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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싸라기 Oct 18. 2024

릴리트 호텔을 떠나며

9화

9화.

영업이 종료되고 삐삐에 도착한 음성메시지를 확인한 성진은 덤덤하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마감조로 일할 때마다 늦거나 숙소에서 잔다고 나무라는 아내의 메시지를 들었지만, 이제 걱정이나 두려움 따위는 더 이상 없었다. 오히려, 마음속에서는 반항심이 자리 잡았다. 

“정리 끝났죠?”

“네.”

“그럼, 이제 갑시다.”

밖으로 나오니 습한 바람이 불어와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는 밤이네.”

생각보다 밝은 표정의 성진을 보고 연희는 기분이 좋았다.

“많이 밝아졌네?”

“응. 연희 씨 덕분이죠.”

“좋아요. 그런 표정.”

“빨리 가요! 목말라.”

이번에는 성진이 연희의 손목을 잡고 걸었다. 연희도 발걸음에 맞춰 걸어갔다. 두 사람은 

택시에서 내린 뒤 편의점에서 캔 맥주와 안주거리들을 양껏 산 후 골목으로 걸어갔다.

“두 번째 왔다고 제법 잘 찾아가네요.”

“그러게요. 낯설지가 않네. 저기 저쪽이죠?”

“맞아요.”

철문 앞에 다다르자 성진이 연희의 얼굴을 감싸 쥐고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얼굴 쪽으로 당겼다. 연희는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살며시 눈을 감았다. 성진의 입술이 부드럽게 다가왔다. 연희는 지금 이 순간에 성진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성진 씨, 떨려요?”

“조금..”

“아기 같아.”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요. 당신을 만나고 새로 태어난 기분이니까.”

“그래요. 오늘 우리 다시 태어나는 거예요.”

“그래. 자! 업혀요.”

“이제 발목 괜찮아요.”

“아니 그래서가 아니고,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특별한 의식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신혼여행에서 신랑이 신부를 들고 들어가는 것처럼?”

“뭐 비슷한 거죠.”

“성진 씨도 이런 면이 있었네.”

성진은 연희를 업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연희가 성진의 목을 감싸 안고 볼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그 순간 두 사람은 세상을 모두 가진 듯 행복했다. 여자 둘이 자취하는 방에는 퀸 사이즈 침대하나와 옷장 그리고 화장대가 전부였다. 성진이 살고 있는 월세 집과 마찬가지로 방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 앞 공간에는 부엌과 보일러실이 있었다. 처음 왔을 때는 잘 몰랐지만 좋게 말해서 아담한 정도였다. 옥탑에 위치한 방 안은 낮 동안의 햇살 때문에 후덥지근했다. 연희가 에어컨을 켠 뒤, 상을 펴고서 술상을 차렸다.

“성진 씨 티브이 보고 있어요. 나 먼저 씻고 올게요.”

“응 알았어요.”

연희가 보일러를 튼 뒤 부엌에서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는 동안 물소리가 들릴 때마다 성진은 기분이 묘했다. 아내와도 부부관계를 한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막상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의 집에서의 이런 상황이 어색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성진이 맥주 한 캔을 모두 비울 때쯤 연희가 부엌에서 나왔다. 커다란 박스 티와 반바지 차림에 머리는 젖어있었고, 얼굴은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었다.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연희의 얼굴을 바라본 성진은 감탄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지만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또 저 눈빛. 나한테 반한 거 아니까 그만 쳐다보고 어서 씻어요.”

성진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부엌으로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러고는 두 사람은 술상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옷장 문에는 연희의 분홍색 스커트와 흰색 블라우스가 성진의 재킷과 사이좋게 나란히 걸려있었다. 티브이는 열심히 혼자 떠들며 두 사람의 서먹함을 지워주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어난 이런저런 에피소드 등을 이야기를 하며 캔 맥주를 두 개째 비웠을 무렵 연희가 먼저 성진의 손을 잡았다.

“많이 늦었어요. 이제 자요.”

“그래요..”

두 사람은 동시에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성진이 손을 팔을 뻗어서 연희의 목을 감싸 안자, 연희가 품속으로 들어왔다. 심장소리를 가만히 듣던 연희가 고개를 들어서 성진을 바라보았다.

“심장소리가 크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참 잘 생겼다.”

연희의 손가락이 성진의 얼굴로 향하더니 성진의 콧날을 타고 내려가 입술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성진이 고개를 돌려서 연희를 바라보았다.

“당신.. 참 아름답다.”

“거짓말..”

“진짜야. 당신 참 예뻐.”

“어, 이제는 반말도 하네.”

