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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빵의 추억 10화

크림빵: 무서운 아는 맛

by 이다혜


TV는 거거익선, 집도 거거익선, 크림은? 다다익선!


옛날 크림빵을 기억하시는지? 동그란 빵 사이에 차가운 크림이 가운데에 뭉쳐져 있던 크림빵은 심지어 이름도 ‘옛날 크림빵’이다. 크림을 씹으면 설탕 입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서걱서걱하다. 옛날 크림빵을 먹을 때마다 하게 되는 고민은 크림을 발라먹을지, 펴 바를지다. 크림을 좋아하는 나는 크림 맛을 과장되게 느끼고 싶어 고되게 크림 없는 빵 부분을 먹어서 처리한 다음에 남아있는 크림 부분을 와앙 먹기를 즐겼다.


크림빵은 발전했고 이제는 크림빵인지, 밀가루 손잡이를 잡아 크림을 퍼먹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새로운 크림빵은 일상에 가까워져서 발에 차고 넘치는 편의점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빵을 반 갈랐을 때 흘러내리는 형형색색의 폭력적인 크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만족감을 주는지 매달 혹은 매주 새로운 맛이 출시된다.


신상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면 볼 일이 없더라도 편의점에 가서 신상을 담아왔다. 우유, 초코, 황치즈, 말차, 흑임자, 옥수수, 솔티캐러멜… 아는 맛이 무섭다고 모르는 맛도 아닌데 꼭 먹어보겠다는 의지로 편의점에 들른 어린이 친구들 사이에서 빵을 집었다. 첫 입은 황홀했지만 금세 몰려오는 느끼함에 하나를 다 먹지 못하고 남는 빵을 락앤락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한다. 남편이 잔소리를 하면 그제야 다시 꺼내어 나머지를 겨우 해치웠다.



*

어느 순간부터는 새로운 빵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어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알아도 궁금했던 맛이 알기에 궁금하지 않은 맛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언가를 알아버려 초월의 경지에 이르렀다니 슬픔과 동시에 편안해졌다. 소비자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기 위해 기이한 조합을 음식을 만드는 일이 더 이상 재미있지도, 창의적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오프라인을 장악해 버린 무책임한 단편적인 자극에 질려 버려 외면을 선택하기로 했다.


무언가를 열망하며 눈먼 사랑을 하던 때가 이제는 멀게 느껴진다. 인간의 열망을 제조하는 세상의 원리를 눈치채버린 것일까? 아니면 나는 더 큰 자극이 필요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일까?


나이가 들 수록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 고민이 커진다. 쓸데없이 자극적인 자극에서 도망쳐 밍밍함을 추구하며 살지, 아니면 더 큰 자극을 찾아 나설지. 둘 다 두렵다면 그저 이 자극에 만족하며 멈춰 버릴지. 출퇴근 지하철 안, 엄지 손가락으로 숏폼을 튕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도서관에서 대여한 소설책을 꺼낸다. 2배속으로 빨리 감긴 목소리 대신 라디오 DJ의 위로에 귀 기울인다. 편리한 핸드타월 대신 매일 깨끗하게 먼지를 털어낸 손수건을 꺼낸다. 아마 나는 답을 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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