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웨덴의 확진자수가 증가하면서 결국 스웨덴도 다른 유럽 국가들과 별 다를 바 없다는 냉소적인 글들이 여기저기 보이네요. 일단 아래 그래프를 한번 보죠. 9월로 접어들면서 확실히 확진자수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망자수는 7월 말에 거의 0에 수렴한 이후로 거의 상승의 조짐을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집단면역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바람직한 패턴입니다.
의료시스템에 과부하가 없는 한 스웨덴은 계속 지금처럼 갈 것이며, 환자수 급증으로 과부하가 예상되면 전파속도를 늦추기 위한 대책들이 "일시적으로" 사용될 겁니다. 그걸 보면서 스웨덴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다시 “스웨덴 실패”니 “집단면역 포기”니 하면서 훈수를 두겠죠.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이야기하든, 스웨덴 국민들은 여전히 마스크도 쓰지 않고 예전처럼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이어갈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진정으로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은 확진자수의 의미입니다. 지금과 같이 전 세계가 매일 PCR 검사에 기반한 확진자수를 세고 있는 것은 정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백신이 있는 상황에서도 매년 인플루엔자 사망자수가 전 세계적으로 수십만 명인 데요, 치사율이 0.1%라니 실제 환자수는 수억 명에 이른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처럼 매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상대로 PCR 검사를 해서 확진자 수를 헤아렸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미 공포감에 세상 살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항체보다 T세포 면역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항체와 달리, T세포 면역은 감염 그 자체를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감염을 경하게 지나가게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항체 없이 T세포 면역만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재감염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T세포 면역을 가지고 있으면 대부분 무증상 혹은 경한 증상으로 지나가게 되며, 결국 이러한 과정을 반복해 거치면서 숙주와 병원체가 공존하는 어느 지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따라서 T세포 면역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병원체는 모든 감염자들을 전파원의 관점으로만 보고 접근하는 현재와 같은 방역대책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특히 무증상자와 경한 증상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선제 검사는 의미 없는 확진자수를 급증시키면서 대중의 공포만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WHO에서는 유행 초기 팬데믹 선언을 한 후에도 test, test, test라고 이야기하면서 신속하고 광범위한 검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요, 훗날 가장 어리석은 권고 중 하나로 평가될 것이라고 봅니다.
한편 앞서 소개했던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문에 대한 반박문이 존 스노우 비망록 (John Snow Memorandum)이라는 이름으로 Lancet에 발표되었군요. 무려 31명의 연구자들이 저자로 이름을 올려 세를 과시하고 있네요. 반박문과 관련된 내용은 잠시 미뤄두고, 일단 존 스노우 이야기를 짧게 해 드리죠. 존 스노우는 소위 역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 의사입니다. 19세기 중반, 콜레라가 런던의 한 지역을 휩쓸었을 때 지도 한 장만 들고 가가호호 방문하여 사망자를 파악한 후 특정 펌프 물을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그 후 이 펌프 사용을 막음으로써 콜레라 사망이 기적같이 감소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죠. 콜레라 사망은 이미 그전부터 감소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존 스노우의 활약상은 높이 평가받을 만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미생물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고, 콜레라는 공기를 통하여 전파된다고 믿고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반박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반박문의 결론은 예상대로 자연감염을 통한 집단면역이란 있을 수 없으며 백신이 나올 때까지 지금처럼 전파 억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파 억제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일본, 베트남, 뉴질랜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기에 일본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겁니다. 일본이 성공 사례라니.. 이 연구자들이 무지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을 겁니다. 왜 유행 초기 세계 각국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우리나라가 성공 사례에 포함되지 못했을까요?
우리나라 국민들의 눈에는 한국과 일본은 마스크 착용만 제외하면 하늘과 땅 차이에 가까운 방역대책이었겠지만, 반박문 작성에 참여한 연구자들에게는 일본의 사망률이 매우 낮다는 사실만 눈에 들어왔을 겁니다. 앞서 "왜 일본은 신종 코로나 사망이 폭발하지 않을까?"라는 글에서 설명드렸던 교차면역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이 연구자들은 일본의 낮은 사망률을 무조건 방역대책 덕분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보았을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소위 K 방역이 가진 심각한 문제점을 인지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실 우리나라와 같은 수준의 휴대폰, 신용카드, CCTV를 동원한 강제 추적은 통상적으로 범죄자를 상대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감염병 유행시 이러한 추적을 하겠다면 유행 초기에 국한해서 사용해야 합니다만, 우리나라는 지역사회 전파가 광범위하게 발생한 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방법을 고수하고 있죠. 내가 감염자가 되었을 때 이러한 추적조사와 동선 공개의 당사자가 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방역대책이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국가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년쯤 국가별 사망률이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고 나면 그때서야 우리나라 국민들은 K방역이 결코 자랑스러운 방역대책이 아니었다는 점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구권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 동아시아권 국가에서 코로나 19 정도의 감염병을 상대로 이 정도의 국가 개입과 통제가 가능했다면,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기도 합니다. 이 유행이 끝나면 현재의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두고 고민해보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