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아니었다
치명적 호기심을 가진 아내와 사는 법
이게 뭘까?
필라테스를 다녀온 아내가 가방에서 뭘 꺼내 든다.
그녀 특유의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다.
"딱 봐도 밤이네 (시큰둥하게 보는 나)"
"밤 아니야"
"에이~ 밤인데"
"아니래두..."
먹어보잔다.
망치를 찾아와 힘껏 내리쳤는데 안 깨진다.
몇 번을 시도하다가 결국 톱으로 바꿨다.
흥부가 박을 타듯 낑낑대며 간신히 반을 잘라 쪼갰다.
"봐봐, 밤이네"
"으~~ (퉤퉤) 써"
"어디 나도... (퉤퉤) 아닌가?"
"거 봐 아니래두!"
검색해보니, 정말 밤이 아니었다.
흔한 가로수 중 하나인 '마로니에' 열매였다.
그런데 독성이 있다.
먹으면 위경련, 현기증, 구토 현상이 일어나며
심한 경우 사망하는 사례도 있단다.
(열매 주워 먹고 응급실 간 사람들도 많다고... 헉!)
호기심도 겁도 많은 아내와 산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 실험의 대상이 항상 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조금씩 무뎌져 가는 나의 지적 호기심을
꾸준히 자극시켜 준다는 점에서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뭔가 궁금한 게 생기면
아내의 눈은 아이처럼 늘 살아서 반짝거린다.
그 모습이 참 좋다.
그러고 보니 진짜 밤을 먹을 수 있는
추석이 얼마 안 남았다.
처서(處暑)가 지나고
더위도 그치고 슬슬 가을로 바뀌는 느낌이다.
알베르 까뮈가 이런 말을 했다지...
Autumn is a second spring
when every leaf is a flower
가을은 두 번째 봄이란다.
우울해만 보이던 실존주의 작가에게
이런 낭만이 남아 있었다니 의외다.
청춘은 이미 가버렸다고,
세상 새로울 게 없다고,
만사 시큰둥하게 살아가는 어른들이여!
당신 눈에 호기심 한번 담아 보시길 추천한다.
혹시 아나?
한번 더 만개할 꽃씨가 내 속에 아직 남아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