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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병원의 비주얼만 일잘러

by 김중희

그녀는 비주얼만 일잘러


요즘 한국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는 신조어 중에는 일 잘하는 사람을 줄여서 일잘러 그에 반해 일 못하는 사람을 일못러 라는 줄임 말로 사용한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그 신조어를 빌려다 쓰자면 우리 병원 직원 중에 P는 비주얼만 일잘러 였다.


그녀가 우리 병원에서 직원으로 출근하며 하던 일은 1. 지가 저질러 놓은 일 뒤치다꺼리까지 다른 사람들이 세네 배를 더 하게 하고 2. 이거 모르겠다 저거 못하겠다 지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능 적으로 다른 이에게 자기의 일까지 떠넘기고 3. 주로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 들과 언쟁을 일삼는 일뿐이었다.


그중에서도 기억나는 일 중에 하나는 환자의 물리치료 처방전에 양쪽 다리라고 정확히 명시되어야 하는데 약자로 양. 다라고 쓴 거다.

물리치료사도 보험 회사에서도 이거 아무도 못 알아본다며 다시 들고 온 환자에게....

"이거 약자로 양쪽 다리를 줄여서 쓴 거예요 나는 썼으니까 못 알아보는 건 내 책임 아니에요" 라며 우기던 그녀의 특기... 뿡긴놈이 성낸다 권법이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그렇게 월급도둑이 따로 없던 P를 6개월의 테스트 기간이 끝나고 정식 계약이 가동되는 9월 이전에 어떻게 하든 자른다 어느새 나의 목표 가 되어 버렸고..

그를 위해 매일 병원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들 중에 그녀가 사고? 쳤던 일들을 메모 해 두고 어떤 것이 누가 봐도 객관 적인 해고 사유가 되려나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그녀가 정형외과에서 일하다 가 이직해서 아직 가정의 병원 에서의 경험이 부족한 탓일 거라고 굳게 믿고 있던 남편에게 그녀의 민낯이 공개되던 날이었다.


...시작은 이러했다.

안 그래도 바쁜 월요일 아침, 진료실 두 군데의 인쇄기가 말썽이었다.

진료를 시작하던 남편은 환자들에게 필요한 서류들을 인쇄해야 하는데 인쇄가 되지 않고 잉크통을 갈아 줘야 한다는 메시지가 뜨자 다른 진료실로 이동하며 두 곳의 인쇄기에 각각 새로운 잉크통으로 갈아 놓아 줄 것을 P양 에게 부탁했다.


왜냐하면 그 시간 다른 직원인 B는 환자의 혈액검사 용 채혈을 하고 있었고 나는 전화로 진료 예약을 받고 있었으므로 놀고 있던 P 가 발탁된 것이다.

게다가 바로 한 주 전에 다른 진료실 인쇄기의 잉크통을 그녀가 교채 했고.. 인쇄기에서 잉크통을 꺼내어 새것으로 바꾸는 일은 알람시계에 건전지를 교체하는 일만큼이나 간단하고 손쉬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P양은 두 개의 인쇄기에 각각 새로운 잉크통으로 바꿔 놓기만 하면 되는 것을 심전도실 초음파실에 있던 다른 진료실에 비해 적게 사용되던 인쇄기 들의 잉크통을 가져다가 두 진료실의 인쇄기에 넣어 두었다.


그건,비유 하자면 건전지 비닐포장 뜯는 것이 귀찮아 이미 다른 시계에서 잘 사용되던 건전지를 빼내서 채워 놓은 것과 같은 상황 이라 하겠다.

정말이지 내가 알고 있는 그녀 다운 발상 이기는 한데... 문제는....


그녀는 달랐다.


그 교체한 잉크통은 생긴 것은 비슷하나 다른 두 곳의 인쇄기와 맞지 않아 인쇄가 되지 않았고

잉크통을 뽑아 와서 빈 통이 된 심전도실 초음파실 인쇄기들은 당연히 먹통이 되었다.

결론은 진료실 세 곳의 모든 인쇄기가 작동이 되지 않았다.


기가 막힌 남편은 P양에게 조용히 자초지종을 물었고... 그녀는 새로운 잉크통을 찾을 수가 없어 다른 방에 잉크통으로 교체 했을 뿐이라며 늘 그렇듯 당당히 이야기했다.

일 못하는 건 용서해도 솔직하지 못한 건 용서할 수 없다는 주의 인 남편은 P 양 에게 하루에도 직원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문구류 부터 불과 일주일 전에 그녀가 직접 교체 했던 새 잉크통 들이 종류별로 쌓여 있는 자료실의 문을 열어 친절히 보여 주었고...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의 잔머리와 거짓말 들이 모두 들통 난 순간에는 인정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련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출근 한지 두 시간이 되지 않은 아침 9시 30분에 조퇴를 해 버렸다.

전혀 아프지 않은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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