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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아닌 미국으로 떠나게 되다

하늘을 품은 남자와 사는 이야기 (3)

by 도럽맘 Mar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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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을 선교사 훈련원에서 보내다니,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꿈에서 키다리 아저씨를 보았고, 두 달 후 그 키다리 아저씨 같은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다시 두 달 후,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고, 양화진에서 프로포즈를 받았다. 그리고 세 달 후, 결혼식을 올렸다. 그렇게 1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내 인생은 급격히 변해갔다.


우리는 선교사 훈련원에서 지내면서 매일 새벽, 졸린 눈을 비비며 강의실로 내려가 기도에 참석했다. 아침 식사 후에는 다 같이 큐티를 나누며 각자의 선교지와 사명을 이야기하는 훈련생들의 열정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수록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과연 나에게도 그런 부르심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만 커져갔다.


설상가상으로 남자와의 잦은 다툼은 나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물론 그에게는 분명한 장점이 있었다. 그는 ‘통찰력’이 뛰어났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중국 문화에서 비롯된 특유의 간접적인 표현 방식과 숨겨진 뜻을 빠르게 간파하는 능력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상대방의 성격과 성향을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논리적인 사고가 강해, 어떤 것이든 이성적으로 설득이 되어야만 수긍하는 성향이었다.


반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교회와 가정, 그리고 사회 분위기 속에서 ‘순종’을 미덕으로 여기는 환경에서 자라왔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주어진 것을 따르는 수동적인 성향이 강했다. 이렇게 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우리 두 사람은 끊임없이 부딪히며 논쟁이 끊이지 않는 신혼을 보내고 있었다.


남자는 훈련을 받으며 큰 혼란을 겪었다. 교단이 다른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수많은 질문과 의문이 쌓여갔다. “혹시 내가 신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사역을 하게 된다면, 잘못된 교리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도 들었다.


훈련이 시작된 지 4개월쯤 지났을 무렵, 미국에서 한인 교회를 목회하는 안 목사님께서 ‘설교학’ 강의를 위해 훈련원에 오셨다. 이전의 강사님들은 주로 선교와 목회의 ‘성공’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안 목사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말씀’만 전하셨다. 오직 ‘예수님‘ 만 자랑하다가 떠나신 그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는 그의 설교를 들으며 많이 울었고, 그 시간을 통해 내면의 많은 것들이 깨어지고 나의 오만함과 교만함을 회개하는 경험을 했다.


안 목사님이 떠난 후, 남자는 결심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선교사 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중국으로 갈 계획이었지만, 그는 방향을 틀어 미국으로 가서 신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신학은 모국어로 배워야 더 깊이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데, 한국에는 그런 신학교가 없고, 중국에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삼자 신학교뿐이었다. 결국 그는 미국에서 중국어로 신학을 가르치는 학교를 찾아 유학을 결심했다.


마침, 안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가 신학교에서 30분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는 안 목사님께 메일을 보내, 우리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될 계획과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렇게 우리는 8개월간의 선교사 훈련을 마치고, 중국이 아닌 미국으로 향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 인생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미국 유학을 내 공부가 아닌 남자의 공부를 하기위해서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미국에서의 삶이 나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게 되는 광야와 같은 시간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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