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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Nov 30. 2019

02. 동네 카페

단편소설 <수림: 愁 霖>



   암막 커튼 사이로 비춰오는 햇살에 눈이 부셔 짜증을 냈다. 다시 잠들려고 애썼지만 이미 잠이 깨버려서 뒤척이다 일어났다. 시간은 오후 1시 수요일.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공강 날의 아침이 온 것이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날이다.


늦은 점심을 챙겨 먹는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깔끔한 셔츠와 슬랙스를 입고 내가 아끼는 팥죽색 코트를 걸쳐 입었다. 요즘 날씨는 이상해서 점심엔 덥다가도 저녁엔 금세 쌀쌀해진다. 학교를 벗어나 400번 마을버스를 타고 여암리로 떠난다. 후덥지근한 버스의 공기도 기분 좋게 느껴지는 오후다.


버스에서 내려 하염없이 걸었다. 어디를 갈지 정하지 않고 나왔기에 마땅한 장소를 찾아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 계속 걷다 보니 점점 외곽으로 들어가졌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먹을 만한 식당이 나오지 않았다. 슬슬 나한테 짜증이 난 터라 그냥 돌아갈까 하는 마음을 먹던 중에 외곽에 숨어 있던 근사한 카페거리를 만났다.


‘어, 여기 예전에 서현이가 말했던 자기가 일하는 카페 근처인 것 같은데?’


어차피 거른 점심, 조금 늦게 먹는다고 죽진 않는다. 죽어도 괜찮을지도 모르고. 느긋한 티타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카페를 찾아다녔다. 뮤지컬 영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재밌는 카페들이 줄지어서 손님들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외곽을 걷고 걷다 보니 옷가게와 소품 가게 사이에 껴 있는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나무 판에 새긴 듯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도 평범한 ‘동네 카페'. 생각보다 작은 외관에 놀랐다가 이내 발걸음을 카페 안으로 옮겼다.


“어서 오세요”


얼굴의 반이 덥수룩한 턱수염으로 덮여있고 밤색 장발 머리를 가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남자가 다정한 얼굴로 나를 반겨 준다. 이 카페를 운영하는 바리스타 아니면 아르바이트생이겠지. 그나저나 서현이는 어딨는 거지. 주문하지 않고 카운터 안만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며 남자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발견하고 머쓱해진 나는 황급히 메뉴판을 뒤적거렸다.


 “음.. 어 저는..”


 “아직 메뉴를 못 정하셨으면, 저희 카페의 ‘오늘의 메뉴’는 어떠세요?”


“오늘의 메뉴요? 어떤 거예요?”


“오늘은 터키식 커피인 ‘튜르크 카흐베시’를 추천해드리고 있어요. 조금 생소하죠? 구운 커피 공을 곱게 갈아서 포트 용기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가라앉혀서 마시는 커피예요. 터키에서 마시는 독특한 방법이죠.”


“음 저는 커피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럼 그걸로 주세요”


“생소해서 더 재밌을 거예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분위기에 휩쓸려 이름도 어려운 이상한 커피를 시켰다. 아르바이트생인지 사장인지 모를 사람이 추천해줬으니깐 맛은 있겠지? 괜히 도전한 것 같아서 불안하고 초조하다. 난 원래 도전 같은 거 안 하는데. 실패하면 나만 손해니깐 말이다.


“튜르크 카흐배시입니다. 간단하게 만든 샌드위치는 서비스예요”


“감사합니다. 서비스도 잘 먹을게요”


친절한 수염 아저씨네 하고 잠깐 생각하면서 커피를 음미하려는 찰나에 그가 말을 걸었다.


“아, 이 커피를 마시는 방법도 조금 재밌는데요. 커피 안에 곱게 갈린 커피 찌꺼기가 그대로 들어 있으니 가라앉은 커피 가루는 먹지 말고 액체만 드시면 돼요”


“아 네.”


무슨 커피 하나 먹는데 이렇게 요란을 떠나 하고 혼자 투덜거렸다. 물 하나에 샷 하나 간단하게 들어가는 아메리카노같이 편하면 얼마나 좋아. 짧은 불평을 끝내고 커피를 음미했다.

이게 무슨 맛이지? 진한 맛이 혀끝에서 맴돌다가 단맛으로 여운을 남긴다. 독특한 커피 맛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더니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남자가 흐뭇하게 웃었다.


“독특하죠? 이건 Drip커피가 아니라 Boiled 커피라서 그래요. 커피가루랑 물이랑 같이 끓이는데 터키인들은 여기에 설탕도 한가득 넣고 같이 끓여요. 터키도 커피를 사랑하는 나라거든요. 재밌는 커피가 많아요.”


“와 신기해요. 그럼 만드는 방식도 다른가요?”


“커피랑 물, 설탕을 넣고 끓이면 액체들이 부풀어 오르는데 이때 잠시 열을 식혔다가 다시 반복해서 올려요.

이 과정에 따라 커피의 맛이 달라지거든요”


매일 먹던 커피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한잔에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지 스스로 놀라면서 그제야 눈에 보이지 않던 카페 인테리어가 들어왔다. 커피 생두와 커피용품, 기계들이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머물러 있다. 진한 커피 향이 맴돌면서 이국적이면서 아늑한 느낌. 표현하자면 외국의 가정집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카페였다. 나 같은 사람도 편하게 들어올 수 있으면서 색다른 기분을 낼 수 있는 곳이다.


“처음엔 어렵다가도 맛을 알게 되면 다시 찾게 되는 맛이죠. 허허!”


호탕하게 웃는 그를 보며 나도 연한 미소를 띠었다. 같이 만들어준 수제 샌드위치와 커피 한잔에 몸을 맡겼다. 잔에 담긴 커피 찌꺼기와 갈색 액체를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물결에 내 동공이 잔잔히 비췄다. 잠시 후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눈을 깜빡이며 비현실적인 편안함에 저항하려고 노력했지만 계속해서 나는 그곳에 머물러있었다.


‘오늘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이따금 들려오는 로스팅 소리와 부딪히는 커피잔의 소리가 주변을 감싼다. 커피의 고소한 냄새와 손님들의 속닥거림이 카페의 조연들이 되어 춤을 춘다.


“저.. 사장님 또 와도 되나요?”


“당연하죠! 동네 카페는 언제든지 열려 있어요. 또 와요”






단편소설 <수림: 愁 霖>  

00. 에필로그 

01. 자취방에서 

03. 두려운 밤

04. 마지막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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