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카눈넝 Oct 23. 2022

<5장>_1. 지금도 충분해

어김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두 아이의 밥을 먹이고 가방을 챙겨서 어린이집으로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없는 한 시간 반의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소리 내지 않는 고요한 시간이 찾아온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날을 제외하고 매일 요가를 간다. 요가를 가지 못하는 날에는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날은 유독 몸이 무겁고 하늘도 우중충하다. 그런 날에는 날씨 탓에 어두워진 거실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냅다 드러눕는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서. 


제대로 쉬려면 핸드폰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어리석게도 손에서 놓지 못한다. 1초 단위로 업로드되는 새로운 소식과 사진을 보려면 내 엄지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SNS에 적당한 재밋거리를 찾지 못하면 엄지를 아래로 쓸어내려 새로고침을 한다. 그러면 요즘 사고 싶었던 물건이 주르륵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클릭해 쇼핑몰에 접속한다. ‘오- 이거 예쁘다. 갖고 싶다.’ 사지도 않을 물건을 장바구니에 가득 실어본다. 한참을 구경하다 정신을 차려 다시 SNS로 돌아온다. 나의 취향을 이미 속속히 알고 있는 교활한 Ai는 나의 시선을 붙잡아 둘 새로운 피드를 내놓는다. 여기저기를 들락날락하며 사람들이 어디로 놀러 가는지, 무엇을 먹는지 보며 부러워한다. 컴컴한 거실의 한 가운데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아직도 아이들이 먹다 남긴 아침 식사가 있다. 작은 그릇 하나 치우지도 못한 채, 지쳐 쓰러져 버린 소파 위의 내가 보잘것없어진다. ‘집 인테리어가 너무 멋지다. 저 사람은 어디서 돈을 많이 벌었을까?, 저 엄마는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살 수 있지?’ 하는 등의 수많은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아침이다. 요가를 하러 간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도착하면 한두 명의 사람만 와있다. 학창 시절 남들보다 일찍 준비해서 도착한 교실에 간 듯 기분 좋게 거울 앞쪽으로 간다. 요가원 매트 위에 가지고 온 요가 타월을 펼쳐본다. 구김 없이 손바닥으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쓸어내리며 부산했던 아침을 고요하게 정리해 본다. 반듯하게 정리된 매트 위로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거울을 보며 단정하게 머리를 묶는다. 그리고 지난 수업에 했던 동작을 떠올리며 간단한 스트레칭을 해본다.     


그때 옆에서 선생님과 어떤 분의 대화가 들렸다.

“그날 수업은 괜찮았어요~?”

“네, 근데 거기에는 거울이 없어서 느낌이 이상했어요.”

“아 그래요? 저는 처음 요가를 배울 때 거울이 없는 곳에서 배웠어요. 거울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랑 비교하게 되고 신경 쓰니까. 거울이 없는 게 좋을 때도 있더라고요."     


그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내가 다닌 요가원들은 거울이 있어서 한 번도 거울 없이 요가를 해본 적이 없었다. 마냥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내 모습은 미처 생각 못 했었다. 그랬다, 나는 요가 하면서 끊임없이 고개를 살짝 들어 거울 속에 비친 사람들을 의식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나보다 더 유연하네? 얼마나 요가 했을까?’ ‘옆에 앉은 사람 보다 내가 더 잘하네.’ 부끄럽게도 이 유치한 말들은 실제로 내가 했던 생각이다. 갑자기 너무 부끄러워졌다. 요가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알아가는 것인데,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내가 정작 그렇게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이날엔 온전히 내 몸에 집중해서 요가를 하려고 노력했다. 자꾸 신경이 쓰일 때는 눈을 감아가며 집중을 이어 나갔었다. 우연히 들은 한마디가 나의 문제점을 콕 찔러주는 것 같았다.


SNS를 통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나의 모습 그대로를 거부하고 외면했다. 요가를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동작과 나의 동작을 비교하며 내면에 집중하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난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았던 것 같다. ‘항상 부족해, 더 해야 해.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하지 마.’하는 등의 채찍질만 했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지 못하자 외부의 시선으로 나를 인정해야 했고 그 결과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을 많이 했다. 정작 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사실은 부족할 것 없이 아주 잘 살아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내 몸을 누 월수 있는 따뜻한 침대가 있고 언제든지 배고프면 꺼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풍족하게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두 딸도 건강하게 잘 있고, 부족한 나를 언제나 채워줄 수 있는 깊은 마음을 가진 남편도 옆에 있다. 남부럽지 않게 아주 잘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더 유연하게 내려가는 상체가 열심히 요가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 주고 있었다. 한 달 전만 해도 되지 않았던 동작을 힘들지 않게 해내는 모습은 왜 스스로 칭찬해 주지 않았는지.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너무나도 쉽게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세상이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입었는지.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 살고 그 집이 얼마인지도 검색하면 알 수 있다.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노출이 된다. 외부로 오는 자극이 갈수록 심해지니 정작 내면의 모습에는 귀 기울이지 못한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고민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SNS 속의 사람들의 하루를 지켜보지 말고 그 정성과 집중력으로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어떨까? 안 그래도 계속해서 비교하며 경쟁시키는 사회 속에서, 적어도 나는 나한테 그러지 말자.

오늘도 핸드폰을 완전하게 내려놓지 못하는 나 자신과 싸우고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닌, 어제의 몸 상태와 오늘의 몸 상태가 어떻게 다른지 느껴보려고 한다. 끝을 빌어 나 자신에게 또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돼, 너는 지금도 충분하니까.’

이전 09화 <4장>_5. 주유하는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