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아이디어도 지나치면 오히려 의사결정에 혼란을 만들어요. 선택지가 일정 수준 이상 늘어나면 사람들은 선택의 자유보다는 불안을 더 크게 느끼게 돼요. 어떤 경우에는 아예 결정을 미루거나 포기하기도 하죠. 미국 심리학자 베리 슈워츠는 이러한 현상을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이라고 설명해요. [1]
이 개념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슈퍼마켓 잼 실험'이에요. 2000년, 스탠퍼드대 마크 레퍼와 콜롬비아대 쉬나 아이옌거 교수는 소비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잼 24 종을, 다른 한쪽에는 6종을 보여주고 선택하도록 했어요. 그 결과 24종을 본 그룹의 구매율은 3%, 6종을 본 그룹의 구매율은 30%였어요. 10분의 1 가량 차이가 나타났어요. [2] 선택지가 많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셈이죠. 이후 취업, 연애, 진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된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반복되었어요.
리더의 의사결정도 다르지 않아요. 많은 이들이 "대안이 많을수록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비교 기준이 늘어나면서 혼란과 불확실성이 커져요. 게다가 "혹시 더 좋은 선택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도 결정을 방해하고요.
경영진처럼 숙고가 필요한 의사결정에서는 3개의 실행 가능한 대안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해요. [3] 그 이상은 인지적 부담을 키우고, 그 이하로는 유의미한 해결책을 놓칠 수 있어요. 결국 핵심은 '많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적정한 수의 의미 있는 대안'을 구성하는 거예요. 이를 위해서는 방대한 아이디어 중에서 중요한 것만 추려낼 수 있는 체계적 과정이 필요해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이디어를 모으는 데 집중하고, 정작 대안을 선별하는 과정은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새로운 아이디어 발굴 목적으로 회의를 진행하면 회의의 80-90%는 아이디어 발산에 시간을 쓰고, 마칠 시간이 가까이 와서야 서둘러 선택을 하려 해요. 이때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리더의 직관이나 즉흥적 판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요. 주로 책임자인 리더가 선호하는 아이디어를 정하거나, 다수결을 통해 여러 사람이 좋아하는 의견으로 정해지곤 해요. 이렇게 되면 인지적 편향이 개입되거나, 좋은 대안이 누락될 위험이 커지게 돼요.
대안 선별 과정은 아이디어 수집과 분리해서 진행해야 해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으며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것과 같아요. 바람직한 대안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이 필요해요.
아래 세 가지 방법을 따르면 많은 아이디어 속에서 의미 있는 대안을 구조적으로 선별할 수 있어요.
1️⃣ 개별 판단 요소에 따라 정보 수집하기.
2️⃣ 같은 기준으로 판단 요소 통합하기.
3️⃣ 전반적으로 열등한 대안은 삭제하기.
가상의 사례를 통해 위 방법이 적용되는 과정을 살펴볼게요.
신생회사의 사업개발팀을 맡고 있는 윤 팀장은 내년에 어떤 고객사와 파트너십을 강화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검토 대상은 총 6곳이었지만, 현재 인력으로는 한 곳만 대응 가능한 상황이었어요. 다만 향후 확장 가능성을 고려해 우선 협력 후보 3곳을 추리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했죠.
먼저 윤 팀장은 잠재 고객사별 핵심 정보를 정리했습니다. 사업개발팀은 향후 5년간 회사 성장에 기여할 고객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관리하는 조직이었기 때문에, 판단 기준도 그에 맞춰 설정했어요. 선정한 요소는 다음 5가지였습니다. 예상 매출 / 예상 이익 / 성공 가능성 / 진행 시기 / 인지도 향상
각 고객사를 위 기준에 맞춰 표로 정리했지만, 단순 비교만으로는 어느 대안이 더 나은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워요. 예를 들어 B안은 매출과 이익은 크지만 성공 가능성이 낮고 진행 시기도 늦었고, D안은 이익과 성공 확률은 높지만 매출과 인지도에서는 다소 불리했죠.
