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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Aug 23. 2022

죽는 데도 순서가 있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 (6)

아이들과 한 달 살기 체험에 나섰다. 목적지는 미 서부 시애틀. 상사는 가족들과 함께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내고 오라며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아무리 장기근속 휴가라도 그렇지, 이리 업무가 시급하고 엄중한 때 한 달이나 휴가를 가 버리면 어떡하느냐는 눈빛을 슬쩍 읽은 것도 같지만, 순전히 나만의 착각이었을 것이다. (암, 그럼.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썬데이 파더스 클럽 독자가 몇 명인데.)


시애틀에 처음 도착한 주말, 여느 관광객처럼 이 도시의 상징이라는 스페이스 니들 타워와 스타벅스 1호점이 있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구경했다. 그 후 대부분은 숙소 근처의 놀이터와 공원을 찾아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 입장에서야 부모 손잡고 복잡한 관광지를 돌아다니기보다 신나게 미끄럼 타고 물놀이하는 게 여름을 보내는 진정한 방법이다.


근처 공원 한 군데를 들른 날이었다. 구름 한 점 없지만 습도가 낮아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놀이터에 도착하니 다양한 피부색의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놀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어느새 그 무리에 합세했다. 매달리고 기어오르고 뛰어다니느라 아이들 이마에는 금세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서울에서도 시애틀에서도 아이들은 놀이터를 사랑했다 ©배정민


“여보, 벤치 뒤에 이것 좀 봐봐. 기증자가 쓰여 있는 것 같은데. 근데 아….”


나무 그늘 밑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있던 아내가 내게 손짓하다가, 갑자기 목소리가 잠겼다.


벤치에는 한 가족의 이름이 연이어 쓰여 있었다. 그들의 각기 다른 출생일 맞은편에 적힌 사망일에 시선이 갔다. 엄마와 아이 세 명의 사망일이 모두 같았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먹먹해졌다.


엄마, 아빠가 동시에 골똘히 무엇을 보고 있으니 호기심이 생긴 둘째가 곁으로 다가왔다. 아이에게 간단히 설명해줬다. ‘엄마와 아이들이 같은 날 천국에 갔대….’


그날 이후 둘째는 종종 우리에게 (엄마에게는 더 자주)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놀이터에서 삶의 유한성을 깨닫기라도 한 듯이.


“우리도 같이 죽으면 안 돼?”

“그게 무슨 소리야. 보통은 ‘엄마, 아빠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자’ 이렇게 말하지 않니?”

“죽으면 천국 간다면서… 용궁 안 가고.” (아이에게 용궁은 천국과 반대의 의미다.)

“응, 죽으면 천국에 가는데, 그래도 같이 가면 안돼. 엄마랑 아빠가 먼저 가는 거야. 너랑 오빠는 나중에 가고.”

“왜? 같이 가면 좋잖아. 나는 헤어지기 싫어. 엄마랑 헤어지면 나 어떻게 살라고.” (슬쩍 아빠는 빠졌다.)

“은아, 죽는 데도 다 순서가 있는 거야.”

“유튜브는 영상이니까 끝이 있는 건 알겠는데, 사는 것도 끝이 있다니까 그냥 이상해.”


알듯 말듯하다는 표정을 짓던 아이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표정으로 바뀌더니 다시 놀이터로 뛰어나갔다.


그래, 지금 이 순간을 그저 마음껏 즐기면 된다. 한참 나중 걱정일랑 접어두고.


가족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큼 행복한게 또 있을까? ©배정민


한 달이란 시간은 길고도 짧다. 그 와중에도 한국에서 부고가 날아들었다. 부모를 잃은 지인의 상심이 태평양 바다 건너까지 전해졌다. 부모와의 이별은 누구에게나 급작스럽다. 태어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별의 충격이므로.


“부모를 떠나보내면서 좀 더 어른이 되는 것 같아.”


몇 해 전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했던 생각을 담아 벗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부모는 아이와 언젠가 이별을 맞는다. 당장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게 어딘가 어색하고 꺼림칙한 부분도 든다. 아이 말마따나 언제고 헤어지고 싶지 않은, 늘 품에 안고 싶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자식이니까. 오래오래 함께, 그저 행복하고 싶으니까.


하지만 언젠가 끝이 있다는 것. 그걸 인지하고 서로를 대하느냐 아니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 날 한 시에 생을 같이 마감하는 것이 모두가 바라는 해피엔딩이 아님을 어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보다 고작 아홉 해 더 살고 떠난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내가 세상을 뜨고 나서도 그들이 아빠 나이만큼은 더 살고 난 후에나 천국에 가면 좋겠다고. 그래야 그나마 마지막 이별의 슬픔이 덜할 것 같다고.


행사가 끝나갈 즈음 한 방청객이 던진 말이 가슴에 박혔다. 그는 얼마 전에 아버지를 잃었다면서, 이 자리에 함께 온 자신의 어머니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를 부탁했다. 셰릴은 기꺼이 정중한 위로를 전했다.

“매일같이 좋아지진 않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히 좋아지죠. 소소한 즐거움을 찾으세요 (It doesn’t get better everyday, but it does get better with time, and look for the small moment of joy).”

— 배정민,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 중 ‘셰릴 샌드버그의 위로’, p.101-102


어찌어찌 부모는 되었으나 놀이터에서 노는 게 마냥 좋은 아이들에게 삶의 유한함을 온전히 말로 설명할 능력은 여전히 없다. 그저 오늘의 물놀이도, 이번의 살짝 긴 듯한 여행도, 모두 다 끝이 있다는 것 정도만 간신히 알려줄 수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이 마냥 무한하지 않고 제 끝이 있으니,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의미 있게, 소중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걸 각자 경험을 통해 체득할 수 있길 바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얼굴이며 팔다리며 까맣게 탄 아이들은 곧 다시 학교와 학원, 유치원에 가야 한다니 “아악”하고 비명을 지른다. 한 달 동안 쌓인 기억은 새로운 환경에서 빠르게 사라져 갈 테다. 그래도 그 와중에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부모와의 추억 한두 개 정도 남으면 좋겠다 싶다.




정민@jm.bae.20

  

다음 책이 언제 나올 지 모르는 에세이스트. 윈스턴 처칠의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죽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 야구팀의 우승을 보는 것이 꿈이다.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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