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라 Oct 24. 2021

택배 시대

옮기고 달리고 옮기고 달리고

  어릴 적을 생각하면 참 낯설어진 풍경 중에 택배가 있다. 집집마다 문 앞에는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고 도로마다 택배차들이 즐비하다. 택배 상자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비에 젖어 무거운 조바심을 내뿜고, 송장번호 스티커와 포장 테이프들은 쇼핑몰 주인들의 조급한 피곤함을 전한다. 도로의 택배차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고 택배 기사님들이 택배를 옮길 때에도 건조한 힘듦이 느껴진다.


  세상에 이렇게 물건이 많았던 걸까.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마트에 가서 장을 보던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당연하게 온라인으로 가격 비교를 하고 후기를 확인하여 물건을 산다. 젓가락이든 컴퓨터든 옷이든 음식이든 인터넷에 싸게 다 있으니까. 물건을 주문하고 택배를 기다리면서부터는 마음 한편이 무겁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한여름에, 비가 오는 날에, 밤에, 휴일에 택배를 받게 될 때 그렇다. 시골에서 올라온 고구마, 김치 상자들을 받을 때는 더욱 죄송하다. 문 앞에서 집 안까지 들여놓는 것도 무거운데 고구마야, 너는 어떻게 이 먼길을 달려왔니.


  가끔 배달 어플로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 '수저, 젓가락은 빼주세요.'를 항상 확인한다. 예전에 확인을 깜빡해서 나무젓가락들이 함께 배달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젓가락들을 집에 쌓아 둬도 쓸 일이 없어 볼 때마다 죄책감 덩어리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항목이 기본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참 기뻤다. 일회용기를 덜 쓰는 것이 기본인 세상이 된 것 같아서다.


  택배를 이용할 때도 '궂은날이면 배달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기본 체크가 되면 좋겠다. 나는 물건을 일주일 후에, 아니 한 달 후에 받아도 되므로 날씨가 맑은 평일에 기사님이 안전 운전을 천천히 하시면서 편안하게 배달해 주시면 좋겠다. 어떤 방식으로든 물건을 받을 때 죄책감이 덜 느껴지면 좋겠다.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늦게 받아도 되는 물건, 급한 물건들을 언제 분류하여 어디에 쌓아두겠나 싶다. 일거리를 더 만들어 기사님을 힘들게 하는 걸까, 현실화되기 어려운 망상일까 생각해본다.

 

  택배를 받고 나면 상자를 버릴 때도 마음이 쓰인다. 귀찮음을 꾹꾹 누르면서 테이프와 송장 스티커를 뗀다. 어쩔 때는 완벽히 떼지 않고 그냥 버리기도 한다. 이 상자는 다시 수많은 쓰레기로 돌아가 경비 선생님들과 재활용 선생님들을 만나겠지. 폐지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고단한 손길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파트 동만 하더라도 일주일 동안 높은 산처럼 상자가 쌓이는데 제로 웨이스트를 주장하면서 나는 왜 쓰레기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소비를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보다 쌓이는 것도 크다. 그래서 웬만하면 물건을 덜 사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가끔씩 주문을 하게 되면 이처럼 마음이 무겁다. 살면서 여길 봐도 죄책감, 저길 봐도 죄책감이 쌓인다. 택배 기사님들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노동 강도는 줄어들면 좋겠고 드론 택배가 나오면 일자리를 잃으실까 걱정이 되고. 사는 게 참 답이 없다.

  

  "매번 죄책감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라고 말하는 이. 

  "뭐라도 행동해야 죄책감이 줄어들지."라고 말하는 나. 

  가끔씩은 십 년, 이십 년 후로 순간 이동해서 답을 미리 알고 싶다. 세상에 좀 더 이로운 방향으로 살고 싶다.











이전 08화 안녕 부동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