이럴 때는 두 번째 단계인 ‘판단 요소 통합하기’를 적용할 수 있어요. 서로 다른 항목이라도 합리적인 전제를 세우면 비교 가능한 값으로 바꿀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성공 확률을 반영해 ‘예상 매출·이익’을 변환하는 방식이에요. 매출 10억·이익 1억·성공 확률 30%인 A안은 ‘매출 3억·이익 0.3억(성공 확률 100% 기준)’으로 환산하는 셈이죠. 이런 방식으로 표의 수치를 모두 바꾸니 성공 확률 항목은 더 이상 비교 기준으로 의미가 없어져 삭제할 수 있게 돼요.
그다음 단계는 ‘전반적 열등 대안 삭제하기’ 예요. 변환된 표를 기준으로 비교해 보니 A안은 C안보다 모든 면에서 같거나 뒤처졌고, E안 역시 D안보다 열위였어요. 이 두 대안은 자연스럽게 리스트에서 제외할 수 있어요.
위 4가지 대안을 두고 의사결정을 해도 되지만, 여기서 대안을 더 줄이는 것도 가능해요. 이 경우 앞에서 언급한 두 번째 단계인 요소 통합하기와 세 번째 단계인 대안 삭제하기를 반복해서 적용하면 돼요.
요소 통합하기는 서로 이질적인 요소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어요. 다만 이때 각 요소를 합리적으로 치환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진행 시기를 예상 이익과 치환한다면 진행 시기 1년마다 담당 직원의 인건비 명목으로 5,000만 원의 기회비용이 소요된다고 전제할 수 있어요. 이를 반영하여 진행 시기는 0년으로 통합하고, 변환된 금액만큼 예상 이익에서 제외할 수 있어요. F안의 경우 기존 예상 이익 1.8억 원에서 진행 시기 1년에 대한 기회비용 5,000만 원을 제외하면 1.3억 원의 예상 이익이 되는 셈이에요.
진행 시기를 예상 이익으로 치환한 결과, C안은 예상 이익이 적자로 전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적자 사업의 경우 선택 대안으로써 고려할 가치가 낮으므로 대안에서 삭제할 수 있어요. 또한 고려 요소 중 진행 시기는 모든 대안에서 동일하므로 이 역시 삭제할 수 있어요.
최종적으로는 6개 대안 중에서 B, D, F 3개가 유의미한 대안으로 선별되었어요. 해당 대안은 다른 대안보다 전반적으로 우위에 있거나, 중요 판단 요소에 대해 각각 명확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B안은 매출 규모, D안은 이익 규모, F안은 인지도와 이익 규모의 균형을 갖고 있는 선택지예요. 의사결정자는 위 세 가지 대안을 중심으로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어요. 처음 제시된 6가지 대안을 두고 판단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해진 셈이죠.
물론 같은 방식으로 최종 1개만 남길 수도 있어요. 다만 마지막 결정 단계에서는 수치화된 비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요소, 예를 들어 리더의 경험·직관·책임감·실행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어요. 이런 점에서 대안 정리는 선택을 대신해 주는 과정이 아니라, 리더의 판단력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어 주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리더의 직관과 경험은 조직이 가진 중요한 자산이에요. 하지만 기준 없이 흩어진 선택지 속에서는 이 자산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워요. 선택의 역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제되지 않은 대안은 리더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통찰의 방향도 쉽게 흔들어요.
좋은 의사결정을 기대한다면, 먼저 리더의 직관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부터 갖춰야 해요. 대안을 체계적으로 선별하고 비교 가능한 수준으로 정리해 두면, 리더는 고민할 가치가 있는 안에 집중할 수 있고 자신의 경험과 통찰도 더 깊고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어요.
결국 체계적인 대안 선별은 리더의 직관을 강력한 의사결정 도구로 바꿔주는 필수 과정이에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어요.
[1] Schwartz, B. (2004). The paradox of choice: Why more is less. New York, NY: Harper Perennial.
[2] Iyengar, S. S., & Lepper, M. R. (2000). When choice is demotivating: Can one desire too much of a good th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9(6), 995–1006.
https://doi.org/10.1037/0022-3514.79.6.995
[3] McCombs School of Business. (n.d.). Strategic decision making. Texas Executive Education. https://go.mccombs.utexas.edu/TEE-BLG-Strategic-Decision-Making.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