“아.. 미안해요.”

“호호호 웃겨라. 우리 이제 말 놔요.”

“그럴까?”

“응. 이제 말해봐. 내가 얼마나 예쁜지.”

성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몸을 돌려서 양손으로 연희의 얼굴을 감쌌다. 그러고는 연희에게 키스를 했다.

“이제 내 마음을 알겠어?”

“아니, 모르겠는데. 그 정도 가지고는...”

이번에는 연희의 어깨를 와락 끌어안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길고 깊은 키스가 이어지자 연희가 옅은 탄식이 흘러나오며 성진을 끌어안았다. 성진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로 내려가고 이윽고 연희의 티셔츠를 벗겼다. 성진의 입술은 그녀의 쇄골에 입을 맞추었다.

“잠깐! 잠깐만.. 너무 서두르지 마.”

성진이 다시 연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콧등에는 땀이 살짝 맺혀있었다. 성진은 연희의 눈꺼풀 위에 입을 맞췄다.

“아...”

연희가 살짝 몸을 떨었다. 

“그래.. 그렇게 천천히...”

성진의 애무가 이어지자 연희가 성진의 옷을 하나씩 천천히 벗겨주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오롯이 한 몸이 된 채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성진이 연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 정말 괜찮은 거지?”

“왜?”

“그냥, 걱정 돼서..”

연희가 대답하며 성진의 손바닥에 키스를 했다.

“난 괜찮아.”

“사랑해 연희야.”

“우리 이제부터는 자신을 믿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자. 우리는 지금 여기 같이 있고, 같이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 더 이상 많은 생각으로 시간낭비 안 했으면 해.”

“그래. 그러자.”

성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연희는 이불속으로 얼굴을 숨겼다. 그녀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숨결이 온몸을 휘감는 듯 성진을 마비시켰다.

“아, 연희야..”

그녀는 부드럽고도 뜨거운 입술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는 다시 성진의 목덜미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그러고는 귓불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귓속말로 속삭였다.

“사랑해.”

이번에는 성진이 연희의 모든 곳을 어루만져 주었다.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매 말라서 갈라진 땅바닥에 단비가 내려 해갈을 하듯이 성진의 몸짓은 지칠 줄을 몰랐다. 

“성진 씨 이제 날 안아줘.”

성진이 고개를 들어서 연희를 바라보았다. 눈은 촉촉하게 젖어있었고, 성진의 품으로 안기기 위해 간절한 손짓으로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다시 성진은 그녀에게 깊은 입맞춤을 하자 그녀는 성진을 있는 힘껏 부둥켜안았다. 따뜻한 그녀의 입속에는 아카시아 꿀이 담긴 듯 향기로운 단내가 진동했다. 그렇게 한 몸이 된 두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격렬하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온 방안에 사랑의 향기와 목소리가 가득했다. 큰 파도가 몰아치는가 싶다가 가라앉고 다시 불타오르기를 반복하던 두 사람은, 결국 자신들의 영혼마저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녹아버린 밀랍을 온몸에 바른 듯 땀범벅으로 부둥켜안은 채 녹초가 되었다.

“나 너무 행복해 성진 씨.”

“나도 그래.”

성진이 가슴에 안긴 연희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성진 씨..”

“응?”

“많이 외롭고 힘들지?”

“.....”

“난 느꼈어. 당신이 외롭고 힘들다는 걸..”

“이젠 안 그래.”

“당신의 몸짓에서 느꼈어. 그래서 슬퍼..”

성진은 그녀를 말없이 꼬옥 끌어안았다.

“사람은 서로가 감정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하는데, 당신은 전부 감당하고만 살았어. 이제는 모든 걸 나랑 나눠. 당신의 감정과 당신의 사랑을... 오늘부터 우린 하나가 됐어. 나는 당신이고 당신은 나야.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야. “

성진이 연희의 얼굴을 들어 올려 바라봤다.

“이브.. 당신은 이브 같아.”

“이브? 성경책에 나오는 여자?”

“그래, 남자를 남자답게 완성시켜 주는 그런..”

“선악과를 아담한테 먹여서 추방당하게 만든 여자 아니야?”

“그건 단면만 알고 있는 거고..”

“그래? 어쨌든 좋은 거지?”

“그렇지, 당신은 정말 여자다워. 게다가 예쁘기까지..”

“기분 좋은데?”

“이리 와봐.”

“또? 이제 자야 해. 너무 늦었어.”

연희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성진의 불꽃이 다시 타올랐기에 막무가내였다. 연희도 피곤했지만 그의 손길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 번 더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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