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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너울 Aug 08. 2024

[제2화] 꿈은 이루어진다고?

첫 번째 손님_민서

자정이 되어가는 시각, 고깃집은 한 차례 손님들이 다녀간 직후이다. 도깨비 후드가 나름 제 역할을 잘 해내었다고는 하나 실내엔 여전히 희뿌연 연기가 가득했고, 아직도 손님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는 듯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졌다. 테이블 위에는 여기저기 남은 음식물과 지저분해진 그릇 등이 어수선하게 놓여 있고, 바닥에는 각종 반찬과 고기 잔해들이 흩어져 있다. 오늘 바닥 당번은 분명 내일 아침 악 소리나게 허리를 부여잡을 터였다. 소란함 뒤 적막이 무색하게 주방에서는 직원들이 불판을 닦고, 설거지 한 그릇들을 정리하느라 말없이 분주했다.

숯불을 뺀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고기 굽는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생각해 보니 그녀는 오늘 저녁도 먹지 못했다. 남은 음식물을 한 데 모아 담고 그릇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튄 고기 기름과 소스 자국이 테이블 위 조명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아주 작은 은하수다. 겨우 가로 세로 150cm도 되지 않는 이 작은 은하수에도 그녀의 별은 없었다. 표정은 지쳤고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뜨느라 이마엔 주름이 선명하다. 검고 긴 머리는 하나로 동여매었으나 묶은 끈이 느슨해져 어깨 위로 힘없이 늘어졌고, 곱슬의 잔머리만이 하나하나 생명력을 머금은 듯 포슬포슬 살아나 있다. 평탄치 않은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 20대 중반이지만 30을 훌쩍 넘겨 보이는 그녀의 이름은 민서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목요일,  민서는 오늘도 내일과 똑같을 새벽을 맞고 있었다. 고깃집 간판은 언제나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알리 듯 화려하게 빛났다. 글자들은 자체발광 하듯 선명하게 드러나고, 간판 테두리로 다채로운 빛의 조명이 서로의 색을 뽐내기 바빴다. 이쯤 되면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마련이겠다마는 옆집도, 그 옆집도, 또 그 옆집도 이보다 못할 리 없다. 여기서 빛을 뽐내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민서뿐이다. 그 화려했던 조명이 기어코 꺼지고 나서야 비로소  민서의 고된 하루도 끝이 났다. 어깨에 쇳덩이라도 짊어진 듯 온몸이 무거웠다. 이 어두운 터널은 왜 나에게만 이렇게 긴 것인지 마음은 더 그러했다. 하지만 두 다리는 무엇보다 가벼워야 할 때. 민서는 오늘도 110번 막차를 타기 위해 달렸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가 저 멀리 희미한 가로등 불빛보다도 못한 것 같아 오늘따라 유난히 더 흐려보이는 저 불빛에 가슴이 찌릿했다.


새벽 공기가 아직 매섭다. 성질 급한 꽃은 이미 제 얼굴을 다 드러내고, 몇 몇 나무들은 말라 비틀어진 지난 겨울의 생명이 아직 끝나기도 전에 이미 맑은 연두빛 잎들을 품기도 했는데... 가을 하늘 부럽지 않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아름답다 한들 민서에겐 상관 없는 일이다. 그녀의 고된 퇴근길은 오늘도 여전히 어두우므로. 하마터면 놓칠 뻔한 버스 꽁무니를 있는 힘껏 두드리며 가까스로 버스에 올라탔다.


또 하루를 견뎌냈다.


10년 전 그날, 민석은 수학여행을 간다며 나간 뒤로 돌아오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면 더 좋을테지만 우리 형편에 배라도 탈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냐며 중학교 졸업 후에도 몇 년 간 바꾸지 않은 낡은 가방을 설레는 마음으로 끌어안던 그를 민서는 잊을 수 없다. 그녀의 마음은 그 때 성장을 멈추었다. 어른들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때만 되면 사건이라느니 사고라느니 시끄럽게 싸우기 바쁘다. 사고든 사건이든 어느 쪽이든 오빠는 돌아오지 않는다.

<민서야, 엄마 통화안되 오빠가돌아가지 못하면 부모니마씀 자르ㄸ고>


띄어쓰기, 맞춤법은 왜 또 이리 엉망인지...  '안되'가 아니라 '안돼'라고 몇 번을 말하냐며 민서에게 면박을 주던 그가 아니었던가. '자르ㄸ고'는 '잘 듣고'라는 말인지 '잘 따르고'라는 말인지... 민서는 의식적으로 '오빠가 돌아가지 못하면'이란 글자는 건너뛰었다. 10년 전에도 10년 후에도.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 사고들을 보면 마지막으로 남기는 메세지에는 가슴 뭉클한 사랑이나 뒤늦은 후회 등이 담기기 마련인 것을, 민석은 어쩌자고...


오지 않을 오빠를 기다리면서도, 이례적으로 생판 남인 조문객들이 많았던 장례식장에서도, 그리고 한 줌의 재로 허무하게 오빠가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민서가 몇 번을 다시 살폈지만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숨통을 조여오는 그 두려움 속에서도 그는 수업 시간일 민서를 배려해 통화 대신 문자를 남긴 것인가. 남은 동생에게 하필 마지막으로 남긴 문자 내용이 식상한, 어른들의 잔소리 레퍼토리이고?!



침대에 노곤한 몸을 누였지만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았다.


"덜 피곤해서 그런거지, 취업 준비도 열심히 하고 아르바이트도 두 개씩 하는데 잠을 잘 못잔다는 게... 눕자마자 잠이 들텐데... 좀 더 열심히 살아. 오빠 몫까지 네가... "


언젠가 늦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주방의 간이 조명에 의지해 식탁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민서에게 엄마가 말했다. 민서에서 시작해서 항상 민석으로 끝나는 엄마의 신기한 잔소리 기술. 그것은 민석이 있던 10년 전이나 더이상 민석이 없는 10년 후에도 다르지 않았다. 민서는 오빠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얼른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엄마의 목소리가 좀 더 나는 것 같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이제 내일, 아니 오늘 하루만 더 고생하고 나면 주말엔 카페 직원 면접이 있다. 일이 잘 풀리면 주 3회는 카페 아르바이트로 바꿀 예정이다. 버는 돈은 조금 줄겠지만 지칠대로 지친 새벽 퇴근 횟수는 줄일 수 있다. 몇 시간 자고 일어나면 다시 여러 채용 사이트를 돌며 그녀에게 맞는 공고를 찾고, 각 기업의 최근 이슈들을 검색하며


지원 부서의 관련 업무 내용까지 파악하는 작업이 반복될 것이다. 아! 내가 바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임을 어필하는 -이미 수 백번쯤 고쳐 써보았을-자기소개서 수정도 잊지 않아야 한다.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개뿔. 심지어 내 꿈은 그리 거창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잠결에 이 말을 실제로 했는지 아니면 생각으로만 그친 것인지 민서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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