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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Oct 28. 2022

혼자 먹는 밥

나를 존중하는 식사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혼밥을 시작한 지 대략 십여 년은 넘은 것 같다. 혼자 떠난 해외 여행에서 혼밥을 하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오히려 우리 나라에서 혼자 식당에 갈 때마다 무언가 불편하고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혼자 왔어요?" 자리를 안내하려는 식당직원이 물을 때마다 쑥스럽고 민망하게 "혼자요."라고 답했었다. 


  요즘에는 ‘혼밥’과 ‘혼술’이라는 말이 통용될만큼 혼자 밥 먹고 혼자 마시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 또한 이제는 식당에 들어가서 당당하게 "한 명이요."라고 먼저 말하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같은 곳에는 혼자 가지 못하지만, 어지간한 식당에는 편하게 가서 내 속도에 맞추어 반찬까지 리필해가며 여유있게 식사를 다 마치고 나온다. 



  혼밥하러 자주 가는 식당은 분식집이나 콩나물국밥집, 찌개류를 파는 곳이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도 바뀌었는지 양식류보다는 한식을 먹어야 속이 든든하고 좋다. 온갖 반찬이 버무려지고 고소한 참기름이 화룡정점을 찍는 비빔밥,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김밥,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떡볶이, 쫄깃한 면발에 새콤달콤 양념과 채소가 풍성한 한 입을 선사하는 쫄면, 뜨거운 국물에 깍두기와의 조화가 일품인 콩나물국밥, 매일 손수 만든 고소한 순두부에 담백한 국물의 하얀 순두부찌개, 육수의 깊은 맛이 담긴 얼큰한 김치찌개 등을 자주 먹는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식사는 불편하고 곤욕스러울 때가 많다. 개인 메뉴를 시키지 않고 여러 가지 음식을 나눠 먹어야 할 때에는 먹는 속도가 지나치게 느린 나에게는 치명적이다. 남들이 두 번 떠 먹을 때 한 번 뜬 것도 다 먹지 못할 정도이니, 처음부터 내가 먹을 음식을 확보하지 못하면,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먹어보지 못할 때도 많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숟가락을 내려 놓았는데도, 내 식사량을 채우지 못해서 혼자서 계속 젓가락질을 할 때이다. 사람들은 말로는 편하게 실컷 먹으라며 웃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시선이 느껴져 불편하게 꾸역꾸역 대충 먹게 된다. 


  자기가 먹을 때에는 남을 신경쓰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계속해서 열심히 씹고 있었기 때문에 느린 속도 때문에 먹은 양이 적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고,놀라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보기보다 많이 먹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럴 때면 억울함이 명치끝에서부터 확 밀려오지만,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구차하다. 


  이러하다보니 혼자 먹는 밥이 이제는 가장 마음이 편안하고 만족스럽다. 이것저것 신경쓰지 않고 내 속도를 유지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 눈치보지 않고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밥을 먹을 때만큼은 나를 최대한 존중해 주고 싶다. 집에서 혼합할 때라도 식탁 매트와 수저 받침, 앞접시까지 정갈하게 세팅하고, 반찬도 예쁜 접시에 플레이팅한다. 혼자 먹는 밥이지만 정성스럽게 차려진 식탁으로 나를 초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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