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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02. 2019

 상상이 실제 상황이 되는 순간


어찌 보면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혹시나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다양한 것들에 대한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는 하는데...

그 상상 중에 하나가 현실이 되어 버렸다.


안 그래도 깜빡깜빡하는 갱년기 인 데다가, 요즘 워낙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보니 언제가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상상을 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이렇게 빨리 실제 상황이 되어 버젓이 내 눈앞에 나타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할로윈 파티 보다 더 할로윈 스런 금요일


이번 주 목요일인 10월 31일은 할로윈데이였고

독일에서도 한주 내내 여기저기서 파티가 있었다.

물론, 독일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다 보니 주로 젊은 층들 위주의 파티 아이들이 분장하고 사탕 초콜릿 등을 얻으러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이 대부분 이였지만 그럼에도 입가에 피 질질 뭍은 듯한 분장에 상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드라큘라, 마녀, 좀비들을 길에서 심심치 않게 마주칠 수 있던 주였다.


그런 금요일 아침에 막내를 데리고 아직 어두침침한 등굣길에 함께 전차를 타고 출근 길을 서둘렀다.

그날 아침에는 남편이 근처 투석 센터에서 외래 진료가 있던 날이었고 공교롭게도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가 병가를 냈다.

바꿔 말해 혼자 출근해서 병원 문을 열고 진료 준비를 마쳐야 하는 날이었다.



아침 7시인데 새벽의 모습인 전차 정류장에서 막내와 같은 전차를 타고 오늘 저녁 학교에서 있을 할로윈 파티에 막내가 어떤 분장을 하고 갈 것이고 친구들 누가 함께 갈 것인지 등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막내는 학교 앞에서 내리고, 한참 더 가서 종점에 내려야 하는 나는 그 시간 동안 머릿속으로 오늘 병원에서 동료 직원 없이 혼자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마음이 조금 바쁘기는 했지만 평범하고 평온한 혼자만의 자투리 시간이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내가 추운 길바닥에 서서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마치 소름 돋는 좀비를 만나 놀란 것처럼 오 마이 갓뜨를 외치고 있을지 정말이지 짐작도 못했다.



그러나..

언제가 내가 "이렇게 춥고 어두운 날 혼자 열쇠도 없이 병원 앞에 있게 되면 진료 시간보다 일찍 온 환자 들과 나란히 서서 진짜 호로틱 하겠다"라고 생각하던 나만의 상상의 소리를 마치 누군가 들은 것처럼...


평상시 늘 들고 다니던 가방에 언제나 자리에 들어 있던 병원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어?내 열쇠??"

등짝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병원으로  출근하기 바로 , 언제나 처럼 전차 정류장 근처 빵가게에서 커피 한잔 이크 아웃 해 가려고 가방을 열던 나는 항상 지갑과 나란히 들어 있던 열쇠가 없자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 되었다.

이일을 어찌한다는 말인가? 이제 병원 문을 열어야 하는 아침 8시까지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가방안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 병원 열쇠가 운 좋게 집 거실 탁자 위에 얌전히 누워 있다 해도....그 열쇠를 가지러 다시 집으로 갔다 병원으로 오려면 왕복 한 시간도 넘는다.

거기에 늘 함께 일 하던 동료는 병가로 나오지 않을 것이고 다른 열쇠를 가지고 있는 남편 이 오려면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독일에는 이렇게 열쇠를 복사해 주는 가게들이 동네 마다 있다.

지금은 비상 사태


커피고 나발이고 뛰듯이 걸어 도착한 병원 문 앞에 벌써 와서 기다리고 섰는 환자 들을 보고 나는 기겁할수 밖에 없었다.

얼른 병원 문을 열어야 하는데....열쇠는 없고....날은 춥고....환자들은 미리 와서 문 앞에 서 있는 ... 

개떡 같은 상상이 찰떡 같이 실제 상황으로 펼쳐 지고 있었다.


한국의 변두리 아파트에 사시는 팔순 다되어 가시 시어머니도 세련되게 현관문 비밀 번호를 누르고 다니시는데..

독일 도시 한복판에 사는 우리는 아직도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닌다.


지문 인식 시스템 이다 뭐다 하는 모던한 세상에 독일의 문들은 비밀 번호를 누르는 다이얼 패드가 달린 것도 아니고  호텔 처럼 카드를 들이 대면 철커덕 열리는 센서가 달린 것도 아닌체 오로지 열쇠 구멍만 덩그러니 있다.


독일은 연구소 라던가 기업,호텔 등의 예외 의 장소 들이 아닌, 일반 가정집 부터 유치원, 학교 건물 공공기관 건물 그리고 개인 병원 건물 문들 까지 거의 모두 열쇠로 되어 있다.

그래서 공공기관의 열쇠들은 복사도 마음 대로 할수 없으며 누가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 이름과 받은 날짜 또는 반납한 날짜 들을 본인 사인 받아서 서류 처리 하게 되어 있다.

한마디로 관련인 들 아니면 열쇠로 문을 연다는 것은 불가능 하며 그런 열쇠를 잃어 버리기라도 한다면 난리가 난다는 이야기다.

물론,열쇠를 잃어버렸거나 했을때 문 따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회사에 맡기면 열쇠 상관 없이 문을 열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랜시간 걸려서 비싼 요금을 내야 하며 그 이후에 건물의 모든 열쇠를 모조리 바꿔야 한다는 복잡한 일들을 담보로 한다.

지금 당장 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인말이다.

당장....


어느 업체의 2011년 기준 문 따주는 시간별 가격,출장비는 받지 않는 다는 광고가  출장비가 포함 되는 경우가 많다는것을 반증 한다.못해도 100유로 이상 든다.
열쇠를 잃어버렸거나,깜빡 한 경우 15만원 에서 20만원은 가쁜이 들어 간다는 이야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보아도 별뾰족한 방법을 찾을수 없던 나는,아침 일찍 부터 병가를 받으러 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나를 빤히 보고 있는 젊은 환자들에게 겸연쩍은 미소를 날린체 슬그머니 병원문 끝쪽으로 붙어섰다.

그리고는 코미디 영화 에서나 나올법한 모습으로 누군가 들을 세라 목소리를 낮춘체 핸디를 부여 잡고 우리 병원 에서 일하는 또다른 직원 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그녀는 일주일에 한번 화요일 에만 우리병원에 출근하는 MFA 의료 전문 어시스턴트 인데 평소 에는 의료보험 공단 KV에서 교대로 전화 의료상담을 하는 사람이다.

분명 그전날도 근무 하느라 밤새우와서 자고 있을 사람에게 나는 어쩔수 없이 전화를 할수 밖에 없었다.

"귤귤(그녀의 애칭) 나야, 자고 있었니? 아침 부터 미안 한데 큰일 났어 나 지금 우리 병원 문앞 인데 열쇠가 없어"

전화 목소리 에서도 피곤이 뭍어 나던 그녀는 그럼 에도 비상 사태 이므로 기꺼이 와 주겠노라 했다.


그날 세수도 못한듯 부시시한 생얼로 열쇠 들고 뛰어 나와준 고마운 귤귤 덕분에 간신히 진료 시간 맞춰 병원 문을 열수 있었다.

그런데 미안하고 어이 없게도 열쇠는 그전날 입고 일하던 가운 주머니 에서 나왔다.

그 열쇠 가지러 간다고 집까지 갔으면 어쩔뻔 했나...헛웃음이 터지던 순간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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