...'

라며 말을 삼켰다.

본인도 가정을 생각하면 휴직을 하고 싶지만

앞으로 커리어에 대한 불이익이 걱정되고

당장 줄어들 가계 수입을 감당하기 어려워

현실적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고 했다.

언젠가는 동료들도 용기가 필요한 때

담대한 결단을 내릴 것이라 기대를 해 본다.

이 세상의 모든 워킹맘, 워킹대디 파이팅이다!


마지막으로 멘붕에 빠진 '현실 부정'

"이건 아닐 거야... 다음 주에도 출근하실 거죠?"

나와 워낙 가까이 일하던 동료 한 명은

나와의 회의마다 내 휴직 사실을 부정하려 들었다.

휴직 전 마지막 근무일에 해당 동료와 인사를 했다.

그 동료는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음 주에도 내가 출근해 있을 것 다'고 했다.

나는 '그럴 리 없다'라고 정색했다. 장난으로.

아마 그 동료는 나와 오랫동안 일을 해왔기 때문에

아쉬우면서도 섭섭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뭐 나도 그와 똑같은 마음이었으니까.




동료들은 저마다의 성향과 방법으로

내 상황을 공감해 주고 내 선택을 응원해 줬다.

혹여나 동료들이 나를 비난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번에 육아휴직 사실을 동료들에게 알리면서

멋진 동료들과 함께 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회사 생활을 잘했다는 안심도 되었고.


일단은 동료들에게 육아휴직 알리기 미션을

무사히 마친 걸로 이 글은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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