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여자

단편

by 장순혁

밤, 하나의 조명이 켜져 방을 자그맣게 밝히고 있다.
각종 잡동사니가 가득 차 있어 어지러운 방.
옷가지들과 잡지들, 스마트폰 충전기가 보인다.
발 디딜 틈 없어 보이는 방에
유일하다시피 깔끔한 앉은뱅이책상이 있다.
어지럽혀져 있는 방안을 비추다가
흰 벽 앞의 앉은뱅이책상을 화면에 담는 카메라.
화면은 고정한 채로 누군가의 걸음 소리가 들린다.
책상에 투명한 유리잔과 맥주캔이 놓인다.
누군가 벽에 편히 기대어 앉아 맥주캔을 딴다.
유리잔에 맥주를 따른다.
유리잔 한가득 담긴 맥주와 약간의 거품.
맥주캔을 책상에 올려두고,
그 앞에 있는 건 여자다.
여자는 맥주가 든 유리잔을 손에 쥐고 벌컥벌컥 마신다.
여자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신다.
맥주가 담긴 유리잔을 반 정도 비운 여자.
여자의 입가에 맥주 거품이 묻는다.
여자는 팔로 대충 거품을 닦는다.
문득 울리는 전화벨 소리.
여자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본다.
잠시 무표정이다가, 얼굴을 구기고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여자는 무심하게 유리잔에 담긴 맥주를 깔끔하게 비운다.
여자는 유리잔을 옆에 두고 캔째로 맥주를 들이마신다.
비워진 맥주캔.
여자는 빈 맥주캔을 손으로 힘주어 구기고,
방 한구석으로 집어 던진다.
여자가 일어나 화면에서 벗어난다.
카메라는 여전히 그대로인 채로,
여자가 침대에 몸을 던지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는 조용히 말한다.

여자 (조용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씨발.."

화면이 어두워진다.
장면이 끝이 난다.

*

밤, 하나의 조명이 켜져 방을 자그맣게 밝히고 있다.
여전히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 있어 더러운 방.
전 장면의 물건들 위에 새로운 옷이 얹혀져 있다.
카메라는 전 장면과 앵글이 같다.
카메라는 흰 벽 앞의 앉은뱅이책상을 비춘다.
화면은 다시 고정된 채로 걸음 소리가 들린다.
책상에 투명한 유리잔과 맥주 2캔이 놓인다.
여자가 벽에 기대어 앉아 첫 번째 맥주캔을 딴다.
유리잔에 맥주를 따른다.
유리잔 한가득 담긴 맥주와 약간의 거품.
맥주캔을 다시 책상에 올려두고,
그 앞에 여자가 앉는다.
여자는 유리잔에 담긴 맥주를 들이켠다.
맥주가 담긴 유리잔을 반 정도 비운 여자.
여자의 입가에 맥주 거품이 묻는다.
여자는 옷 소매로 대충 거품을 닦는다.
울리는 전화벨 소리.
여자는 화면에는 보이지 않게 바닥에 놓인 스마트폰을 집는다.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바로 인상이 구겨진다.
여자는 성가신 듯한 표정으로 유리잔의 맥주를 비운다.
여자는 비워진 맥주캔을 구기고 방 한구석으로 던진다.
여자는 남은 맥주를 딴다.
한입에 맥주를 털어놓고,
여자가 일어나 화면에서 벗어난다.
카메라는 여전히 그대로인 채로,
여자가 침대에 몸을 던지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는 조용히 말한다.

여자 (조용하지만 날 선 목소리로)
"씨발, 쫌!"

화면이 어두워진다.
장면이 끝이 난다.

*

밤, 하나의 조명이 켜져 방을 자그맣게 밝히고 있다.
카메라는 흰 벽 앞의 앉은뱅이책상을 비춘다.
앉은뱅이책상에는 맥주 3캔이 있다.
여자가 벽에 기대어 앉는다.
이제는 유리잔도 없다.
여자는 맥주캔을 따고 바로 입으로 향해 마신다.
맥주 1캔을 단숨에 비우고 비워진 맥주캔은 역시 구기고
방구석에다가 던져 버린다.
여자가 2번째 맥주캔을 딴다.
역시 단숨에 들이킨다.
여자가 3번째 맥주캔에 손을 뻗자
다시 익숙한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여자는 익숙하게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고 표정을 구긴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마트폰을 바라보다가 전화를 받는다.

전화 소리 (기계음의 여성 목소리로)
"고객님의 신용 카드 대금이 연체되어 전화합니다.
이번 달 말일까지 연체료를 갚지 않으면 신용 카드가 정지됩..."

여자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여자가 남은 맥주캔을 들고 딸까, 말까 망설이다가
맥주를 들고 화면에서 벗어난다.
냉장고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맥주를 냉장고에 놓는 소리가 들린다.
냉장고가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가 침대에 몸을 던지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는 조용히 말한다.

여자 (짜증이 가득 찬 목소리로)

"씨..발.."

여자가 한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린다.
화면이 어두워진다.
장면이 끝이 난다.

*

밤, 하나의 조명이 켜져 방을 자그맣게 밝히고 있다.
여전히 흰 벽과 함께 앉은뱅이책상을 비추는 카메라.
이미 여자는 벽에 기대어 앉아있고,
책상 위에는 빈 맥주캔들이 구겨진 채로 널려있다.
여자의 얼굴은 발갛게 물들어있다.
많이 취한 듯이 보이는 여자.
책상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의 전화벨 소리가 울리자
여자는 스마트폰을 바로 꺼버리고 방구석에 던진다.
여자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여자는 전의 장면들처럼 일어나려다가,
힘이 풀린 듯이 주저앉는다.
여자는 다시 가만히 앉아있다가,
책상 위의 맥주캔들을 팔로 쓸어버린다.
여자는 무표정을 유지하다가,
여자의 눈에서 툭, 눈물이 흐른다.
여자는 눈물을 계속 흘린다.
여자가 눈물을 닦고, 계속해서 닦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자가 화면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자가 침대에 몸을 던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화면이 어두워진다.
장면이 끝이 난다.

*

아침, 자연광이 화면에 가득 찬다.
카메라는 변함없이 앉은뱅이책상과 그 뒤의 흰 벽을 비춘다.
책상에는 조금의 먼지가 쌓여있다.
화면은 유지한 채로,
현관문을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머니 (나이가 든 아주머니의 목소리로)
"아가씨, 집에 있어요? 집세가 몇 달째 연체돼서 왔어요!
처음엔 매달 꼬박꼬박 집세 내더니,
이제 집세가 안 들어온 지 몇 달인지 몰라요!
아가씨! 아가씨? 나 들어가도 돼요? 나 들어갈게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머니가 비명을 지른다.
아주머니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린다.

아주머니 (몹시 놀라고,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당황하며)
"여기, 여기 사람이, 사람이 죽었어요!
네.. 네, 목을 매달았는데, 여,여기 주소가.."

앉은뱅이책상과 흰 벽을 비추는 카메라.
화면이 어두워진다.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 (조용한 목소리, 하지만 어딘가 후련해 보이게)
"...씨발."

장면이 끝이 난다.

keyword
이전 04화어떤 남자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