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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다 Mar 13. 2020

캐나다 밴쿠버에서  1년 살기를 결심한 이유

워킹홀리데이가 아니라, 코업 비자로


캐나다를 간다고?
너 한국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잖아?



내가 캐나다를 간다고 말하니까 나와 카톡을 주고받던 친구는 나에게 저런 말을 했다.


맞다. 사실 한국에 온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2018년 11월에 한국 준정부기관의 해외사무소 인턴으로 우즈베키스탄에 갔다.

10개월간의 생활을 종료하고 2019년 9월 말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인턴생활을 마치고 1년 가까이 열심히 일을 한 나에게 보상의 선물로 한 달 유럽여행을 선물했고,

10월부터 11월까지 영국을 시작으로 이탈리아까지 유럽여행을 했다.


그리고 2019년 3월에 캐나다에 간다고 하자 친구는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해외로 나가냐고 놀라며 말했다. 그리고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너도 그 워킹홀리데이 가는 거야?
    

응, 이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캐나다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어학연수를 간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하다. 왜냐하면 나는 코업 비자라는 조금은 생소한 비자로 캐나다행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는 그런 것이라며 대충 대답하고 말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캐나다로 어학연수워킹홀리데이로 간다. 그런데, 내가 갔던 코업 비자는 도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유학원의 상담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몰랐을 테니까.


코업 비자는 쉽게 말해서 스터디 퍼밋워크퍼밋을 함께 받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컬리지 학생이 아니면 학생 신분으로 일을 할 수가 없지만, 코업 비자는 어학원을 다니면서 학생 신분이지만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비자이다.


따라서, 나이 제한이 있는 워킹홀리데이를 가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어학연수를 장기적으로 하기에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주로 이 비자를 통해서 캐나다에 가게 된다.










라다 씨, 러시아어를 잘하니까 영어도 잘하겠네요?


이제 내가 캐나다 1년 살기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면, 앞서 언급했던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인턴생활을 하면서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아주 강하게 느꼈다.


러시아어 전공자인 나는 대학에 입학하여 약 4년 동안 영어와는 벽을 쌓고 오직 러시아어 공부에만 전념했다.

제2외국어를 배운 사람은 알겠지만, 익숙한 영어가 제2외국어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2마리의 토끼를 잡기 어렵다고 영어를 버리거나 러시아어를 버려야만 했다.

그래서 영어를 버리고 내 전공인 러시아어 공부에 집중했다.


러시아어가 공용어인 우즈베키스탄 해외사무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영어를 쓸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근무를 했던 사무소는 러시아어를 못하는 상사와 현지 직원의 대화, 국제 세미나, 러시아어를 못하는 인턴과 현지 직원의 대화, 유관기관 면담 시에 영어는 필수적인 소통의 도구였다.


영어로 진행되는 팀 미팅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나,  동료 인턴과 대화의 일부



영어로 농담을 주고받은 동료들의 웃음이 넘치는 대화 속에서 나는 겉으로 웃긴 척을 하고 속으로는 도대체 왜 웃는 거지? 의아해하며 점점 소외감을 느꼈다.


해외에서 대학을 나온 동료 인턴들은 영어로 발표를 자유롭게 하고, 영어로 된 자료를 한국어로 쉽게 해석한다.

영어로 현지 직원들과 농담까지 하면서 대화를 유창하게 하는 동료들 속에서 나는 한 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한 번은 상사의 부탁으로 간단한 영문으로 서류를 작성하는 업무를 하게 되었는데,

해외에서 대학을 나온 동료에게 물어보며 단어 하나하나를 영어로 완성할 때마다 엄청난 창피함을 느꼈다.

내가 맡은 업무인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이게 얼마나 수치스러운가?


내가 러시아어를 전공해서 외국어를 잘하니까 영어도 잘한다고 생각했던 상사는 나를 과대평가하고 그런 업무를 줬다. 모든 내용을 동료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 나는 구글 검색과 네이버 사전의 도움으로 업무를 보고했다.



업무보고를 마치고 문을 닫고 나오면서 우연히 상사의 대화 속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을 영어로 이렇게 쓰는 사람도 있나?"


 그렇다.



간단한 영어 메일도 사전을 찾아가며 맞는지 구글 검색을 하면서 힘겹게 문장을 만드는 영포자의

본모습이 드러나고 말았다.


내 힘으로 일을 하면서 쓰게 되는 영어는 어려움 없이 하고 싶어서,

그 실력을 완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게 되었다.


캐나다 1년 정도 갔다 오면, 어느 정도 영어는 한다더라.

이런 카더라 통신을 듣고 그렇게 캐나다를 가게 되었다.


또,

미래를 위해서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모르지만,

영어실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깨닫고 드디어 나는 또 해외로, 캐나다행을 결심하게 된다.



2019년 03월 11일부터 2020년 03월 01일까지, 약 1년 동안 캐나다 밴쿠버에서 코업 비자로 머물렀습니다.


어학원도 다녀보고, 현지 카페에서 일도 해 봐서, 어학연수생과 워홀러의 그 중간에서 현실적인 밴쿠버 생활의 희로애락을 연재합니다.


행복한 순간들보다 조금은 현실적이고 우울한 이야기도 솔직하게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자주 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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